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에세이] 왜 지금, 대학이 바뀌어야 하는가
2025년 3월, 포브스지는 ‘New Ivies(뉴 아이비즈)’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전통적인 아이비리그를 넘어 고용주가 선호하는 새로운 20개 대학을 발표했다. 공립 10곳, 사립 10곳이 선정된 이들 대학은 기업과의 연계성, 실험적 교육 프로그램, 학생 역량 기반의 선발을 통해 전통 명문을 넘어서는 경쟁력을 보여줬다. 특히 최근 5년간 아이비리그 졸업생에 대한 고용 선호도가 37% 감소했다는 설문 결과는, 이제 대학이 이름이 아닌 ‘실질적 가치와 성과’로 평가받는 시대임을 분명히 보여준다.
같은 시기 하버드대와 컬럼비아대는 트럼프 행정부 결정으로 수십억 달러의 연방 연구비 지원이 중단되는 사태를 겪었다. 삭감된 자금은 화학 생명과학 의과학 등 핵심 과학 분야에 집중돼 있었고, 이는 고등교육 기반 연구 생태계 전반에 큰 위기를 불러왔다. 무엇보다 이 사건은 오늘날 대학이 얼마나 불안정한 구조 위에 놓여 있는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과학은 시대의 변화를 선도해 왔지만, 대학은 그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관성이 축적된 공간에서 신중함은 미덕일 수 있으나, 변화에 대한 저항은 오히려 미래를 가로막는 벽이 된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과학의 탐구 정신을 닮은 성찰과 점진적 전환이다. 대학이 사회의 질문에 응답하지 못할 때, 과학의 미래도 불투명해진다.
2024년 OECD 보고서는 우리나라가 국제학업성취도평가(PISA)와 고등교육 진학률에서 높은 성취를 이뤘다고 평가하면서도, 디지털 전환과 인구 구조 변화 속에서 교육의 방향 전환이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지식을 단순히 전달하는 교육에서 벗어나, 학생이 스스로 배우고 판단할 수 있는 주체적 학습자로 성장하도록 생태계를 전환해야 한다는 것이다. 특히 디지털전환과 인공지능의 확산은 지식 그 자체보다, 지식을 활용하고 재구성하는 역량을 더욱 요구하고 있다. 그런데 하버드 교육대학원의 브라이언 로젠버그 박사는 “고등교육은 가장 변화에 저항적인 산업”이라며, 지속 불가능한 재정 구조, 학생 수 감소, 그리고 신뢰 저하 속에서 구조적 개혁 없이는 대학의 미래가 위태롭다고 진단했다. 단편적 프로그램이나 일회성 사업으로는 위기를 극복할 수 없고, 대학의 근본 구조와 문화를 바꾸지 않으면 변화는 표면에 머문다고 했다.
‘타임즈 고등교육’은 최근 칼럼에서, 중국 유학생들이 귀국 후 채용 시장에서 겪는 어려움을 통해 ‘일괄형 진로 교육’이 더 는 통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문화 적합성, 실무 경험, 인공지능 기반 채용 시스템은 전통적 글로벌 교육 모델과 충돌하고 있다. 지난해 포브스 또한 ‘소멸형 스킬(perishable skills)’보다, 협업·소통·문제해결력 같은 ‘내구형 스킬(durable skills)’이 미래 경쟁력이라고 했다. 이 지속 가능한 역량은 산업계뿐만 아니라 과학기술계에서도 생존 조건이다.
과학기술 분야는 이러한 변화가 더욱 두드러진다. 단순한 실험 수행 능력만으로는 부족하며 문제 정의, 협업, 해결책의 설계와 실행을 아우르는 통합적 역량이 요구된다. 저명한 학술지들도 STEM (과학 기술 공학 수학) 교육이 단순 융합을 넘어, 탐구 기반·체험 중심·협업 설계형으로 전환되고 있다고 진단한다. 실험실 안에서 완결되는 지식이 아니라 현실의 문제를 풀기 위한 열린 태도와 다학제적 사고가 요구되는 시대다.
1970년대 초 필자의 초등학교 시절 선생님은 “앞으로는 대학생이 개인 타자기를 들고 다니며 과제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당시에는 상상하기 힘든 말이었지만, 상상력을 넘어선 발전으로 인공지능 시대를 맞이했다. 이제는 변화가 느리다는 이유만으로 미래를 놓칠 수 없는 시점이다.

국가와 도시의 경쟁력은 과학기술 역량에 달려 있다. 그리고 그 과학은 장기적 탐구와 실패를 견디는 지적 생태계, 즉 대학에서 자란다. 부산이 진정으로 경쟁력 있는 도시로 도약하려면 과학기술을 기반으로 한 대학 혁신이 더 이상 미뤄져서는 안 된다. 대학이 변해야 도시가 바뀐다. 대학의 변화는 곧 우리가 과학으로 그려갈 미래의 출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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