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자지구를 잊지 말라”…이스라엘군에 숨진 알자지라 기자 유언

최우리 기자 2025. 8. 12. 13: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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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례식서 주검 덮은 흰 천에 붉은 핏자국 선명
유엔·국제사회, 기자 사망에 네타냐후 비난
11일(현지시각) 가자북부 가자시티에서 사망한 아나스 샤리프 기자와 알자지라 동료 4명의 장례식에 주민들이 참여하고 있다. 가자시/UPI 연합뉴스

“가자지구를 잊지 말아달라”

11일 자정(현지시각) 무렵 이스라엘군 공격으로 숨진 아나스 샤리프 알자지라 기자는 숨지기 전 소셜미디어에 죽음을 예감한 듯 이런 내용의 메시지를 예약 전송해 두었다.

이날 열린 그와 동료 4명의 장례식에 팔레스타인 주민들은 모여 분노하고 그를 애도했다. 알자지라가 공개한 영상을 보면, 주민 100여 명이 그의 주검을 운구하는 이들을 뒤따르며 애도했다. 사람들은 그의 주검 위로 ‘프레스’가 적힌 방탄조끼를 덮었으나, 흰 천 위로 붉은 핏자국이 선명했다.

샤리프는 2주 전 이스라엘군이 자신을 노리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고 이스라엘 매체 하아레츠는 보도했다. 자신이 죽을 수 있다는 사실을 예감했던 것인지 그는 소셜미디어에 유언을 예약전송해두었다고 알자지라 등은 보도했다. 그가 숨지고 약 1시간 뒤 올라온 게시물은 “이 말이 전해지면 이스라엘이 내 목숨을 끝내고 내 목소리를 침묵시키는 데 성공했다는 것”이라며 “나는 진심으로 모든 노력과 온 힘을 다해 우리 국민을 위한 변함없는 지지자이자 열렬한 옹호자가 되기 위해 노력해왔다. 진실을 있는 그대로 전하겠다는 제 헌신에 굳건히 서 있다”며 “침묵을 택한 자들, 우리에게 가해진 폭력을 묵인한 자들, 우리 아이들과 여성들의 고통에 눈감은 자들을 향해 신께서 증명해주시기를 간구한다”고 말했다.

동료들이 공개한 또다른 유언장에서 그는 “내가 죽더라도 나는 내 원칙을 굳건히 지키며 죽을 것”이라며 “가자지구를 잊지 말라, 그리고 용서와 수용을 구하는 진심 어린 기도 속에서 나를 잊지 말아달라”고 적었다고 시엔엔은 전했다.

그는 “가자에 남은 유일한 목소리”였다고 비비시는 강조했다. “가자지구에서 가장 유명한 언론인 중 한 명”이라고 시엔엔은 보도했다.

28살인 그는 이스라엘이 세계 언론의 취재 접근을 차단하는 동안 가자지구 이야기를 전하면서 유명해졌다. 그는 가자전쟁 중 고향 자발리아에서 이스라엘의 공습을 담은 소셜미디어 영상을 올려 화제가 되면서 2023년 12월 알자지라 기자로 영입됐다. 시엔엔은 그의 아버지도 그가 알자지라 기자가 된 직후 자발리아에서 이스라엘 공습으로 사망했다고 전했다.

아내와 아들·딸이 있는 것으로 알려진 그는 현장 소식을 주로 전했다고 한다. 병원, 거리, 차량, 구급차, 대피소, 창고에서 피난민들과 함께 잠을 잤다. 영국 텔레그래프는 “샤리프가 가자 기아 위기에 대해 보도하던 중 눈물을 흘렸다. 그는 일반 주민들의 목소리를 대변했다는 점에서 칭찬을 받았다”고 밝혔다.

그는 이스라엘군이 자신에게 알자지라에서 일하는 것을 중단하라고 위협했다고 주장했다. 그는 2월 현지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당시 나는 병원에서 생중계 중이었는데, 나의 왓츠앱 번호로 이스라엘군 정보장교가 ‘몇 분 안에 현재 위치를 떠나 남쪽으로 가서 알자지라 보도를 중단하라. 몇 분 뒤 제가 취재하던 방이 공격을 받았다’고 했다”고 밝혔다고 시엔엔은 전했다.

이스라엘군은 지난해 10월 이미 그가 하마스와 연루돼있는 동맹 단체인 ‘팔레스타인 이슬람 성전의 요원’이었다는 증거를 발견했다고 비난했고, 11일 그를 살해한 뒤 성명을 내 “그가 가자지구에서 하마스 조직을 이끌고 이스라엘 민간인과 군을 상대로 로켓 공격을 조직했다”고 주장했다. 이스라엘군은 하마스 요원 명단과 하마스 대원들이 부상을 적는 기록 양식, 샤리프의 이름이 적힌 자발리야 대대의 전화번호부를 압수했다고 주장했으나, 검증이 불가능한 화면 캡처 파일이었다고 텔레그래프는 전했다. 비비시도 샤리프가 이전에 하마스 미디어팀 소속이었다고 보도했으나 이에 대한 출처를 밝히지 못했다.

한 테랑 팔레스타인 기자는 텔레그래프에 “가자에서 활동하는 기자들 대부분이 특정 단체에 소속돼 있다. 그렇지 않으면 활동할 수 없다. 그렇다고 해서 그가 테러리스트라는 뜻은 아니”라고 강조했다.

카야 칼라스 유럽연합 외교정책 책임자는 소셜미디어 엑스를 통해 “이스라엘이 그가 속한 단체를 하마스 테러리스트라고 주장하는 것에 주목하지만 이런 경우 언론인을 표적으로 삼지 않기 위해 법치주의를 존중해 명확한 증거를 제시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안토니우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은 기자 사망에 독립·중립적 조사를 촉구했다.

브라운대 왓슨국제공공정책연구소는 올해 4월 “언론인들에게 최악의 전쟁”이라고 가자 전쟁을 지적했다. 미국 남북전쟁이나 세계 1·2차대전, 한국전쟁, 베트남전쟁, 유고슬라비아전쟁, 9·11 이후 아프간전쟁을 통틀어 가장 많은 언론인이 사망한 전쟁이라고 분석했다. 언론인보호위원회(CPJ)는 가자 전쟁 발발 이후 최소 184명의 팔레스타인인 언론인, 전체 192명의 언론인이 사망했다고 밝혔다. 카메라맨 등 언론 지원 활동을 하는 이들을 포함한다면 최대 270명에 이른다.

국제사회의 비판 목소리가 커지자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는 10일 외신과의 기자회견에서 “곧 외신 기자들 입국을 허용하겠다”고 말했다. 이스라엘은 전쟁 기간 내내 가자 지구의 언론 취재를 제한해 팔레스타인인들이 현장에 남아 취재해 이를 세계 언론에 소개했다.

카타르 도하의 알자지라 본사에서 알자지라 직원들이 11일(현지시각) 가자시티에서 이스라엘군의 공격으로 숨진 동료들을 애도하며 추모하기 위해 스튜디오에 모여있다. 가자시/로이터 연합뉴스
11일(현지시각) 시리아 기자들이 시리아 북서부 이들리브에서 가자지구 동료 기자 살해에 반대하는 시위를 하고 있다. 이들리브/EPA 연합뉴스

최우리 기자 ecowoor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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