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공기관 평가 42년…현실과 '괴리' 정권마다 '흔들' 누더기 지표
[편집자주] 정부는 매년 공공기관 경영실적을 평가한다. 평가 결과에 따라 기관의 운명이 갈린다. 방만 경영을 막기 위한 제도적 장치지만 '평가를 위한 '평가'라는 비판도 뒤따른다. 새 정부는 공공기관 관리 제도의 개편 방안을 모색 중이다. 합리적 대안을 살펴본다.

공공기관 경영평가제도의 모태는 1983년 정부투자기관 경영평가제도다. 정부는 '정부투자기관 관리 기본법'을 제정해 정부 지분 50% 이상인 정부투자기관을 대상으로 평가를 시작했다.
당시 경제기획원 예산실에 있던 강봉균 전 재정경제부 장관은 한국조세재정연구원의 '공공기관 경영평가 30년' 보고서에서 이렇게 회고했다.
"전두환정권은 공기업의 경영관리시스템을 체계화하고 경영 비효율을 줄이는 것이 국민을 위해서나, 정권을 위해서나 중요한 과제라고 인식했다. 청와대 경제수석에 임용된 당시 사공일 산업연구원장이 공기업 경영체계를 의결기구와 집행기구로 이원화하고 경영평가제도를 도입해 인사와 인센티브 보너스 제도를 차등화하자는 방안을 보고해 그 추진을 경제기획원이 맡게 됐다"
이후 2000년 기존 기관평가에 '기관장 평가'가 더해졌고 2004년엔 정부 산하기관을 평가하는 제도가 신설됐다.
2006년 '정부투자기관 관리 기본법'을 폐지하고 '공공기관의 운영에 관한 법'(공운법)을 제정했다. 2007년 4월부터 지금의 공공기관 경영평가제도가 자리잡게 됐다. 정부투자기관과 정부산하기관으로 이원화돼있던 경영평가제도를 '공기업·준정부기관 경영평가'로 통합하고 평가기준과 방법도 일원화했다
공공기관 경영평가는 도입 42년을 맞았지만 현실과 괴리됐다는 지적이 계속된다. 여전히 과거 틀에 머문 '평가를 위한 평가'라는 비판이 반복된다.
정권마다 기준이 흔들리는 게 가장 큰 문제다. 각 정부가 국정과제 달성 수단으로 평가를 활용하기 때문이다. 전임 정부와 연속성이 끊기거나 실현 불가능한 항목이 추가돼 지표가 누더기가 된다.
문재인 정부는 △사회적 가치 △상생협력·지역발전 등의 배점을 높였다. 윤석열 정부는 사회적 책임 항목 배점을 낮추는 대신 △재무건전성 △직무급제 등 경영 효율성 관련 점수 비중을 상향했다.
이재명정부 들어선 이재명 대통령이 연일 '산업재해' 감축을 강조하고 있는 만큼 이전 정부의 재무성과관리 항목 배점을 하향하고, '안전 및 재난관리' 관련 배점 비중을 확대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AI(인공지능) 성장전략·에너지 전환·공정과 상생 기여도 반영될 전망이다.
소수점 한 자리 차이로도 등급이 갈리기 때문에 기관들은 기준 변경에 민감할 수밖에 없다. 특히 새 정부가 항목을 추가하면 기존 항목은 점수만 낮출 뿐 없애지 않아, 지표만 불어난다. 상대평가 구조에서 경쟁은 더 치열해진다.
기획재정부가 평가를 통해 예산·인사·조직·사업·투자 등 운영 핵심을 통제한다는 비판도 있다. 경영평가단 구성부터 항목·점수·등급 부여까지 기재부가 주도한다.
특히 상장 공기업은 상법상 자율경영이 보장되지만 현실에선 공무원 수준의 통제를 받는다. 정부는 대주주로서 경영방침만 정하고 세부 운영은 경영진이 책임지는 구조로 바꿔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단순 지표 위주의 평가를 성과·혁신 중심 관리체계로 전환해야 한다는 지적이 힘을 얻는다. 그러나 정부는 문제 발생 때마다 미세조정으로 대응해 왔다.
