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1]'순국 85년 만의 귀향'..문양목 지사 유해 조국 품으로

김상기 2025. 8. 11. 2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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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JB 8뉴스

【앵커멘트】

정부가 광복 80주년을 맞아 오는 13일
해외에 안장돼 있던 독립유공자 6명에 대한
유해 봉환식을 갖습니다.

우리 지역에선 태안 출신으로
미국에서 독립운동의 씨앗을 뿌린
문양목 지사가 순국 85년만에
고국 품에 안기게 되는데요.

광복절을 앞두고 오늘부터 3차례에 걸쳐
문 지사의 유해 봉환이 갖는 의미를
짚어봅니다.

첫 순서로 문 지사의 독립운동 발자취와
우여곡절 끝에 이뤄진 유해 봉환 과정을
김상기 기자가 전해드립니다.

【기자】

1869년 태안군 남면 출생.
평범한 농가의 아들 문양목은
동학농민운동에 뛰어들며
일찍부터 '약한 백성을 위한 길'을 걸었습니다.

일제강점기 도피 생활 도중
서구 문물을 접했고,
하와이 사탕수수밭 노동자로
미국에 이주했습니다.

이후 미국 샌프란시스코로 옮겨
자금을 모으고 한인 사회의 지도자로 활동하며
독립운동의 최전선에 섰습니다.

1908년 친일 외교 고문 스티븐스의
"일본이 한국을 보호해 백성들이
더 좋아졌다"는 망언에 맞서,
공개 사과를 요구했습니다.

다음날 벌어진
스티븐스 저격 사건과 관련해,
문 지사는
사건을 주도한 장인환·전명운의
재판비용 모금과
변호사 선임을 끝까지 책임졌습니다.

'한국인은 아직 살아 있다'는 사실을
미국사회에 각인시킨 순간이었습니다.

하지만 해방 이후 그의 이름은 잊혔습니다.

1995년에야 건국훈장 독립장을 받았고,
2004년 '6월의 독립운동가'로 선정됐지만,
유해는 미국 맨티카 파크뷰 묘지에
홀로 남아 있었습니다.

▶ 인터뷰 : 김현우 / 미국 새크라멘토 학생
- "문양목 선생님 이야기를 이번에 처음 접했죠. 가슴이 뭉클했어요. 지금 우리가 살아가는 미국 땅에도 그분들의 발자국이 있다는걸요. 여기서 우리 뿌리를 찾은 기분이었어요."

직계 후손이 없어 유해 발굴 절차조차
막혔지만, 산호퀸 카운티
지방법원과의 법리 다툼 끝에
결국 유해 발굴
청원 승인 명령을 받아냈습니다.

▶ 인터뷰 : 최홍일 / 미국 변호사
- "판례가 캘리포니아에는 몇 개 없으니까 미국 전체 판례를 다 검색해서 그거를 설득하려고, 그 자료에 맞춰서 판례를 적용하는 거, 그게 시간이 너무 많이 걸렸고…."

10년에 걸친 노력 끝에
봉환이 가능해졌습니다.

▶ 인터뷰 : 성일종 / 국회의원
- "미국의 캘리포니아 주법이 안 되는 거를 저희가 정부가 적극 나서고 또 태안 군민들 특히 기념사업회가 나서서 설득을 하고 자료를 제출하고 이렇게 해서 오시는 데까지 굉장히 오랜 시간이 걸렸습니다."

오는 13일, 문 지사는
국립대전현충원에 안장됩니다.

순국 85년 만에 조국 땅을 밟는
문양목 지사의 안장식은,
잊힌 독립운동가를
다시 역사 속에 세우는 자리가 될 것입니다.

TJB 김상기입니다.

(영상취재:김경한기자 / CG:강지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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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기 취재 기자 | skkim@tj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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