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다들 말렸지만"... 배우 고준, 새로운 도전 나선 이유 (인터뷰)
주변 만류에도 채널 개설한 이유?
"재야의 고수들에게 기회 주고파"
"배우는 정서적 대변인... 무대가 어디든 상관없다"

배우 고준이 TV 밖에서 또 다른 작품 세계를 펼치고 있다. 각종 영화와 드라마에서 존재감을 발산하던 그는 유튜브 채널 ‘피핑(Peeping)’을 개설하고 새로운 도전에 나섰다. ‘피핑’은 단순한 영상 채널이 아니라 그가 구상한 ‘배우들의 자생 플랫폼’이다. 채널명은 ‘세상을 엿본다’는 뜻을 품고 있지만, 실은 호기심보다는 연대에 가깝다.
최근 서울 강남구 한 카페에서 본지와 만난 고준은 “영화학과를 졸업했고 영화를 너무 사랑하는 사람”이라고 자신을 소개하며, 인생사부터 연기 철학까지 다양한 이야기를 풀어놓았다.
한때 고준은 150명이 넘는 원생을 둔 연기학원을 운영했다. 직접 연기를 가르치며 배우를 발굴하고 키웠다. 유명해진 제자도 꽤 있다. 제자들과 가족처럼 지냈던 그에겐 그간 말하지 못한 아픔도 있었다. 바쁜 촬영 일정으로 자리를 비운 사이 파벌과 감투싸움이 생겼고, 배신과 오해가 쌓였다. 이로 인해 마음의 상처를 입고 결국 학원을 닫았지만, 꿈을 가진 배우들을 다시 모아 온라인에서 재능을 펼칠 무대를 마련했다.
“사람 근본은 못 바꾸는 것 같아요. 주변에서 그만하라고 말리기도 했죠. 오지랖 부리지 말라고. 그래도 저는 남을 도우며 살 운명인가 봐요. 그냥 지나치질 못하겠더라고요.”

고준 역시 배우로 이름을 알리기 전, 누구의 도움도 받지 못해 힘겨운 시간을 보냈던 때가 있다. “정말 아무도 안 도와줬어요. ‘피핑’ 영상 후반 작업하는데 감독이랑 배우들을 보고 있자니, 내가 제작하는 건데도 (그들이) 부럽더라고요. 하하. 나 같은 선배가 있으니까 좋은 거란 생각이 들면서 눈물이 핑 도는 거예요.”
무명시절을 떠올리던 그는 은인이자 귀인으로 ‘타짜2’의 강형철 감독을 꼽았다. “전 ‘타짜2’ 찍을 때까지 회사도 없었어요. 촬영 후에 회사에 들어갔거든요. 오디션을 5차까지 봤는데, 당시 지원했던 배우들이 어마어마했죠. 이미 알려진 사람들도 있었고 지원자 수가 많았기 때문에 다들 누가 뽑혔는지 궁금해 했던 거 같아요. 제가 된 걸 알고서 (그들 사이에서) 유명해진 거죠."
꿈과 재능을 가진 배우들에게 발판을 만들어주고 싶었던 그는 시대 흐름에 맞춰 플랫폼을 만들기로 마음 먹었다. 채널은 4개월 전 문을 열었지만 이미 평균 조회수 1만을 넘기며 PPL 제안도 들어오고 있다. “아직은 자선사업에 가까워요. 하하. 그래도 채널을 좋게 봐주시니 감사할 따름이죠.”

고준은 자신의 직업을 이렇게 정의한다. “법적 문제는 변호사가 대변하지만, 배우는 정서적 대변인이예요. 누군가의 인생을 대신 살아내고, 그 감정까지 전해줄 수 있어야 하니까요.”
그래서 캐릭터를 허투루 다루지 않는다는 설명이다. “작품 속 역할은 이 세상에 사는 누군가이기 때문에 그들이 힐링하고 힘을 낼 수 있게 연기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더 리얼하게 하려고 노력하고요. 관찰력이 제 직업병이에요. 표정 하나, 말투 하나가 왜 나왔는지 그 사람의 트라우마부터 추적합니다.”
그는 선악의 잣대를 피하고 가능한 한 다양한 경험을 쌓으려 한다. “착한 경험만 하려는 건 배우의 착각이죠. 나쁜 쪽도 경험해야 합니다.” 인물을 연기할 땐 최전선에서 그 일을 하는 사람을 기준으로 삼고, 직업의 습관과 리듬까지 흡수한다. 단순한 흉내나 상상만으로는 제대로 된 표현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고준이 연기를 대하는 태도는 집요하다. 경찰 역할을 위해 실제 경찰과 잠복근무를 했고, 강력범죄 현장에서 범인을 체포하는 순간의 눈빛까지 눈에 담으려 했다. “예전에 독립영화 하던 시절에 자폐인 인터뷰를 하며 부모님이 흐느끼는 걸 봤어요. 모든 사람은 상처가 있습니다. 그걸 계기로 뼈를 갈아넣듯 표현하고자 노력하게 됐죠.”
그의 진정성은 어린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사회적이지 못했던 소년 고준은 절과 성당을 오가다 파이프 오르간 소리에 반해 신부를 꿈꿨다. 수도원 입소 직전 그 길을 접었지만, 선한 영향력을 전하고 싶은 마음은 여전히 배우라는 직업 속에 살아 있다. “영향력이 없는 상태가 되면 내일이라도 그만둘 겁니다. 배우는 도구일 뿐, 뜻이나 목표가 아니니까요. 사람들과 함께 가고, 좋은 세상을 만드는 게 바람이에요.”
고준은 “파라다이스에 혼자 가는 건 최고의 형벌이란 말이 있지 않나. 함께 가야 행복한 것”이라며 ‘피핑’을 통해 배우는 물론 신인 감독과 작가 발굴에 힘쓸 예정이라고 말했다. 기존 스타보다 ‘재야의 고수’에게 기회를 주고, 보석 같은 인물을 찾겠다는 계획이다.
“누군가는 제게 마이너스가 된다고, 당장 중단하라고 말하죠. 하지만 어떤 무대든 서야 한다는 게 저의 생각입니다. 나이트 무대에서도 연기를 해봤고, 20대 땐 유랑극단 만들어서 전국을 돌면서 공연도 했는걸요. 물론 저도 힘들지만, 열심히 해보려고 합니다. 전 아직도 영화배우가 꿈이거든요. 다만 지금은 영화만 고집하진 않아요. 드라마든 뭐든 작품만 좋다면 어떤 플랫폼이든 상관없습니다.”
유수경 기자 uu84@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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