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포커스] 관세와 强달러 다 잡은 트럼프, 다음 전략은?

나지홍 논설위원 2025. 8. 11. 23: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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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일·EU와 타결한 관세협상은
미국에만 유리한 ‘불평등조약’
弱달러 카드를 비축한 트럼프
언제든 환율전쟁 불붙일 수 있어
한미 관세 협상안에 서명하는 트럼프 -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31일 백악관 집무실에서 한미 관세 협상 내용이 포함된 것으로 추정되는 문건에 서명하고 있다. 백악관은 이날 X 계정에 트럼프 대통령이 문서에 서명하는 사진과 함께 한미 무역 협상이 타결됐다는 소식을 전했다. /미 백악관 X

일본·EU(유럽연합)에 이어 한국이 미국과 관세 협상을 타결했을 때 가장 충격을 받은 나라는 아마 일본이었을 것이다. 지난달 22일 일본이 세 곳 중 처음으로 상호 관세율을 25%에서 15%로 낮췄을 때 이시바 시게루 일본 총리는 “대미 무역 흑자를 기록하는 국가 중 최저 세율”이라며 큰 성과로 내세웠다. 스콧 베선트 미 재무장관은 일본이 미국에 제공하기로 한 5500억달러 규모의 투자 펀드에 대해 “다른 나라들이 모방하기 힘든 혁신적인 자금 조달 메커니즘”이라고 추켜세웠다. 투자 펀드가 일본의 히든 카드였다는 뜻이다.

하지만 며칠 뒤 미국은 이 히든 카드로 EU와 한국을 압박해 각각 6000억달러, 4000억달러의 투자 약속을 이끌어냈다. 관세율도 일본과 똑같은 15%로 정해졌다. 일본이 애써 준비한 히든 카드가 미국의 필승 카드로 활용된 것이다.

미국은 이번 협상에서 어떤 비용도 치르지 않고 완승(完勝)을 거뒀다. 다른 나라들은 미국으로 수출할 때 15% 관세를 물어야 하지만, 미국 제품을 수입할 땐 관세를 못 물린다. 2차 대전 이후 80년간 자유무역의 원칙이던 상호 이익은 사라지고, 미국의 일방적 이익만 남게 된 것이다. 1854년 미국이 일본을 무력으로 개항시키고 체결한 ‘미·일 화친조약’처럼 제국주의 열강이 약소국을 강제로 개방하고 맺은 불평등조약과 다를 바 없을 정도다.

특히 트럼프는 미국 제조업 부활의 핵심인 철강 산업 보호를 위해 무려 50%의 관세를 예외 없이 모든 나라에 부과했다. 미국으로 철강을 수출하지 말라는 선전포고나 다름없다. 트럼프의 주요 지지 기반인 러스트벨트(Rust Belt·쇠락한 공업 지대)의 옛 이름은 스틸벨트(Steel Belt·철강 지대)였다. “철강이 없으면 국가도 없다(If you don’t have steel, you don’t have a country)”가 트럼프의 지론이다.

트럼프의 최대 성과는 달러 가치를 건드리지 않고 관세를 관철한 것이다. 원래 이번 관세전쟁의 출발은 미국 무역 적자 개선이었다. 수출과 수입의 차이인 무역수지는 통화가치와 반대 방향으로 움직인다. 달러 가치가 강해질수록 미국 무역 적자가 늘어나는 것이다. 트럼프도 무역 수지 개선을 위해 약(弱)달러를 선호한다고 공언해 왔다.

하지만 달러 가치 하락엔 부작용도 있다. 미국으로 들어오는 수입품 가격이 올라 물가를 자극하는 것이다. 물가에 민감한 정치인에겐 치명적이다. 그런데 트럼프는 이번 협상에서 강(强)달러를 유지하면서 관세만으로 무역 수지 개선의 발판을 마련했다. 환율 전쟁이란 비장의 카드를 쓰지 않고 아낀 것이다. 이번에 아낀 카드는 언제든 꺼내들 수 있다. 미국 무역 적자 개선을 위해 일본 엔화와 독일 마르크화를 희생시켰던 1985년 플라자 합의 같은 승부수를 던질 가능성이 남아 있는 것이다.

관세 협상이 마무리되자 트럼프가 약달러주의자인 스티븐 미란 백악관 국가경제자문위원장을 연방준비제도 새 이사로 지명한 것은 예사롭지 않다. 미란은 미 대선 직후인 작년 11월 미국의 무역·재정 적자 해소를 위해 징벌적 관세 부과와 약달러 정책이 필요하다는 내용의 이른바 ‘미란 보고서’로 주목받았다. 이 보고서에서 미란은 제2의 플라자 합의인 ‘마러라고(트럼프의 별장 이름) 합의’를 주장했다.

최근 흐름을 복기해 보면, 관세 협상은 타결됐지만 트럼프의 무역 전쟁은 이제 시작에 불과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국제 금융 석학 배리 아이컨그린 UC버클리 교수는 “관세와 환율 정책을 결합하면 보호무역의 파괴력이 더 커진다”고 경고해 왔다. 관세전쟁이 끝났다고 안도하기보다 환율 전쟁으로 확전될 가능성에 대비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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