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화속의 역사] (61) 천신 김유신의 환생

강시일 기자 2025. 8. 11. 10: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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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유신 전생은 고구려의 예언가 추남, 억울한 죽음을 당하고 환생해서 고구려를 정복하리라 다짐
경주 충효동 송화산 자락에 위치한 천신 김유신 장군의 묘.

김유신 장군은 가야의 마지막왕 구형왕의 증손이다. 각간을 대를 이어 지낸 김무력과 김서현의 후손으로 태어나면서 등에 북두칠성의 무늬가 새겨져 있어 천신으로 불렸다.

유신공에 대해서는 신라 중악에서 수련하면서 신령으로부터 비법과 보검을 전수받은 일, 천신이 되어 용으로 화한 문무왕과 함께 신문왕에게 만파식적과 옥대를 전한 일, 무리들을 이끌고 미추왕릉으로 들어가 후손의 일을 따져 물은 일 등등의 신화와 같은 이야기가 아주 많다.

청년기에 김춘추와 힘을 모아 나라를 위해 많은 일을 하면서 결국 삼국통일을 이룩한 주역이 된 김유신은 전생에 고구려의 예언가 추남이었는데 억울하게 죽음을 당해 신라의 각간 김서현과 만명부인의 아들로 환생한 설화도 전한다.
신라 흥덕왕이 김유신의 업적을 기려 흥무왕을 추서해 세워진 흥무왕릉비.

◆신화전설: 김유신의 전생

삼국유사는 김유신의 전생에 대해 기록하고 있다. 무력 각간의 아들인 김서현의 맏아들을 유신이라 하고 아우를 흠순이라 한다. 맏누이는 보희라 하며 어릴 때 이름은 아해이다. 그 동생은 문희라 하며 어릴 때 이름은 아지이다.

유신공은 진평왕 17년 을묘년인 595년에 태어났는데 해와 달과 목, 화, 토, 금, 수 별들의 정기를 받아서 등에 칠성의 무늬가 있었으며, 또 신령스럽고 기이한 일이 많았다.

유신은 나이가 18세 되던 임신(612)에 검술을 익히고 술법을 터득하여 국선이 되었다. 이 당시 백석이란 자가 있었는데 어디에서 왔는지 알 수 없었으나 여러 해 동안 낭의 무리에 속해 있었다.

유신랑이 고구려와 백제를 치려고 밤낮으로 깊이 몰두하고 있을 때 백석이 그 계획을 알고 유신에게 "청컨대 저와 공이 함께 아무도 모르게 먼저 저 나라를 정탐한 후에 일을 도모하면 어떻겠습니까?"라고 제의했다. 유신은 기뻐하며 친히 백석을 데리고 밤에 길을 떠났다.
단석산 정상의 김유신이 보검으로 내려쳐 자른 단석.

고개 위에서 막 쉬려고 하는데 세 여인이 나타나 "공께서는 백석을 잠시 따돌리고 숲 속으로 함께 들어가시면 그간의 내막을 말씀드리겠습니다"라 했다. 숲 속에 들어가니 낭자들이 문득 신의 모습으로 변해 "우리들은 내림, 헐례, 골화 등 세 곳의 호국신입니다. 지금 적국의 사람이 당신을 유인해 가는데도 당신은 알지 못하고 있어서 알려드리고자 여기까지 온 것입니다"하고 사라졌다.

유신이 그 말을 듣고 놀라 쓰러졌다가 깨어나 두 번 절하고 숲 속에서 나와 골화관에 유숙하고 있는 백석에게 "지금 다른 나라에 가면서 중요한 문서를 잊고 왔으니 너와 함께 집으로 돌아가 가지고 오자"고 했다.

집으로 돌아와 백석을 결박하여 고문하면서 그 내막을 다그쳐 물으니 백석이 "나는 본래 고구려 사람입니다. 우리나라의 여러 신하들이 말하기를 신라의 유신은 본래 우리나라의 점쟁이인 추남이었다고 했습니다"며 자초지종을 털어놓았다.

