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성욱의 과학 오디세이] [87] 한국도 ‘공대에 미친’ 나라였다
최근 지상파 방송의 다큐멘터리 ‘인재 전쟁’이 화제다. 부제는 ‘공대에 미친 중국, 의대에 미친 한국’. 그러나 한국이 처음부터 의대에 열광했던 것은 아니다. 6·25전쟁 이후 폐허 속에서 미군이 가져온 책으로 과학기술을 공부한 젊은이들이 있었다. 박정희 정부는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연구원에게 서울대 교수의 3배 월급과 새 아파트를 제공했다. 연구비는 경제기획원도 손대지 못하게 했다. 이 시기 우수한 학생들이 화학공학, 전기전자, 물리학 등 이공계에 몰렸다.
1970~80년대 한국은 지금의 중국처럼 ‘공대에 미친’ 나라였다. 그런데 외환 위기(1997년)라는 변곡점이 등장했다. 정부 출연 연구소와 기업 연구소의 연구원들이 대량 해고됐다. 대덕연구단지의 치킨집 주인이 대부분 (해고된) 이공계 박사이며, 과학 기술을 전공한 아버지들이 자식을 절대 이공계에 보내지 않겠다고 다짐한다는 소문이 돌았다. 이 무렵부터 우수 인재가 의대, 치의대, 한의대에 쏠리기 시작했다. 초등학교 1학년부터 학원 의대반이 운영되는 사태를 낳은 씨앗이 이때 뿌려졌다.
국가 발전의 동력인 과학기술 엔진을 다시 돌릴 수 있을까? 우장춘, 석주명, 이휘소 같은 한국 과학기술자들의 이름을 딴 도로와 지하철역, 대학 건물을 만드는 것부터 시작하면 어떨까? 젊은이들이 가장 많이 몰리는 강남역이나 삼성역에 ‘과학 명예의 전당’ 같은 건물을 만들어 보는 것은? 대통령이 한 번도 빠지지 않고 국가과학기술자문회의를 주재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건 어떨까?
대학과 연구소 같은 현장을 종종 찾아 과학기술자들을 격려하고 그들과 격의 없는 대담을 나누면 사기 진작에 도움이 될 것이다. 정치인이나 장관들이 원로 과학기술자에 대한 존경의 예를 표하는 것도 바람직하다. 대통령이 외국 순방을 갈 때 기업 총수만이 아니라 한국을 대표하는 과학기술자들을 함께 수반하는 것도 방법이다. 과학기술자가 사회적 존경을 받고 있다는 메시지로 세상을 채워보자. 이런 일은 바로 시작할 수 있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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