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46년 만에 국가배상 판결, 12·12 피해자 김오랑 중령

한겨레 2025. 8. 12. 18: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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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12 군사반란 당시 신군부의 총탄에 맞아 전사한 김오랑 중령의 유족에게 국가가 손해배상을 해야 한다는 판결이 나왔다.

김 중령은 12·12 당시 정병주 특전사령관의 비서실장으로, 군사반란에 가담한 3공수여단이 특전사령부를 습격했을 때 정 사령관을 지키기 위해 최후까지 총격전을 벌이다 숨졌다.

12·12 군사반란 당시 국방부 초병으로 반란군의 총탄에 쓰러진 또 다른 희생자 정선엽 병장의 유족도 지난해 국가 배상 판결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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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김오랑(왼쪽) 중령과 영화 ‘서울의 봄’에서 오진호 소령을 연기한 배우 정해인(오른쪽). 오진호 소령의 실제 모델이 김오랑 중령이다. 한겨레 자료사진, 플러스엠 엔터테인먼트 제공

12·12 군사반란 당시 신군부의 총탄에 맞아 전사한 김오랑 중령의 유족에게 국가가 손해배상을 해야 한다는 판결이 나왔다. 1979년 김 중령이 숨진 뒤 46년 만에야 국가의 책임을 사법적으로 확인받은 것이다. 군을 동원해 민주주의를 압살하려는 시도가 12·3 내란으로 반세기 만에 재연된 터라 이번 판결이 더욱 의미 있게 다가온다.

서울중앙지법 민사911단독 유창훈 부장판사는 12일 김 중령의 누나 김아무개씨 등 유족 10명이 국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소송에서 국가는 원고들에게 총 3억여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김 중령은 12·12 당시 정병주 특전사령관의 비서실장으로, 군사반란에 가담한 3공수여단이 특전사령부를 습격했을 때 정 사령관을 지키기 위해 최후까지 총격전을 벌이다 숨졌다. 당시 나이 서른다섯이었다.

김 중령은 불법적인 군사반란에 저항하다 숨졌지만 그의 죽음은 권력을 찬탈한 신군부에 의해 철저히 왜곡됐다. 당시 보안사령부는 김 중령에 대한 총격이 ‘군의 정당방위'였다고 발표했고 시신도 특전사 뒷산에 매장됐다가 두달여 뒤에야 현충원으로 옮겨졌다. 무장 폭동·반란 등에 맞서다 사망한 경우 ‘전사’로 예우해야 함에도 김 중령은 사고로 인한 ‘순직’으로 처리됐다. 2022년에야 군사망사고진상규명위원회가 “김 중령은 특전사령관을 불법으로 체포하려던 반란군에 대항하다 총격을 받고 사망했다”며 김 중령 사망을 ‘전사'로 바로잡았다. 유족들은 “그동안 정당한 위로와 국가보훈의 처우를 받지 못했고 망인을 제대로 애도하지 못하는 정신적 고통을 받았다”며 지난해 소송을 제기했다. 12·12 군사반란 당시 국방부 초병으로 반란군의 총탄에 쓰러진 또 다른 희생자 정선엽 병장의 유족도 지난해 국가 배상 판결을 받았다.

헌법을 수호하는 군인의 사명을 다하기 위해 목숨을 바친 군인들이 올바른 평가를 받지 못하고 유족들도 이루 말할 수 없는 고통을 겪으며 살아온 것은 우리 현대사의 안타까운 비극이다. 군사반란 가담자들을 엄정히 처벌하고 반란에 저항한 이들을 제대로 예우함으로써 역사적 교훈을 남겨야 했다. 이런 과정이 부족했던 것도 12·3 내란이 일어난 배경의 하나라고 할 수 있다. 군의 위헌적인 정치 개입 가능성을 영원히 차단하기 위해선 12·3 내란 가담자에 대한 철저한 응징이 이뤄져야 하고, 이에 저항해 군인의 본분을 지킨 이들에 대해선 합당한 평가가 이뤄져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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