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호관세 발효됐는데…美, ‘의도적 우회수출’ 적발 가능할까

현정민 기자 2025. 8. 11. 17:25
음성재생 설정 이동 통신망에서 음성 재생 시 데이터 요금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글자 수 10,000자 초과 시 일부만 음성으로 제공합니다.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트럼프 “관세 회피 위한 우회 수출 제재할 것”
우회 수출 자체는 불법 아냐…의도 가려내기 어려워
미 통관 인력도 태부족…제재 실효성 떨어진다
단속 강화하면 글로벌 공급망 혼란 초래될 수도

미국이 지난 7일(현지 시각) 국가별로 새 상호 관세 체계를 발효한 가운데,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고강도 제재 대상으로 지목한 ‘우회 수출(transshipment)’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의도적인 우회 수출에 대해 강경 단속을 천명했지만 실제 집행 가능성에는 의문이 제기된다.

연합뉴스

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달 31일 행정명령을 통해 “의도적으로 원산지를 속여 관세를 회피하는 기업에는 해당 국가의 기본 관세율에 40%를 추가 부과하겠다”고 밝혔다. 올 들어 중국발 대미 수출이 급감하는 대신 베트남·말레이시아·인도네시아 등 동남아 국가의 대미 수출이 급증하자 ‘원산지 세탁(origin washing)’을 통한 관세 회피 가능성이 커졌다는 판단이 작용한 것으로 풀이된다.

실제로 노무라, 시티그룹, 바클레이즈 등 글로벌 금융사 이코노미스트들은 과거 중국에서 공급되던 품목이 불과 몇 주 만에 원산지만 바뀐 상태로 수입·공급되는 일명 ‘원산지 세탁(origin washing)’ 현상이 관측되고 있다고 지적한 바 있다. 이는 중국산 제품을 제3국 항구에서 최소한의 가공만 거쳐 현지산으로 둔갑시키거나 허위 원산지 증명서를 발급받아 관세를 회피하는 방식이다.

미국의 원산지 판정은 국제 무역 규범인 ‘원산지 규정(Rules of Origin)’에 따른다. 한 국가에서 생산된 농축수산물·광물·가축 등은 ‘전적으로 해당국에서 획득(wholly obtained)’된 것으로 분류되는 반면, 부품·소재가 여러 국가에서 공급된 경우에는 ‘실질적 변형(substantial transformation)’ 여부가 핵심 쟁점이 되는 것이다.

미국 국제무역위원회(ITA)에 따르면 실질적 변형이란 ‘제품의 형태, 외관, 성질이 제조·가공을 통해 근본적으로 변화하고 가치가 상당히 변동된 경우’를 의미하며, 세계무역기구(WTO)의 HS코드 변경 여부가 중요한 판단 기준이 된다.

예컨대 중국산 모피(HS코드 430400)를 이용해 이탈리아에서 여성용 모직 코트(HS코드 62021100)를 제작했다면 실질적 변형이 인정돼 원산지가 중국이 아닌 이탈리아로 결정될 확률이 높아진다. 다만 이 코트의 가격 구성을 고려했을 때 ‘중국산 원재료’에 비해 ‘이탈리아 내 제조 비용’이 지나치게 낮은 것으로 간주되는 경우, 코트의 원산지는 중국으로 최종 결정될 확률도 배제할 수 없다.

실제로 미국 세관국경보호국(CBP)은 앞서 필리핀에서 제조된 페인트 붓에 대해 핵심 부품인 솔과 금속이 모두 중국산이라는 이유로 제품 자체도 중국산이라는 판결을 내린 바 있다.

다만 우회 수출 자체는 불법이 아니며, 오히려 글로벌 무역에서 주요한 물류 전략으로 쓰인다는 점에서 이른바 ‘트럼프 제재’의 실효성이 도마에 오르고 있다. 기업들은 비용 절감이나 항로 가용성, 선박 제약 등 다양한 이유로 환적을 활용하는데, 이 역시 ‘의도적 우회 수출’로 간주될 수 있기 때문이다.

블룸버그에 따르면 싱가포르 항만의 경우 전체 컨테이너 물량 중 90%가 환적 화물로, 미국이 환적 자체를 단속한다면 이러한 물류 허브를 필두로 세계 공급망이 큰 혼란에 빠질 수 있다.

아울러 미국의 통관 인력과 물량을 감안하면 모든 수입품의 원산지를 일일이 검증하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점도 문제다. CBP는 연간 약 6만명이 수십억 건의 물품을 처리하는 구조로 ▲AI 분석 ▲데이터베이스 검색 ▲이상거래 패턴 감지 등을 활용해 의심 사례를 선별, 조사 과정에서 ▲공급망 서류 검토 ▲제조 공정 추적 ▲해외 공장 실사 등이 이뤄진다.

그러나 공급망이 다층적이고 가공 과정이 미묘할 경우 의도적 우회 수출을 검증할 명확한 증거를 확보하는 것은 사실상 어렵다.

전문가들은 이번 조치가 단순히 ‘관세 회피 차단’에 그칠지, 아니면 중국을 글로벌 공급망에서 배제하려는 전략의 일부일지 주목하고 있다. 프레데릭 노이만 HSBC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미국이 진정 원하는 것이 중국을 글로벌 공급망에서 제거하는 것인지, 아니면 단지 관세 차익을 막는 것인지 아직 불분명하다”며 “향후 집행 방식이 세계 교역의 흐름을 좌우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 Copyright ⓒ 조선비즈 & Chosun.com -

Copyright © 조선비즈.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