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소란의시읽는마음] 수양버들

2025. 8. 11. 22:57
자동요약 기사 제목과 주요 문장을 기반으로 자동요약한 결과입니다.
전체 맥락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본문 보기를 권장합니다.

가까운 곳에 몇 그루 수양버들이 있다.

평소에는 있는 듯 없는 듯 처연히 발끝만 내려다보지만 바람이라도 불면 '팔'을, 그 치렁치렁한 팔들을 거세게 휘젓곤 한다.

"팔들을 나누어 가지려고 해"라는 시의 시작에 붙들려, 한 그루 선한 나무를 생각한다.

온갖 떠도는 팔들을 함께 나누거나 한데 그러모아 보려는 마음.

음성재생 설정 이동 통신망에서 음성 재생 시 데이터 요금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글자 수 10,000자 초과 시 일부만 음성으로 제공합니다.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이기리
팔들을 나누어 가지려고 해
공중에서 힘없이 털썩 내려앉는 팔을,
유언을 전하려고 눈꺼풀을 떨면서
입을 떼는 순간 툭 떨어지는 팔을,
허리가 거의 다 굽은 할머니가 아픈 무릎을 펴며
검은 봉지에 방울토마토를 한 움큼 덤으로 주는 팔을,
등 뒤에서 일어나는 사건을 대신 받아주고 막아주는 팔을,
아무리 노력해도 눈물이 나오지 않는 모습이 더욱 비참해져서
가슴을 두드리는 팔을,
흐르지 않는 눈물방울을 그리며 물기를 느끼고 갈라지는 두 뺨을 닦는 팔을,
죽은 작곡가가 쓴 곡을 연주하기 위해 꺾는 최초의 각도를 사랑하는 팔을,
박수하는 팔을,
인사하는 팔을,

(하략)
가까운 곳에 몇 그루 수양버들이 있다. 평소에는 있는 듯 없는 듯 처연히 발끝만 내려다보지만 바람이라도 불면 ‘팔’을, 그 치렁치렁한 팔들을 거세게 휘젓곤 한다. 지나는 누군가라도 불러 세우려는 듯. 긴한 이야기를 청하려는 듯. 최선으로 펄럭이는 그 팔들은 아주 먼 곳까지 닿을 것 같다. 도처의 쓸쓸한 팔들에게로. 예기치 않은 새로운 팔이 불쑥 돋아나 다가올 것도 같다.

“팔들을 나누어 가지려고 해”라는 시의 시작에 붙들려, 한 그루 선한 나무를 생각한다. 나무의 마음을. 온갖 떠도는 팔들을 함께 나누거나 한데 그러모아 보려는 마음. 스스럼없이 누군가를 껴안아 보려는 마음. 그런 도저한 마음을 가진 사람도 한편에는 있겠지.

태풍 속에서 마구 흔들리는 나무를 떠올리자면, 힘겹던 어느 날의 내가 그 곁에 서 있는 것 같다. 내 팔을 나누어 잡으려 멀리서 오고 있는 한 사람 또한 가늘게 겹쳐 있는 것 같다.

박소란 시인

Copyright © 세계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