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한 폭염에 아이스크림처럼 녹아버린 아스팔트… 도로 곳곳 '지뢰밭'
올여름 6, 7월 서울만 88건 변형 발생
포트홀·싱크홀 등 지반 침하도 잇따라

최고 온도가 34.6도까지 올라 폭염경보가 내려졌던 지난달 31일 서울 서초구 반포동 신반포로의 중앙버스전용차선 한복판. 아스팔트 도로 위로 마치 밭이랑처럼 두둑하게 솟은 융기 4개가 발견됐다. 융기 폭은 50㎝, 길이는 약 10m 남짓으로 꽤 컸다. 민원을 받고 출동한 서울시 남부도로사업소 직원들은 구슬땀을 흘려가며 약 1시간에 걸쳐 솟은 부분을 깎아내는 등 도로를 정비했다. 사업소 도로보수과 반장 정병희(55)씨는 "찜통 무더위에 어제까지 멀쩡하던 도로가 하루아침에 솟는 일이 많다"며 "새로 포장해도 폭염으로 또 변형되곤 해 전체 보수는 여름이 지난 후 진행하고 그사이 매일 긴급 조치를 하고 있다"고 말했다.

폭염 속 올여름 소성변형 88건 발생

극한 폭염으로 도심의 도로가 뒤틀리는 '소성변형'이 잦아지면서 사고 위험이 커지고 있다.
11일 기상청에 따르면 지난달 전국 폭염 일수는 14.5일로 작년 같은 기간(4.3일)보다 10.2일 많았다. 폭염 일수는 일 최고기온이 33도 이상인 날의 수다. 석유가 원료인 도로 포장용 아스팔트는 기온이 30도 이상이면 영향을 받기 시작해 35도가 넘어가면 손상이 심해진다. 연이은 폭염으로 아스팔트 표면 온도가 50~60도로 치솟아 물러지면서 융기나 구멍이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다. 지난달 서울 동대문구 홍파초등학교, 울산 북구 농소초등학교 인근에선 도로가 아이스크림처럼 녹았다 다시 굳은 듯한 변형이 생겨 소방 당국과 지자체가 출동해 복구 작업을 벌였다.
기록적인 폭염이 닥친 서울 도심의 도로도 몸살을 앓았다. 서울의 지난달 폭염 일수는 15일로 작년(2일)의 7.5배였다. 서울시는 올여름부터 소성변형 건수를 본격 집계했는데 6월 23건, 7월 65건 등 두 달간 88건에 달했다. 서울 영등포, 동작, 서초 등 5개 자치구의 관내 보수를 맡고 있는 정씨는 "하루 평균 1~3건을 수리하는데 올여름은 지난해보다 대폭 늘었다. 버스 정류장마다 (도로 뒤틀림이) 있을 정도"라고 혀를 내둘렀다.

아스팔트 도로 뒤틀림은 무거운 버스가 다니는 전용 노선이나 가장자리 차로에서 주로 생긴다. 이를 방치하면 지나는 차가 큰 충격을 받거나 차고가 낮은 차량은 바닥이 긁히기도 한다. 또 보행자가 걸려 넘어져 다칠 수도 있다. 집중호우 때에는 변형된 도로가 가장자리로 밀리면서 배수구를 막아 도로 침하 등 추가 피해로 이어지기도 한다. 남부도로사업소 도로보수과 실무관 엄두현(29)씨는 "횡단보도에 소성변형이 생기면 휴대전화 화면을 보며 걷다가 걸려 넘어지는 사례가 많아진다"며 "특히 고령층은 다칠 위험이 커 수시로 보수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지반침하 위험도

폭염이 지속되면 지반이 아래로 꺼지는 침하 현상도 속출한다. 2020년부터 2024년까지 서울시의 도로 파임(포트홀) 보수 13만4,768건 가운데 35.8%(4만8,245건)가 여름철(6~8월)에 집중됐다. 포트홀은 도로 표면에 생기는 수 ㎝에서 수십 ㎝ 크기 구멍이다. 빠르게 달리는 차량이 포트홀을 밟으면 타이어 파손과 차량 손상으로 대형 사고가 날 수 있다.
도로 뒤틀림은 큰 인명 피해를 초래할 수 있는 땅꺼짐(싱크홀) 현상과도 무관치 않다. 땅꺼짐은 노후된 하수관로 파손으로 인한 누수 등이 주 원인이지만 고온으로 지반이 약해지면 발생 가능성이 더욱 높아진다. 실제 지난달 27일 서울 동대문구 용두동 동북선 경전철 공사장 인근 도로에 생긴 싱크홀(가로 40㎝·세로 20㎝·깊이 20~30㎝)은 고온으로 인한 지반 약화가 원인으로 꼽혔다. 남부도로사업소 관계자는 "여름철 하루 30~40건의 포트홀을 수리하는데, 2건 정도는 싱크홀이 의심된다"고 했다.
기후변화에 잘 견딜 수 있도록 아스팔트 자재의 성능을 높여야 하지만 현재 관련 연구와 투자는 미미한 현실이다. 박창근 가톨릭관동대 토목공학과 교수는 "폭염과 폭우 같은 이상기후를 견딜 수 있는 자재 개발이 필요하다"며 "아스팔트 성능 개발 연구 목표가 경제성이나 친환경성 등에만 머무르지 않고 기후변화 대응력을 핵심으로 삼아야 하고 관련 투자도 확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허유정 기자 yjheo@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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