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왕·백성 할 것 없이 냉면으로 한여름 더위 식혀

김세호 경상국립대 한문학과 교수 2025. 8. 11. 17:15
음성재생 설정 이동 통신망에서 음성 재생 시 데이터 요금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글자 수 10,000자 초과 시 일부만 음성으로 제공합니다.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한문학브런치> 옛 문헌이 전하는 냉면 이야기

겨울 음식이라 알려진 별미
잔치ㆍ주막서 찾던 기록 다수
평양냉면 유행으로 위상 올라

과거에도 수육과 곁들여 먹어
메밀-돼지고기, 냉한 음식 결합
당시 '최악의 궁합' 평가 받기도
그럼에도 여름 대표 음식 등극

여름은 우리 일상에 많은 변화를 불러온다. 특히 음식의 경우는 더욱 그러하다. 여름이면 유독 자주 찾는 것들이 등장한다. 흔히들 복날이 되면 몸보신을 위해 삼계탕을 먹는다. 지친 심신을 달래며 이열치열의 효과를 기대한다. 아이들은 아이스크림을 즐겨 찾는다. 그 누구도 시원하고 달콤한 맛을 거부할 수 없다. 물론, 손꼽을 만한 음식은 한둘에 그치지 않는다. 그중에서 남녀노소 누구나 떠올리는 음식이 있다. 냉면은 단연 최고의 별미이다.

여름철 냉면 한 그릇은 우리나라 식문화를 상징한다고 할 만하다. 반면, 그 역사적 면모를 밝힌 경우는 생각보다 많지 않다. 하필 음식 이야기가 밥상머리에 오르는 주요 소재가 되다 보니 잘못된 정보도 널리 통용되는 실정이다. 그렇다면, 조선시대의 경우는 어떠할까. 그나마 책에 쓰인 글자는 변치 않고 당대의 사실을 증언하기에 이를 통해 냉면의 역사를 알아보는 것도 괜찮을 것 같다. 오늘의 브런치는 옛날 문헌에 전하는 냉면 한 그릇이다.
평양냉면. /연합뉴스

서민을 위한 검소한 음식

 오늘날 물가가 오르면서 냉면 한 그릇은 결코 만만찮은 소비가 되었다. 반면 그 내용물을 보면 시원한 국물만 더하면 되니 간편한 음식임은 부정할 수 없을 것 같다. 이는 과거에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야밤에 심심한 입을 달래고자 즐긴 모습이 보인다.

 순묘(純廟: 순조) 초년, 매번 한가한 밤마다 군직(軍職)과 선전(宣傳) 등 여러 신하를 불러 함께 달을 완상했다. 어느 날 밤 군직에게 명해 문틈으로 면(麵)을 사서 들이라 하며 말씀하셨다. "너희들과 함께 냉면을 먹고 싶구나." 한 사람이 스스로 돼지고기를 사 왔다. 임금이 사온 것을 어디에 쓰려는지 묻자 냉면에 넣으려 한다고 대답하니 아무 답을 하지 않으셨다. 냉면을 하사할 때 유독 돼지고기를 산 자는 제쳐 두고 주지 않으며 말씀하셨다. "저자는 따로 먹을 것이 있다." 가까이 모시는 자들에게 자못 경계로 삼을 만하다.

-이유원(李裕元), <임하필기(林下筆記)> 권29, '근신감계(近臣鑑戒)'.

19세기 이유원이 기록한 순조(純祖) 대의 일화이다. 순조는 밤에 한가할 때면 당직을 서는 무반들을 거느리고 달을 구경했다고 한다. 어느 날 밤, 순조는 신하들과 냉면을 먹고자 하여 즉시 면을 사서 들이도록 하였다. 이때 한 군직이 따로 돼지고기를 챙겨 냉면과 함께 먹으려 했다. 순조는 이를 못마땅하게 여겼고 결국 그에게 냉면을 하사하지 않았다. 냉면과 대비되는 돼지고기의 사치를 경계한 처분이다. 예로부터 냉면이 검소한 음식으로 인식된 면모를 돌아보게 한다.

냉면과 수육의 조화

그렇다면, 앞서 군직이 홀로 돼지고기를 사 온 이유는 무엇일까. 오늘날도 그렇지만 냉면은 시원함과 함께 일말의 허전함을 안겨다 준다. 무언가 기름진 것을 곁들여야 포만감을 얻을 것만 같다. 이는 과거에도 마찬가지였고 수육은 최고의 궁합을 자랑했다. 임득명(林得明, 1767∼1822)의 시는 다음과 같다.

靑樓酒肆疊魚鱗    청루와 주막 생선 비늘처럼 빽빽하고

絡繹江門汲水人    강어귀에 물 긷는 이들 끊이지 않네.

蒸豚冷麵秋正好    삶은 돼지에 냉면 가을에 참 좋으니

滿城遊俠不知貧    성 가득한 협객들 가난함 모르는구나.

-임득명(林得明), <송월만록(松月漫錄)> 책3, '임반관(林畔舘)'.

1813년(순조 13) 9월, 임득명은 둔전(屯田)을 살펴보는 일로 관서 지방을 유람한 적이 있다. 이때 평안도 선천(宣川) 일대에 자리한 임반관에 들렀으니, 임반관은 중국 사신을 맞고 보내기 위해 설치한 관소이다. 이상에는 임반관의 번화한 모습이 한눈에 들어온다. 청루와 주막은 기생집과 술집을 가리키고, 많은 사람이 오가기에 물을 긷는 풍경을 그려냈다. 풍류의 중심에 수육과 냉면을 언급한 모습이 보인다. 술안주로 유행하던 음식임을 증명한다. 임반관의 번화함을 배경으로 냉면에다 수육을 곁들인 문화를 확인할 수 있다.
냉면 사진. /EBS

19세기 평양냉면의 위상

 굳이 평안도 선천에서 수육과 냉면을 언급한 데에는 이유가 있다. 냉면은 평양 최고의 특산으로 각광을 받았고, 평양 인근의 관서 지역에서 이를 향유하는 문화가 만연했다. 이는 19세기에 이르러 서울에도 널리 유행했다. 조두순(趙斗淳, 1796∼1870)의 시를 보인다.

