이계홍 역사 장편소설 죽창 [제11장] 전주성 입성(207회)

윤태민 기자 2025. 8. 12. 18:25
음성재생 설정 이동 통신망에서 음성 재생 시 데이터 요금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글자 수 10,000자 초과 시 일부만 음성으로 제공합니다.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전봉준은 다시 강조하였다.

"우리 동학이 각지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소요를 일으킨 다음 그 힘을 모아 전주감영을 점령하고, 나아가 매관매직을 일삼는 민씨 척족 세력을 타도하면 팔도가 호응하게 될 것이오. 그러므로 전주성 점령은 세력을 더욱 모으는 기회가 되는 거요."

그러자 오권선이 나섰다.

"동도대장은 고을 범위를 확장하자는데 아직 고을의 백성들이 우리 지역을 제외하고는 호응자가 많지 않소이다. 백성들은 관의 선전선동술로 여전히 동학군을 반란군 세력으로 보고, 관은 지속적으로 동학군을 대역죄인으로 몰아가는 바, 대중을 설득하여 세를 모아 북상하기에는 어려움이 있소이다. 그러므로 김개남 장군의 복안대로 무조건 밀고 올라갑시다. 시간을 주면 관군에 힘을 보태줄 수 있소이다. 중앙군이 엉성해 있을 때 밀어붙이는 것이 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소이다."

오권선은 아직 반란의 대열에 동참하기를 꺼리던 민중들의 참여를 유도하고 지지기반의 확대를 도모한다는 것은 시기상조라고 보고 있었다. 오권선이 덧붙였다.

"청군이 참전하고, 이를 빌미 삼아 왜군이 참전할 움직임인데, 농민군의 역량이 관군 무리는 능히 대적할 수 있으나 외국 군대와 맞서기에는 취약성을 가지고 있소이다. 그러므로 경군 세력이 약화할 때 한양을 신속하게 접수해 수성하기를 제안하는 바입니다. 이는 김개남 장수와 의견이 같소이다."

"전주성 점령도 그 일환이오. 걱정하지 말고 나를 따르시오."

전봉준이 단칼에 잘랐다.

"오 대장은 경군의 화력을 무력화시킬 방법을 생각하시오."

오권선이 자기 지휘 부대로 돌아가고, 농민군 부대는 요소요소의 길목을 차단하였다. 전주의 외곽 남원, 금구, 고창, 흥덕, 부안, 순창, 담양, 광주를 잇는 길목에 방어선을 쳤다. 경군 부대는 발이 묶였고, 주력은 전주성에 고립되었다.

양호초토사 홍계훈은 뒤늦게 방향을 틀어 농민군 방어선을 뚫으려 했으나 실패를 감지했다. 당황한 관군들은 총과 포를 쏘다가 도망을 치기 시작했다. 경군의 신식 무기가 무력화되자, 농민군들이 노도와 같이 전주성을 향해 진군했다. 관군들은 영의 뒤편 내를 건너 후퇴하였다.

"도망병을 끝까지 뒤쫓아 격퇴하라."

오권선이 소리쳤으나 전봉준이 묵살하고 명했다.

"도망자의 뒤통수에 총을 쏘지 마라."

군사들이 총격을 멈추자 전봉준이 다시 명했다.

"적의 퇴로를 열어줘라. 적군이 도망칠 때 무리하게 공격하지 않고 지형을 활용해 승기를 잡으라. 거듭 말한다. 적군이 도망치는 상황에서는 아군 여부를 확인해야 하며, 무분별한 사격은 오히려 우리의 피해를 키울 수 있다."

전봉준은 전장(戰場) 상황과 심리적 요인을 고려해 적의 의도와 위치를 신중히 판단하였다. 전봉준의 뜻을 알고 오권선이 총격 자세를 취하고 있는 지휘 부대에 명했다.

"도망자에게 총을 쏘지 마라."

그는 전봉준의 명분론과 전술론을 이해하였다. 도망자 중에는 동원된 순박한 농민도 상당수 포함되어 있을 수 있다. 이를 일일이 구분해 총을 쏠 수도 없고, 따라서 무작정 총을 쏘면 결과적으로 오인 사격이 될 수도 있다. 피아식별이 어려운 상황에서 이런 문제가 자주 발생하여 그동안 억울할 죽음들이 많았다.

동학농민군은 유격 진격 전술을 구사하여 1894년 4월 27일(양력 5월 31일) 마침내 전주성에 입성했다. 사실상 무혈입성이었다. 관군이 전라감영을 비워버린 통에 농민군 병사들이 부대 깃발을 앞세우고 착착 감영으로 들어섰다. 감영의 뜰에 동학농민군이 빼곡히 들어찬 가운데, 병사들이 일제히 환호를 올렸다. 그러면서 그동안 훈련과정에서나 전투 과정에서 익힌 '12개조 군율'을 복창했다.

-항복하는 자는 따뜻하게 대한다.

-곤궁한 자는 구제한다.

-탐학한 자는 쫓아낸다.

-따르는 자는 존중한다.

-굶주린 자는 먹여준다.

-도주하는 자는 쫓지 않는다.

-불충한 자는 제거한다.

-거역하는 자는 타이른다.

-병든 자에게는 약을 준다.

-불효하는 자는 처벌한다.

이 같은 구호는 고부봉기 이후 일관되게 동학농민군을 관통하는 운동의 기본 방향이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