"국경에 거꾸로 흐르는 물이 있어서 추남으로 하여금 점을 치게 했습니다. 추남이 '대왕의 부인이 음양의 법칙을 거슬러서 이와 같은 일이 일어났습니다'라 하니 대왕이 놀라면서 괴이하게 여겼습니다. 왕비가 크게 노하여 이는 요망한 여우의 말이라면서 다시 그를 시험해 물어보고 말이 틀리면 중형에 처하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한 마리의 쥐를 함 속에 감추어 두고 이것이 무슨 물건이냐고 물었습니다. 추남이 '이는 틀림없이 쥐인데 여덟마리가 있습니다'라 하자 그 말이 틀렸다 하여 죄를 물어 목을 베려고 하니 추남이 맹세하기를 '내가 죽은 후 대장군이 되어 반드시 고구려를 멸하리라'고 했습니다. 즉시 추남의 목을 베어 죽이고 쥐의 배를 갈라보니 새끼 일곱 마리가 있었습니다. 그제야 앞에 한 말이 맞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날 밤 대왕은 추남이 신라 서현공 부인의 품속으로 들어가는 꿈을 꾸고 여러 신하들에게 말하니, 모두들 말하기를 '추남이 맹세하고 죽더니 이것이 과연 사실인가 보옵니다'고 해서 나를 여기에 보내어 당신을 유인할 계획이었습니다"라 했다.

유신은 즉시 백석을 처형하고 온갖 음식물을 갖추어 삼신에게 제사를 지내니 삼신 모두가 사람의 몸으로 나타나 제사를 받았다.

결국 김유신은 신라의 대장군이 되어 당나라의 힘을 빌어 고구려를 멸망시키고 신라 삼국통일을 이룩했다.
김유신 장군이 기도하던 곳으로 전하는 단석산 신선사의 마애불.

◆흔적: 김유신 장군묘

김유신 장군의 묘는 경주 충효동 송화산자락에 십이지신상의 호석으로 꾸며 왕릉의 모습으로 조성되어 있다. 흥덕왕이 장군의 업적을 기려 흥무대왕으로 추서했기 때문에 흥무대왕릉으로 불리기도 한다. 일부학자들은 김유신 장군의 묘라는 확실한 단서를 찾지 못해 김유신 장군의 묘라고 확신할 수 없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장군묘 일대는 국립공원 화랑지구로 지정해 화랑정신을 계승발전하게 하는 기반으로 삼고 있다. 또 장군묘가 위치한 송화산 동남쪽 계곡에는 화랑들의 활약을 소개하는 코너와 다양한 체험활동을 할 수 있는 방을 만들고, 청소년들의 심신을 단련할 수 있는 시설을 준비한 화랑마을을 조성 운영하고 있다.

장군의 묘에는 호석으로 12지신상을 둘러 보호하고 있다. 신상들은 일반적인 왕릉의 신상들이 갑옷을 입은 무장의 모습과는 다르게 모두 평복에 무기를 들고 있는 유연한 몸동작의 모습이다. 그리고 신상들은 하나같이 모두 오른쪽으로 고개를 돌리고 있는 형식으로 조각했다.

삼국유사는 김유신 장군을 흥무대왕으로 추봉하였으며 그 능은 서산 모지사 동향한 산봉에 있다고 기록하고 있다. 이 기록으로 보면 현재의 봉분이 김유신 장군묘라고 인정하게 한다.

문무왕은 김유신이 죽자 왕명으로 예를 갖추어 후대한 예장으로 장례를 치르고, 기공비를 건립했다. 현존하는 비석은 1710년 경주부윤이 건립한 것으로 전한다.

장군묘 왼쪽 계곡에 흥무전을 건립해 위패를 모시고 매년 봄과 가을에 왕의 예를 갖추어 향사를 올리고 있다.
김유신 장군 묘 아래 조성된 경주 화랑마을.

◆스토리텔링: 신들의 도움을 받은 김유신

신라의 대신 김서현과 숙흘종의 여식 만명은 똑같이 별이 집안으로 쏟아져들어오는 꿈을 꾸고 유신을 낳았다. 유신은 태몽과 같이 별의 기운을 타고 태어나 등에 해와 달을 포함한 칠성이 새겨져 있어 별을 의미하는 이름을 얻었다.

유신의 삶은 태몽과 같아서 예사롭지 않았다. 어려서부터 총명함은 물론이고 판단력이 뛰어나며 지혜롭고 몸놀림이 빨라 무예 습득에도 남다른 재주를 보였다. 아버지와 할아버지의 관심을 듬뿍 받으면서 자란 유신은 특히 무예 수업과 심신을 단련하는 일에 매달려 힘을 길렀다.

