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안화력 불법파견 1심 선고 앞둔 하청노동자의 편지 [왜냐면]

한겨레 2025. 8. 11. 18:37
자동요약 기사 제목과 주요 문장을 기반으로 자동요약한 결과입니다.
전체 맥락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본문 보기를 권장합니다.

2019년 태안화력발전소에서 하청 노동자로 일한 지 10년째, 두돌 된 딸을 키우던 저는 조금이라도 나은 환경에서 아이를 키우고자 새집으로 이사했습니다.

전세대출은 한도 끝까지 받았고, 그 대출이 제 어깨를 무겁게 짓눌렀습니다.

다음주도, 그다음주도 똑같을 거라는 생각에 속이 문드러지고, 몸은 더 지쳐갔습니다.

저와 제 동료들이 법정에 서기까지는 수많은 두려움이 있었습니다.

음성재생 설정 이동 통신망에서 음성 재생 시 데이터 요금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글자 수 10,000자 초과 시 일부만 음성으로 제공합니다.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태안화력 고(故) 김충현 비정규직 노동자 사망사고 대책위원회(대책위) 관계자들이 지난 6월19일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 앞에서 한전KPS 불법파견 인정 촉구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정철희 | 공공운수노조 한전KPS비정규직지회 태안분회장

2019년 태안화력발전소에서 하청 노동자로 일한 지 10년째, 두돌 된 딸을 키우던 저는 조금이라도 나은 환경에서 아이를 키우고자 새집으로 이사했습니다. 전세대출은 한도 끝까지 받았고, 그 대출이 제 어깨를 무겁게 짓눌렀습니다.

매년 용역회사가 바뀌는 발전소 하청 비정규직 노동자의 생활이 안정될 리 없습니다. 전세 만기가 다가와 전세금을 인상해 달라는 집주인의 요구에, 은행에서 요구하는 각종 서류들에 휘청이며 저는 제 처지를 실감했습니다. 특히 회사가 바뀔 때마다 전세대출에 필요한 각종 소명 서류를 새로 떼야 했고, 그 과정은 늘 낯설고 버거웠습니다.

그럼에도 마음 한켠에는 작은 희망이 있었습니다. 고 김용균 노동자 사망 이후 정부가 공공부문 비정규직 정규직화를 추진한다는 소식을 들었기 때문입니다. 회사가 근속연수와 임금을 조사한다는 이야기도 나왔습니다. ‘혹시 나도 정규직이 될 수 있을까.’ 짧은 상상을 했습니다.

그러나 2020년, 돌아온 것은 전혀 다른 소식이었습니다. 새 용역업체는 월 30만~40만원의 임금 삭감을 통보했습니다. 수년 동안 겨우 몇만원씩 올려온 월급이 하루아침에 깎였습니다. 이유를 묻자 원청 한전케이피에스(KPS)가 하도급 설계를 잘못했고, 공사비가 줄었다는 답이 돌아왔습니다. 선택지는 두가지였습니다. 임금 삭감 계약서에 서명하거나, 그만두거나. 당시 현장소장은 “지금이 마지막 고비일 수 있다”라며 “이번만 버텨보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당장 그만둘 수 없었던 저는 결국 서명했습니다.

이후에도 상황은 나아지지 않았습니다. 전력 예비율이 높아져 주말마다 발전소의 ‘기동’과 ‘정지’ 작업이 반복됐지만, 인력은 턱없이 부족했습니다. 주말마다 누군가는 출근해야 했지만, 그 노동에 대한 수당은 없었습니다. 협력업체는 전체 노무비 안에서 시간외수당을 쪼개 지급했고, 누군가 받으면 다른 사람 몫이 줄어드는 구조였습니다. 결국 우리는 돈 한푼 못 받고, 주말마다 가족과의 약속을 깨야 했습니다. 다음주도, 그다음주도 똑같을 거라는 생각에 속이 문드러지고, 몸은 더 지쳐갔습니다.

앞길이 막막하던 그 무렵, 우연한 계기로 동료들과 노동조합을 만들었습니다. 회사로부터는 들을 수 없었던 정보를 알게 되고, 원청과 하청 간 불공정 계약 구조를 비로소 알게 됐습니다. 그것은 불법파견의 실체였고, 결국 저와 동료들은 불법파견 소송을 제기하게 되었습니다.

저와 제 동료들이 법정에 서기까지는 수많은 두려움이 있었습니다. 회사와의 관계, 생계, 가족의 불안이 우리를 수없이 주저앉혔습니다. 그럼에도 용기를 낸 이유는 단 하나였습니다. 법 앞에서는 우리의 권리와 존엄이 인정받을 수 있으리라는 믿음 때문이었습니다.

부디 이번 판결(8월28일 선고)이 원청과 하청 구조 속에 묻혀온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목소리를 세상에 드러내고, 같은 피해가 반복되지 않게 하는 계기가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Copyright © 한겨레신문사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