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심 찬 美 알래스카 LNG 프로젝트, 한국 기업은 참여 망설여[글로벌 현장]

“이곳에도 얼음이 얼죠. 하지만 결코 배가 지나가기 어려울 정도로 얼음이 두꺼워지진 않아요.”(니키스키 주민 키스 거키·67)
지난 7월 29일 미국 알래스카 앵커리지에서 차로 3시간가량 남서쪽으로 달려 도착한 니키스키 지역. 약 400억 달러(약 55조원)에 달하는 알래스카 북부 액화천연가스(LNG) 개발 프로젝트가 진행된다면 생산된 가스를 액화시켜 수출하는 역할을 맡게 될 부동항이다.
니키스키는 해안가를 따라가는 490번 도로 양쪽에 조성된 작은 마을이다. 지금은 쇠락했지만 한때는 일본에 LNG를 수출하며 왕성하게 번창했다. 1969년 미국은 니키스키 북부의 쿡 인렛(Cook Inlet) 가스전에서 생산된 LNG를 정제해 일본 도쿄가스, 도쿄전력 등에 팔았다. 미국의 첫 LNG 수출이었다.
현재도 이 터미널 시설은 일부 사용 중이다. 부두에는 석유와 가스를 싣고 오가는 배를 위한 도크가 여럿 눈에 띄었다. 현지 정유업체 마라톤에서 근무하다 11년 전 은퇴했다는 거키는 “지금 남아 있는 도크 중에 일부는 쓰이지 않고 있다”며 “생산량이 줄어 필요가 없어졌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40여 년간 가스를 생산한 쿡 인렛 가스전은 생산량이 줄면서 2010년대 초 수출을 중단했다. 알래스카 지역 내 수요를 감당하기에도 부족해졌기 때문이다.
알래스카가 현재 북부 가스전 개발을 추진하는 이유는 미국 본토와 떨어져 있는 알래스카의 자체 수요를 감당하기 위한 에너지원 개발이라는 목적도 강하다. 이후 남는 양은 수출하겠다는 것이다.
1300km 파이프 건설이 쟁점
알래스카 LNG 프로젝트는 프루도베이 가스전에서 니키스키까지 1300km가량의 파이프라인을 연결해 가스를 실어나른 후 니키스키에서 가스를 액화시켜 배로 실어나르는 것이다. 지금까지는 부정적인 평가가 많았다. 특히 2015년 엑손모빌이 이 프로젝트를 검토한 후 사업성이 없다고 판단했다. 하지만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한국, 일본, 대만 등에 관세를 무기 삼아 이 프로젝트에 대한 투자를 압박하고 있다.
마이크 던리비 알래스카 주지사에 따르면 사업은 총 세 단계로 진행된다. 1단계는 파이프라인 건설이다. 미국은 1단계가 끝나면 2028~2029년에는 앵커리지와 페어뱅크스 등 알래스카주 내에서 필요한 가스를 공급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지만 파이프라인 건설이 순조롭게 진행된다는 전제하에서 나오는 얘기다.
2단계는 니키스키의 LNG 액화 수출 플랜트 건설이다. 액화시킨 후에야 LNG선을 통해 이를 해외로 실어나를 수 있다. 던리비 주지사는 “한국, 대만, 태국, 일본, 인도, 필리핀 등으로 LNG 수출이 개시되는 시점은 2030~2031년이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3단계는 북부 가스전의 탄소 등을 제거해 땅속에 가두는 가스 정제 플랜트 건설사업이다. 탄소배출을 줄이는 개발을 위해서다.
미국이 한국 등 아시아 동맹국의 참여를 요청하는 부분은 1단계 파이프라인 건설과 이후 생산량에 대한 구매계약이다. 120억 달러(약 16조6000억원)가량이 들 것으로 던리비 주지사는 예상했지만 실제 비용은 현재 예상하기 어렵다. 가장 어려운 부분이고 비용도 고무줄처럼 늘어날 수 있는 대목이다. 외부 투자자가 필요한 이유다. 리스크를 나눠 안자는 요청이나 다름없다.
지난 7월 30일 타결된 한·미 관세 협상에서 알래스카 LNG 관련 내용은 포함되지 않았다. 프로젝트의 타임라인을 고려하면 이번 협상에서 한국이 미국에 약속한 ‘3년 내 미국산 LNG 등 에너지 1000억 달러어치 구매’ 약속에서 알래스카산 LNG는 대상이 될 수 없다. 3년 내에는 파이프라인 건설도 완료를 장담하기 어렵다.
