흘러내린 검은 실을 따라… 우리는 흙으로 돌아간다

박동미 기자 2025. 8. 12. 09: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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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의 암 투병과 유산(流産). 삶과 죽음의 경계에 선 예술가는 무엇을 보았을까.

붉은 실을 주재료로 인간 존재의 복합성을 직조해 온 시오타 치하루(염田千春·53·사진) 작가는 "병은 내 시선을 몸의 깊숙한 곳으로 이끌었다"고 고백한다.

시오타 작가는 "항암 치료를 받던 내 몸과 닮아있다. 유리는 인간의 몸과 같이 연약하기 그지없지만, 열과 압력을 견디고 다시 태어난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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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오타 치하루, 3년만에 韓 개인전
연결·순환하는 인간존재 풀어내
검은 실과 흙을 사용한 설치 작품 ‘리턴 투 얼스(Return to Earth)’. 인간이 자연으로부터 비롯되어 다시 그곳으로 돌아간다는 순환의 개념을 시각화했다. 가나아트센터 제공

두 번의 암 투병과 유산(流産). 삶과 죽음의 경계에 선 예술가는 무엇을 보았을까. 붉은 실을 주재료로 인간 존재의 복합성을 직조해 온 시오타 치하루(염田千春·53·사진) 작가는 “병은 내 시선을 몸의 깊숙한 곳으로 이끌었다”고 고백한다. 견딜 수 없는 슬픔과 절망에 “삶이 끝났다”고까지 믿었으나, 아침은 어김없이 찾아왔다. “육체가 사그라든 뒤에도 잔존할 재료를 다루고 싶어졌어요.” 그렇게 유리 작업이 시작됐고, 인간의 장기를 닮은 ‘세포(Cell)’ 연작이 탄생한다. 시오타 작가는 “항암 치료를 받던 내 몸과 닮아있다. 유리는 인간의 몸과 같이 연약하기 그지없지만, 열과 압력을 견디고 다시 태어난다”고 설명했다.

‘세포(Cell)’ 연작. 가나아트센터 제공

2022년 ‘인 메모리(In Memory)’ 전시 이후 3년 만에 시오타 작가가 한국에서 개인전을 연다. 서울 성북구 가나아트센터에서 열리고 있는 ‘리턴 투 얼스(Return to Earth)’. ‘세포’ 연작을 포함해 전시명과 동명인 설치작품, 오사카(大阪) 나카노시마 미술관에서 선보인 ‘타인 안의 자아(The Self in Others)’ 등 근작과 함께 젊은 시절 그린 유화 3점도 공개한다. 최근 이 미술관에서 만난 작가는 “지금은 건강을 회복했다”면서 “24시간 내내 작품 생각을 한다. 그게 내 삶의 보람이다”며 웃었다.

시오타 치하루 작가.

개인적 체험을 바탕으로 실존과 정체성을 사유해 온 작가는 한층 보편적으로 확장된 세계 속으로 진입했다. 오래된 의자와 붉은 실을 엮어 개인의 존재와 관계를 탐구(‘Between us’·2020)하고, 흰색 실을 통해 기억이라는 주제(‘In Memory’·2022)를 다뤘다면, 이번에는 자연과 인간, 존재와 비존재를 연결하는 ‘순환의 구조’에 집중했다. 삶과 죽음의 연결성을 강조하기 위해 붉은 색실뿐만 아니라 검은 색실, 그리고 하얀 색실까지 썼다. 또, 흙더미가 전면에 등장한 것도 눈여겨볼 지점이다. 작가는 “한강 작가의 ‘흰’을 읽고 색에 대한 영감을 얻었다”면서 “그것은 인간의 유한한 삶을 소멸로 보지 않고 또 다른 차원으로의 전이를 상징한다”고 강조했다.

가장 주목되는 건 ‘리턴 투 얼스’. 천장에서 바닥까지 서로 얽혀 내려오는 검은 실이 바닥의 흙더미 위에 닿아있다. 검은 실은 나무의 가지처럼, 우리 몸의 혈관처럼 보인다. “우리는 흙(earth)에서 태어났고, 언젠가 다시 그곳으로 돌아갈 것이다. 내 몸은 흙이 되고, 숨결은 공기가 되며, 내 영혼은 분자 단위로 쪼개져 세상을 떠돌 것이다.”(‘작가 노트’ 중에서) 2000년 첫 개인전의 제목이 ‘지구로부터의 호흡(Breathing from Earth)’이었던 걸 상기하면, 25년간 천착해 온 존재 탐구가 이제 집약적 예술 세계로 드러나며 그 답을 찾아가는 듯하다.

‘타인 안의 자아(The Self in Others)’. 가나아트센터 제공

‘타인 안의 자아’는 신체의 여러 장기를 표현한 설치물과 뱃속의 태아 모형 등이 벽에 걸려있다. 서로 개별적이고 독립된 듯 보이지만, 가까이서 보면 아주 얇고 반짝이는 실로 연결돼 있다. 한 인간을 이루는 정체성에 대한 성찰을 담았다. 작가는 “우리의 자아는 관계 속에서 변화하고 외부의 자극을 통해 재형성·재정립된다”면서 “‘나’는 관계 속에서 존재하고, 그렇게 우리 모두는 무언가에 연결돼 있다”고 설명했다.

2019년 도쿄(東京) 모리미술관에서의 대규모 개인전 후 한국에서 소개되기 시작한 시오타 작가는 독일을 거점으로 활동하는 일본 대표 현대미술가다. 프랑스 그랑 팔레(2024), 일본 오사카 나카노시마 미술관(2024) 등 세계 유수의 미술관에서 전시를 개최하며 국제적인 명성을 이어오고 있다. 전시는 내달 7일까지.

박동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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