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큰 손 떠날라’ 실체 없는 걱정에 휘둘리는 세제 개편안

세종=문수빈 기자 2025. 8. 11. 1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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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스피·코스닥 지수가 떨어지자, 이재명 정부 첫 세제 개편안의 당초 기조가 흔들리고 있다. 지난달 말 기획재정부는 자본시장을 활성화하는 동시에 조세 제도를 합리화한다면서 양도소득세를 내는 대주주의 기준을 낮추겠다고 했다. 공교롭게도 그다음 날 코스피·코스닥 지수는 약 4% 빠졌다.

주가 지수가 하락하는 데엔 여러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한다. 그러나 투자자들은 그날의 주가 하락 범인으로 일제히 세제 개편안을 지목했다. 세제 개편안에 실망한 이들이 주식을 팔았을 수는 있다. 하지만 언제나 그렇듯 주가가 오르고 내리는 데엔 원인이 하나만 있진 않다. 그날도 간밤 미국 3대 지수가 모두 하락 마감했는데 이는 투자자들의 관심 밖 영역이었다.

주식 시장은 또 수많은 욕망이 엉켜있는 곳이라 동일한 사건이 주가를 끌어올리기도, 동시에 끌어내리기도 한다. 악재가 터져 주가가 떨어지는 걸 저점 매수의 기회로 삼는 이들이 있다면 하락은 찰나다. 지수 등락을 설명하는 완벽한 하나의 요인은 없다. ‘세제 개편안으로 주가가 떨어졌다’는 주장은 많이 쳐줘야 절반만 옳다.

그럼에도 세제 개편안이 처형대에 오른 건 ‘그렇게 하면 큰 손이 시장을 떠난다’는, 확인되지 않은 명제 때문이다. 이 문장은 금융투자소득세를 폐지한 데에도 혁혁한 공을 세웠다. 주식으로 6000만원을 벌면 5000만원은 공제하고, 나머지 1000만원에 대해서 22%, 즉 220만원을 세금으로 걷는 금투세에 대해서도 도입하면 큰 손들이 국내 주식을 처분할 거란 믿음이 시장에 팽배했다.

이런 믿음과 달리 실제로 세금과 주가 지수 간 상관관계는 명확하지 않다. 정부가 대주주 양도소득세 요건을 10억원에서 3억원으로 낮춘다고 발표한 2017년 주가가 그 사례다. 투자자의 논리대로라면 요건이 강화됐으니 주가가 떨어지는 게 맞지만, 그해 12월에서 2018년 1월까지 코스피 지수는 한 달간 5.33% 뛰었다. 반대로 2023년 대주주 양도소득세 요건을 10억원에서 50억원으로 올렸지만, 코스피 지수는 한 달(2023년 12월 28일~2024년 1월 31일) 동안 4.45% 떨어졌다.

국내 주식으로 돈을 벌 수만 있다면 세금을 내기 싫다는 이유로 투자하지 않을 사람은 없을 것이다. 예를 들어 금투세 220만원 때문에 6000만원 버는 것을 포기할 이유가 있을까. 대주주 양도소득세는 250만원까지 기본 공제되고, 그 이상을 벌면 20%(3억원 초과 시 25%)를 세금으로 낸다. 수익 규모에 따라서 판단이 달라질 수 있겠지만, 돈을 더 벌 수 있는 다른 곳이 있다는 보장은 어디에도 없다.

그렇다면 대주주 요건을 종목당 10억원 소유로 정의한 건 불합리한가? 이에 대한 답도 ‘꼭 그렇지만은 않다’고 보는 게 맞을 것 같다. 대주주 기준엔 시가총액뿐만 아니라 지분율도 있다.

코스피 상장사 지분 1% 이상(코스닥 2%·코넥스 4%)이면 대주주에 해당해 양도소득세를 내야 한다. 시총이 낮은 기업의 지분을 기준으로 코스피는 현재 1억5000만원만 있어도 대주주다. 2억원어치도 채 안 가졌는데 지분율 요건을 충족해 대주주가 된 것이다. 두 기준 간의 형평성을 위해 시총 기준으론 50억원보다 10억원이 더 합리적이라고 볼 수도 있다는 얘기다.

사정이 이렇지만 정부는 실체가 없는 걱정과 여론을 이유로 손바닥을 바로 뒤집을 수 있음을 암시하고 있다. 구윤철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6일 국회에 출석해 “(주식 양도소득세를 내는 대주주의 요건을) 종목당 10억원에서 총 주식 보유액 기준으로 변경하는 방안에 대해 실무적으로 검토하겠다”고 말했다. 세제 개편안은 말 그대로 ‘안’이라 확정되지 않아 국회에서 변경될 가능성이 있지만, 이번처럼 발표 직후 정부가 나서서 수정할 수 있다는 입장을 비치는 건 이례적이다.

물론 정책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국민의 반발이 있을 경우 방향을 재검토하는 건 필요한 일이다. 그러나 약 일주일 만에 소상한 설명 없이 정책을 철회할 가능성을 내비치는 건 기존 안에 철학이 없었음을 방증하는 것이기도 하다. 집권 1년차부터 확인되지 않은 우려에 휘둘리면 앞으로 있을 4번의 세제 개편안 작업은 더 고단해질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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