笙簫迭發閙西樓     풍악소리 번갈아 일어 서쪽 누각 시끄럽고 

驟雨斜風颯似秋    소나기에 바람 비끼니 가을처럼 시원하네.

賴有芳隣新手法    고운 이웃의 새로운 솜씨와 방법에 기대어

箕城冷麵沃人喉    평양냉면이 사람 목구멍을 씻어 주는구나. 

조두순(趙斗淳), <심암유고(心庵遺稿)> 권7, '세심정과 소동루의 풍류' 7수.

조두순은 삼호(三湖)의 세심정과 현석(玄石)의 소동루(小東樓)에 기거했다. 모두 서울 한강(漢江) 변에 자리한 지명으로, 삼호는 마포를 가리키고 현석은 현석동 일대를 지칭한다. 마침, 인근 영파정(映波亭)에 당진현감(唐津縣監) 김대연(金大淵)이란 자가 평양 출신 여인을 데리고 와서 살고 있었다. 여인은 조두순에게 매번 냉면을 대접했고 조두순은 이러한 경험을 한시에 담아냈다. 이 시를 지은 시기가 5월 무렵에 해당하니 한여름 더위를 냉면으로 해소한 모습이다. 아울러 이를 평양냉면이라 일컬은 모습에서 그 위상을 짐작하게 한다.

냉면의 유행과 비판

사실상 평양냉면의 유행으로 냉면은 대표적인 음식의 하나로 자리매김했다. 반면 이러한 변화가 항상 긍정적인 시각으로 점철된 것은 아니다. 다음은 최숙민(崔琡民, 1837∼1905)의 지적이다.

사특한 맛은 때에 맞지도 않고 상식적이지도 않다. 일반적으로 맛이 바르지 않으면서 세속의 입을 유독 기쁘게 하는 것이 모두 이러하다. 예를 들면, 지금 도시에서 이른바 냉면이라는 것은 대부분 돼지고기를 메밀과 합하여 만든다. 이는 의술에서 크게 꺼리는 것으로 사람을 죽일 수 있다고 한다. 하지만 그 사특한 맛으로 기쁘게 바꾸니 오로지 입과 배를 채우려는 자는 이따금 도리어 이를 달게 여긴다.

-최숙민(崔琡民), <계남집(溪南集)> 권12, '박명가(朴明佳: 박해봉(朴海奉)의 질문에 답하다(答朴明佳[海奉]問目[小學])'

 최숙민은 근대전환기 진주 일대에서 활동한 문인학자의 한 사람이다. 박해봉(朴海奉)이란 자가 <소학(小學)>과 관련한 질문을 하자 이에 답하며 사특한 맛에 대한 입장을 표명했다. 그저 세속의 입을 기쁘게 하는 것이라 비판하며, 대표적인 예로 냉면에 수육을 곁들이는 모습을 들었다. 의술에서 비판하는 최악의 조합이라 지적한 모습이다. 모두 냉한 음식임을 문제 삼은 것 같다. 반면, 사람들이 좋아하면 어쩔 수가 없다. 맛있는 음식은 몸에 좋지 않다고 했던가. 시대적 조류는 결국 거스를 수 없는 법이다.
김홍도의 평양감사향연도.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냉면의 오해와 진실

 오늘날 여러 지역을 내걸고 냉면은 저마다의 맛을 자랑한다. 그중 평양냉면은 단연 독보적이라고 할 만하다. 이규경(李圭景)은 각 지역 최고의 특산물을 열거하며 평양의 경우 감홍로(紺紅露)‧냉면‧비빔밥이 최고라고 명시했다. 김택영(金澤榮)은 평양이 메밀로 냉면을 잘 만들어 서울을 압도한다며 그 위상을 예찬했다. 물론, 다른 지역도 전혀 근거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평양냉면이 제일이란 점은 재론의 여지가 없다.

 본래 냉면은 겨울 음식이라고들 한다. 반면 겨울에 냉면을 권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실제로도 냉면이 유행하면서 이는 여름의 대표적인 음식으로 거듭났다. 유득공(柳得恭)은 평양의 풍속을 노래한 「서경잡절(西京雜絶)」에서 "아이들이 먼지떨이 쥐고 파리를 쫓으면 냉면과 수육의 가격이 오른다"고 밝혔다. 날씨가 더워지면 냉면과 수육이 잘 팔린다는 말이다. 결국 더운 날 시원한 음식을 찾는 것은 인지상정이다. 하필 오늘도 날이 덥다고 한다. 이제 진짜 냉면을 먹으러 가야겠다.

참고문헌

이종묵, <한시 마중>, 태학사, 2012.

이종묵, <시로 맛보는 국수와 냉면>, 문헌과해석 59, 문헌과해석사, 2012.

/김세호 경상국립대 한문학과 교수

☞필자 소개 : 한문을 조금 읽을 줄 아는 21세기 현대인입니다. 옛사람을 좋아하며 고서를 뒤적입니다. 고전이 제일 재미있다는 망상에 빠져 있습니다.

※ 이 기사는 경상남도 지역신문발전지원사업 보조금을 지원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