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보낸 한철] 이육사 육필원고, 편복(蝙蝠)

2018년 일이었다. 이육사의 육필 원고가 문화재로 등록되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시 한 편이, 그것도 시인의 육필원고가 문화재가 되다니! 안동시 도산면 원천리, 이육사문학관을 찾았다. 시인인 이위발 사무국장이 수장고 문을 열고 문화재로 지정된(등록문화재 제713호) <편복>을 보여주었다. 나무 액자 속에 정성스럽게 보관되어 있었다. 작품의 문학사적 가치도 가치이지만 굳이 <편복>이 문화재로 지정되게 된 것은 그것이 이육사의 유일한 육필 시 원고이기 때문이라는 것이었다. 백지에, 펜으로 검은 잉크를 찍어, 세로로 내려 쓴 <蝙蝠>은 유족들이 소장해오다가 2004년 이육사문학관을 개관하면서 기증한 것, 1956년에 출간한 <<陸史詩集>>에 들어 있는 작품이다.
"光明을 배반한 아득한 洞窟에서/ 다 썩은 들보와 문허진 城砦의 너덜로 돌아단이는/ 가엾은 빡쥐여! 어둠에 王者여!/ 쥐는 너를 버리고 부잣집 庫간으로 도망했고/ 大鵬도 北海로 날아간 지 임이 오래거늘/ 검은 世紀의 喪將이 갈가리 찌저질 기-ㄴ 동안/ 비둘기 같은 사랑을 한 번도 속삭여 보지도 못한/ 가엽슨 빡쥐여! 고독한 幽靈이여!"로 시작해서 "운명의 祭壇에 가늘게 타는 香불마저 꺼젓거든/ 그 많은 새즘승에 빌붓질 애교라도 가젓단말가?/ 胡錦鳥처럼 고흔 뺨을 채롱에 팔지도 못하는 너는/ 한 토막 꿈조차 못 꾸고 다시 동굴로 도라가거니/ 가엽슨 빡쥐여! 검은 화석의 妖精이여!"로 끝나는 4연 21행의 형태를 가진, 짧지도 길지도 않은 <편복> ; 군데군데 줄을 그어 고친 부분도 보이고, 오른쪽 하단 여백에 '되' '외' 같은, 쓰기 연습을 해본 것으로 여겨지는 낱글자도 적혀 있어 육사의 체온이 느껴지는 듯 친근감이 들었다. 헤아려 보니 열 군데가 넘게 느낌표가 찍혀 있다. 못마땅한 부분에 줄을 그어가며 원하는 뜻을 찾고, 여백에 낱글자를 연습하며 바른 글자체를 궁리할 때 육사는 언어를 다듬는 빈틈없는 시인이었고, 곳곳에 느낌표를 찍으며 울분을 토할 때 그는 민족사의 비극에 정면으로 맞서 싸운 당당한 투사였다.
'편복'은 박쥐의 한자말이다. 육사는 동굴 속에 갇혀 사는 박쥐의 생태에서 일제 강점기 암흑 속에서 허덕이는 우리 민족의 현실을 본다. 육사는 이 시에서 "가엾은 박쥐여! 어둠의 王者여! 가엾은 박쥐여! 고독한 幽靈이여! 가엾은 박쥐여! 영원한 보헤미안의 넋이여! 가엾은 박쥐여! 멸망하는 겨레여! 가엾은 박쥐여! 검은 화석의 妖精이여!"와 같이 '가엽다'는 말을 다섯 차례나 반복하고 있다. 얼마나 절절하게 조국과 민족을 사랑했으면 민족의 가엾음을 후렴처럼, 느낌표를 찍어가며 되풀이하고 있을까. "너의 머-ㄴ 祖先의 영화롭던 한 시절 역사도/ 이제는 「아이누」의 家系와도 같다"고 서러워하던 그때 그 순간은 비 오고 바람 부는 밤이었을까. 아니면 먼동 트는 새벽이었을까. 밤이었든, 새벽이었든 그곳, 육사의 정신적 처소는 캄캄한 동굴이었고, 거꾸로 매달린 동굴 속 박쥐는 글을 쓰고 있는 육사 자신의 모습에 겹쳐진 민족의 처지였겠다.
문화재로 등록된 <편복>은 문학관 한 켠에서 이곳을 찾아오는 후세들을 맞을 것이다. "서릿발 칼 날진 그 위에 서서"(<절정>), 펜으로 먹을 찍어 한 자 한 자 써내려간 한결같고, 반듯하고 힘센 이육사의 필적(筆跡)이 유장한 목소리로 말할 것이다. 차마 이곳을 범하진 못하도록, 눈 내리는 광야에 가난한 노래의 씨앗을 뿌리는 역사의 상처를 잊어서는 안 된다고. "다시 천고의 뒤에/ 백마 타고 오는 초인이 있어/ 이 광야에서 목 놓아 부르게"(<광야>)해야 한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