"왜 그렇게 심신을 단련하는 일에 많은 시간을 투자하느냐"는 아버지의 질문에 "저는 아무도 따라올 수 없을 정도로 힘을 길러 백성들을 괴롭히는 적들이 존재하지 못하도록 하고 싶습니다"라고 당당하게 말했다. 유신의 이런 뜻은 아버지는 물론 주변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
송화산 자락에 김유신 장군의 위패를 봉안하고 매년 봄 가을로 향사를 올리는 흥무전.

유신랑은 어려서 화랑으로 전쟁터에 나아갔다가 전우들이 죽고 다치는 모습을 보고 괴로워하다가 절대적인 힘을 얻기 위해 혈혈단신으로 칼 하나만 차고 중악으로 들어갔다. 유신은 중악의 석굴에서 아무것도 먹지않고, 기의 흐름을 관조하면서 힘의 움직임을 분석 연구하며 기도에 몰두했다. 이레만에 몸은 수척했지만 정신은 더욱 골똘해진 유신 앞에 신령이 나타나 "너는 어디에 사는 누구인데 무엇때문에 이토록 간절하게 기도를 하느냐"고 물었다.

자세를 가다듬은 유신은 "저는 서라벌에 사는 유신이라는 화랑입니다. 삼국통일을 이룩해 백성들의 고통을 덜어주려 합니다"라고 분명하게 의사를 밝혔다.

신령이 유신에게 비법과 보검을 전하며 "기특하도다. 이 힘은 본래의 뜻에 맞게 써야 한다. 만약 잘못된 욕심에 너의 힘을 사용한다면 더욱 큰 재앙을 맞이하게 될 것"이라 당부하고는 휘릭 사라져버렸다.

유신은 여기에서 얻은 힘으로 삼국통일을 위한 전쟁에 나아가 병사들의 희생을 줄여가며 영토 확장에 앞장섰다.

그러던 어느 날 전쟁에 지쳐 막사에 죽은 듯 쓰러져 자고 있던 유신의 꿈에 세 명의 여신이 나타났다. "장군이 병사들도 잠들지 않은 시간에 쓰러져있다니 삼국통일은 어느 세월에 이룩하려는가. 네 옆의 화초를 삼키고 힘을 내어 백성들을 보살피라"고 벼락같이 훈계하고 사라졌다.
인공지능 AI가 그린 신령이 김유신에게 비서와 보검을 하사하는 장면.

유신이 깜짝 놀라 벌떡 일어나 예를 갖추려는데 잠결에 떨어뜨린 칼집 옆에 다섯 갈래로 벌어진 가지마다 붉은 보리수와 같은 열매가 달린 화초가 간들거리고 있었다. 꿈을 가만히 생각하던 유신이 자세를 가다듬고 큰절을 올린 다음 천천히 화초를 씹어 삼켰다. 입 안에서 달콤한 향이 코로 전해오면서 정신이 맑아지는 느낌이 들었다. 눈 앞이 환하게 밝아오면서 달이 구름에 가려 칠흙 같은 어둠이 깔려 있었지만 먼 산의 나무뿌리까지 훤하게 보였다. 다시 자세를 가다듬어 호흡을 정돈하니 가슴 아래로부터 단전이 요동치더니 전신으로 기운이 퍼지다가 다시 조용히 갈무리 되었다.

천천히 일어서 막사 밖으로 나서는데 몸이 새털처럼 가벼웠다. 병사들이 잠든 막사를 벗어나 산 정상으로 오르는데 힘을 쓸 겨를도 없이 날듯이 가볍게 산 꼭대기에 이르렀다. 유신은 조용히 가부좌를 틀고 하늘을 향해 다짐을 했다. "내 몸에 깃든 힘이 다하는 날까지 나라와 백성들을 위해 정진하리라. 신이여 이 몸을 바르게 인도하소서. 감사합니다"라고 기도를 마친 유신은 시험삼아 공중으로 박차 올랐다. 오할의 힘도 가하지 않았는데 유신의 몸은 5장의 높이로 솟구쳤다. 다시 천천히 내려서는데 전혀 힘이 들지 않았다.

신들의 힘을 얻은 김유신은 수시로 심법을 가다듬으면서 기운을 잘 다스리는 수련을 평생 이어가 장수의 기품을 다졌다. 천신 김유신은 결국 삼국통일을 견인하는 장수로 거듭나면서 천년이 지나도록 정의로운 이름을 남겼다.

*이 글은 문화콘텐츠 육성을 위해 스토리텔링 한 것이므로 역사적 사실과 다를 수 있습니다.

강시일 기자 kangsy@idaegu.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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