한국 정부와 기업들은 선뜻 나서기를 망설이고 있다. 1단계 투자에 대해서는 정보가 없어 파악하기 힘들다는 것이 첫 번째 이유다. 올초 이 사업의 개발책임을 맡게 된 미국 에너지인프라기업 글렌파른 측(지분율 75%)은 당초 3분기 중경제성 평가 결과를 내놓겠다고 했으나 던리비 주지사는 7월 29일 기자에게 “12월에 경제성 평가 결과가 나온다”고 했다. 4분기로 시기가 늦춰진 것이다. 이 결과가 나오기 전에는 어떤 판단도 약속도 하기 힘들다는 것이 우리 정부와 기업들의 공통된 입장이다.
글로벌 LNG 수급도 관건
프로젝트가 2단계에 접어들었을 때 우리가 이 LNG를 사는 게 유리한 계약일 것인지 여부는 1단계 파이프라인 건설비용과 별개의 문제다. 알래스카산 LNG에 대한 장기 구매계약이 무조건 나쁜 거래는 아니다. 일단 중동 카타르산 LNG를 사는 것에 비해 알래스카산 LNG는 훨씬 이동 거리가 짧다. 운송비용이 적게 들고 파나마 운하를 통과하는 비용도 아낄 수 있다.
게다가 현재 전 세계적으로 LNG 수요는 급격히 증가하고 있다. 셸이 올해 내놓은 LNG산업 전망 보고서에 따르면 글로벌 LNG 수요는 2040년까지 약 60% 증가해 연 6억3000만~7억2000만 톤에 이를 전망이다. 인공지능(AI)용 데이터센터 등 전기화 수요가 커지는 상황에서 탈탄소화 정책을 쓰기 위해서는 LNG가 손쉬운 대안이기 때문이다. 신재생에너지와 원자력발전 등을 보완하기에도 좋다. 특히 아시아의 수요 증가로 LNG 수입 경쟁이 붙을 수도 있다고 내다봤다. 지정학적인 요인을 고려하면 동맹국 미국으로부터의 에너지 수입은 한국의 안보 측면에서도 유리한 점이 있다.
문제는 공급도 빠른 속도로 늘어나고 있다는 것이다. 특히 러시아산 가스를 파이프라인으로 들여오던 유럽 국가들이 LNG로 수요를 전환하면서 이를 충족하기 위해 미국과 카타르 등을 중심으로 액화설비 및 수출 인프라 확충이 급속히 이뤄지고 있다. 그 결과 작년까지 연간 4억 톤 수준이던 글로벌 LNG 공급량은 내년부터는 5억 톤을 넘길 것이라는 전망이다.
골드만삭스는 “2025년부터 2028년 사이 매년 4500만 톤씩 공급 능력이 증가할 것”이라며 “이는 지난 4년간 연평균 증가량의 3배가 넘는 수준”이라고 분석했다. 글로벌 LNG 공급량은 2030년이면 6억 톤에 이를 것으로 전망되는데 제퍼리스는 같은 시기 글로벌 수요가 5억5000만 톤 수준에 그칠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이 경우 LNG 시장은 ‘바이어스 마켓’(소비자 우위 시장)으로 전환될 가능성이 높다.
게다가 알래스카산 LNG는 기본적으로 타 지역 대비 생산비가 좀 더 높을 여지가 있다. SK E&S의 한 관계자는 “파이프라인, 액화시설 등을 만드는 데 들어가는 비용이 적지 않기 때문에 전체 생산단가가 높아질 수 있다”면서도 “매장량이 기존 추정치보다 더 많은 것으로 나올 수도 있는 만큼 가격을 지금 판단하기는 어려운 문제”라고 말했다. 석유처럼 시장가격에 따라 거래되는 상품과 달리 가스는 20년 이상 장기 계약을 체결하기 때문에 더욱더 판단에 반영될 요소가 많다.
트럼프 정부의 압박 탓에 정부 차원에서 투자를 적극 검토하겠다고 약속하더라도 민간 기업에 이를 강요할 수는 없다. 결국 사업성 판단이 관건인데 사업 참여의 리스크를 보완할 수 있는 인센티브 제공 여부도 불확실하다. 한 기업 관계자는 “투자를 하는 만큼 박리다매로 팔겠다고 트럼프 정부가 결정한다면 좋겠지만 그런 결정을 할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앵커리지·니시스키(알래스카)=이상은 한국경제 특파원 selee@hankyung.com
김리안 기자 knra@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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