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호정의 톱밥 먹는 중입니다] [3] 목수 일의 시작은 ‘사다리 옆에 서 있기’

TV에는 멋진 목수만 나온다. 내 모습과는 다르다. 나는 그냥 막내 목수다. 서른 중반, 제 직군에서 제 몫을 하는 친구들은 벌써 누군가의 선배인데 나는 아직 이 일로 먹고살 수 있을지 확신이 없다. 10여 년 전 처음 취업했을 땐, 이 나이쯤엔 미래를 두고 불안해하지 않을 줄 알았다. 참으로 오만했다.
일 못하면 잘리는 건 어디든 같다. 이곳은 몇 주짜리 현장이 곧 시험장이다. 첫 현장에서 내가 맡은 임무는 ‘사다리 옆에 서 있기’였다. “오늘은 서 있는 게 중요한 일이야. 진짜야.” 선배들은 내게 더 바라는 게 없었다. 실제로 공정을 잘 몰라 다른 보조는 못하고, ‘이렇게 서 있다가 월급 받아도 되나?’ 싶어 주변 청소라도 하다가 되레 주의를 받았다. “사다리 옆에 붙어 있지 않고 뭐해!?”
‘2인 1조 의무’ 때문에 사다리 옆에는 사람이 꼭 있어야 한다. 내가 없으면 숙련자가 대신 가야 하니 낭비다. 사다리 지박령이 된 나는 안전을 지키겠다며 눈을 부릅떴다. 그 시선은 작업자에게 부담이 되었다. 그래서 가끔만, 조금씩만 눈에 힘을 주었다.
청소와 정리정돈, 단순 보조가 현장에 꼭 필요한 일이라고 머리로는 이해했다. 그게 막내인 내 몫이라는 것도 넉넉히 인정했다. 그런데도 왠지 ‘나는 아직 쓸모없네’라는 생각은 지울 수 없었다. 만약 같은 생각을 하는 누군가가 있다면 “하찮은 일이 아니다. 이것도 배워야 성장한다”라고 말했겠지만, 정작 나 자신에게는 그 말을 해주지 못했다.
점차 ‘사다리 옆에 서 있기’만 하진 않게 됐다. 보조 실력도 조금씩 늘었다. 핵심은 ‘눈치+관찰력+타이밍’이다. 다루끼(구조용 목재)를 자르기 전, 선배가 치수를 읽는다. 줄자를 탁 펼치고 “1357!” 한마디 한다. 자재 옆에 선 막내는 곧바로 재단선에 줄을 긋고 자른 뒤 건넨다. 사다리 아래서 매의 눈으로 지켜보다 피스가 모자라 보이면 얼른 채워 드리고, 다음에 쓸 합판도 미리 준비한다. 선배가 말하기 전에 움직여야 한다. “본드 없다!”는 소리를 듣고서야 몸을 움직일 때면 아쉽다. 미리 해 놓을 수 있었는데!
언제부턴가, 막내가 해도 큰일 나지 않을 작업을 하나씩 맡게 됐다. 아이러니하게도 손에 다른 일을 쥐고 나서야, 청소와 정리정돈 같은 잡무의 중요성을 머리뿐 아니라 몸으로도 알게 됐다.
일을 마치면 다 같이 소주를 한잔한다. 술잔이 비워지면 늦은 격려가 번진다. “나도 1년 차엔 그랬어~”로 시작해 “그래도 열심히 하려는 게 보인다”로 끝나는 말들. 기분이 좋아진 목수 선배들의 말에 내 기분도 좋아진다.
‘작은 일부터 점점 더 큰 일로’ 경로를 잡아간다. 막내는 오래 머물고 싶은 자리는 아니지만, 여기서 배울 걸 다 배워야 사다리 위에서도 잘할 수 있다. 남들 사는 대로 살아가는 게 초조하고 불안할 일은 아니다. 먹고사는 건 다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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