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썰물밀물] 인천과 '사이다 SONG'

"인천 앞바다에 사이다가 떴어도 컵 없으면 못 마셔요." 코미디언 고 서영춘 씨가 1960년대 유행시킨 '사이다 송(song)' 가사다. 이 노래는 단순한 유행가가 아니라, 인천이란 도시가 당시 대중문화 속에 어떻게 자리 잡았는지를 보여 준다. 인천은 우리나라 사이다의 선구 지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기록에 따르면 사이다의 역사는 1905년 인천 중구 신흥동에 문을 연 인천탄산수제조소가 '별표 사이다'를 생산한 전국 최초의 사이다 공장이다. 일제 강점기에는 '라무네'와 '아리온사이다'라는 브랜드도 인천에서 제조됐다고 한다. 1950~1960년대에는 인천이 사이다 생산의 중심지로 떠올랐다.
인천은 전국 사이다 공장 12곳 중 상당수를 보유한 도시로 평가받았다. 1950년대 중반 경인합동음료가 인천에서 선보인 '스타 사이다'의 유명세는 최고조에 달했다. 이 제품은 '별' 로고를 강조한 병 디자인과 광고로 당시 전국적으로 인기를 끌었다. 경인 철도 차량 외부 측면에 사이다 광고판을 부착, 인천이 사이다 생산뿐 아니라, 유통의 중심지임을 전국에 알렸다. '사이다 송'도 이 시기에 등장해 유행할 만큼, 인천의 사이다가 얼마나 유명세를 치렀는지 보여준다.
1960년대 말에는 경인 지역뿐 아니라, 전국 유통망을 통해 하루 10만 병 이상이 소비됐다. '인천 사이다', '동양 사이다', '백두 사이다' 등의 브랜드도 비슷한 시기에 속속 등장했다. 1966년 설립된 롯데칠성 인천공장 역시 전국에 유통되는 칠성사이다의 주요 생산지였다. 그러나 1975년 이후 칠성, 웅진 등 대기업이 탄산음료 시장을 지배하면서 인천의 탄산음료 공장 대부분이 문을 닫았다.
사이다는 단순히 음료를 넘어 인천 사람들의 정서를 닮았다고 한다. 톡 쏘아대는 말투, 직선적인 기질 때문인지 인천 사람을 "사이다 같다"라고들 한다. 그래서 사이다는 인천의 기질이 담긴 비유적 언어이자, 정체성 일부였다. 오늘날 인천의 사이다 공장은 대부분 역사 속으로 사라졌지만, 사이다가 기억 속에 남아있는 특별한 이유이기도 하다.
2023년 부평의 한 카페에서 '로컬 사이다 팝업 전시회'가 열려 옛날 병 사이다와 상표, 광고 등 인천 사이다에 대한 기록을 선보였다. 그만큼 사이다에는 오랜 추억과 인천의 정체성이 녹여져 있다. 탄산의 짜릿함과 인천의 기질, 도시의 성장. 사이다는 갈증 해소를 넘어 도시가 품은 거품과 울림의 역사다. 다시 인천을 톡 쏘게 만들 때인 것 같다.
/김명균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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