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광장] 몽골의 영광과 시련을 배우자

김정렬 대구대학교 공공인재대학 교수 2025. 8. 11. 16: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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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렬 대구대학교 공공인재대학 교수

몽골은 인구가 350만 명으로 작지만 국토는 한반도의 7배가 넘는다. 기후변화의 여파로 유목이 부진하자 도시로 이주해 실업자 상태로 지내는 가도시화 현상이 심각하다. 한국행을 원하는 사람이 많지만 유학과 취업의 문턱을 넘기가 어렵다.

울란바토르의 각급 학교는 파리대학이나 청두병원처럼 경쟁보다 공존을 중시한다. 이재명 정부의 서울대 10개 만들기가 참고할 덕목이다. 지방거점국립대와 서울대의 복수학위를 허용하고 해당지역 취업준비생에게 가산점을 부여해야 한다.

17세기에 청과 러시아가 양강 구도를 확립하자 몽골은 위축되었다. 1919년 중국의 침략은 '붉은 영웅' 수흐바타르가 러시아의 지원으로 격퇴했다. 1924년 아일랜드처럼 분단을 감수하고 독립했다. 국가형성에는 군벌이 난립한 중국의 분열과 반제국주의 기풍의 확대 및 소련의 출현이라는 상황 변수가 크게 작용했다. 만주를 장악한 일본이 1939년 침공했지만 소련이 방어했다. 일본의 대륙 진출과 진주만 침공은 소련과 미국을 자극해 한국인의 중앙아시아 강제이주와 일본인의 캘리포니아 강제수용이라는 이주민 사회의 비극을 연출했다.

몽골은 국민적 단결을 강화하려고 칸과 장군은 물론 색목인 마르코폴로의 동상을 세웠다. 소련의 지원에 보답하려고 조지아의 우호기념비와 유사한 자이승전승기념탑도 세웠다. 1990년대에 개혁개방과 체제전환을 추진하면서 미·일과 한국의 관심까지 유도했다.

칭기즈칸박물관은 세계를 호령한 제국의 변천을 시대별로 소개하는 곳이다. 시설이 우수해 외교행사나 학술대회도 종종 개최한다. 국립예술극장은 관광객을 대상으로 문화예술 공연을 제공한다. 전통 복장의 단원이 노래를 부르고 현악기를 연주한다. 간단사원은 라마불교의 성지로 몽골의 종교문화를 대표한다.

수흐바타르 광장은 평양의 김일성 광장처럼 소련스타일이다. 광장 주변에 빌딩 골조와 재개발 아파트가 늘었다. 하지만 지하철과 고가도로 건설이 지연되면서 교통난이 심각하다. 시정의 우선순위를 가리는 리더십이 제대로 작동하지 못한 후과이다. 몽골의 여름은 청정하지만 동절기 난방이 시민건강을 위협한다는 점에서 기후변화 마인드를 장착해야 한다.

몽골은 구리, 석탄, 철강 등을 중국에 수출한다. 한국과 일본에서 기계류와 자동차를 수입한다. 수출입은 몽골종단철도를 활용한 컨테이너나 탱크로리 운송방식이 일반적이다. 모직물과 유제품을 판매하는 전통시장의 분위기는 서문시장이나 양동시장의 1980년대 버전이다. 요즘은 시내에 한국계 편의점과 마트가 늘고 있다.

흉노와 돌궐이 선도한 유목의 전성시대는 원과 4칸국 시대에 정점에 달했다. 전쟁에 나가는 병사는 무력의 토대인 서너 마리의 말과 사거리가 250m인 활 및 가벼운 건조식량을 구비했다. 주몽의 활과 관우의 적토마도 유목의 유산이다. 그러나 유목의 군사적 우위는 총기와 대포 및 축성술이 발전하면서 약화되었다.

나는 오래전 몽골에서 기차로 바이칼의 대자연을 찾아갔다. 이번에는 고비사막을 체험하는 계획을 세웠다. 하지만 뜸해진 기차가 발목을 잡았다. 고심 끝에 비행기로 내몽골 성도인 후얼하우터를 경유하는 차선에 만족했다. 고비사막을 넘으면 한국 패키지가 개척한 중국내 게르 단지도 지척이다. 내몽골은 방풍망과 지하수를 활용해 사막을 숲으로 바꾸는 기적을 창출했다.

후허하오터 공항은 활력이 넘쳤다. 고가도로 주변에 고속철도 역사와 대단지 아파트를 배치했다. 도심에 위치한 칭기즈칸 동상과 라마교 불탑 정도가 외몽골과 유사하다. 이슬람 사원도 토착화된 모습이다. 전통 문화재와 먹거리 상가로 구성된 문화단지는 확연한 중국풍이다. 우리보다 먼저 분단을 경험했지만 통일의 필요성을 상실한 몽골 민족의 각자도생은 우리가 반면교사할 대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