'평가 대응 행정'의 한계는 이미 드러났다. 교원들은 성과급·자체평가·교육청 지표 등 평가 틀 속에서 수업이나 학생 지도보다 문서 작업에 더 많은 시간을 쓴다.
지방자치단체도 비슷하다. 정부 평가 대응 전담부서를 두고, 점수 잘 나오는 사업에 집중한다. 예산과 인센티브가 걸려 있어 지역 특색이나 장기 목표는 뒷전이 되기 쉽다.
![[서울=뉴시스] 김명원 기자 = 임기근 기획재정부 제2차관이 20일 오전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2024년 공공기관 경영실적 평가 결과 발표를 하고 있다. 왼쪽부터 배근호 감사평가단장, 김춘순 준정부기관 평가단장, 임기근 기획재정부 제2차관, 곽채기 공기업 평가단장, 장정진 공공정책국장. 2025.06.20. /사진=김명원](https://img4.daumcdn.net/thumb/R658x0.q70/?fname=https://t1.daumcdn.net/news/202508/11/moneytoday/20250811090143407tuuv.jpg)
공공기관 경영평가가 본래 취지인 경영 효율화에서 벗어나 '평가를 위한 평가'로 굳어지고 있다. 성과급과 직결되는 점수를 채우기 위해 수치와 보고서에 행정력이 소모된다. 전담 조직과 외부 컨설팅도 일상화됐다. 현장 개선보다 평가 점수가 우선되면서 공공서비스의 질과 효율성은 뒷전으로 밀린다.
대표 사례가 한국지역난방공사다. 2018년 경영평가에서 한국지역난방공사는 총인건비 인상률 상한(2.6%)을 맞추기 위해 복리후생비 산정 방식을 '실집행액'에서 '인원 비례'로 바꿔 제출했다. 그 결과 종합 C등급을 받았다. 상한을 넘기면 총인건비 관리 지표에서 0점을 받을 상황이었지만 수치 조정으로 인상률을 2.59%로 낮췄다. 그 덕에 임직원은 78억원 규모의 성과급을 지급받았다.
문제는 이를 감시하고 시정해야 할 평가위원들도 제도에 종속돼 있다는 점이다. 감사원에 따르면 2018~2020년 위촉된 평가위원 323명 중 156명(48.3%)이 평가 대상 기관으로부터 자문료·심사료 등을 받았다.
규정상 5년간 위촉이 제한되지만 기획재정부는 '최근 5년간 1억 원 이하 수령' 등 자체 완화 기준을 적용해 다수를 재위촉했다. 2019년 경영평가에선 사회적 가치 지표 배점 오류가 드러나자 종합등급 변화를 막기 위해 다른 지표를 임의로 조정한 사례도 있었다.
평가 지표 중심 체제는 억울한 사례도 만든다. 2023년 경영평가에서 D등급을 받아 성과급이 전액 삭감된 한국가스공사와 소상공인시장진흥공단이 그 예다.
가스공사는 1조원 넘는 자산 매각과 부채 감축을 이뤘지만 재무상황 지표 악화를 이유로 D등급을 받았다. 소상공인진흥공단은 코로나19 시기 재난지원금을 집행하며 '팬데믹 특수'로 부풀려진 전년 실적이 기준이 돼 목표 달성률이 떨어졌다. 0.7점 차이로 D등급을 받았다.
기관들은 등급 방어를 위해 본업보다 평가 대응에 더 많은 자원을 투입한다. 한전KDN, 국립생태원 등은 수십 명 규모의 '경평 TF(태스크포스)'를 상시 운영하며 각 지표를 전담 관리한다. TF 인력이 본래 부서 업무를 소홀히 하는 '전력 손실'은 불가피하다.
전직 평가위원 출신 강사를 초청해 강연 한 번에 수백만 원을 지급하고 수천만 원대 외부 컨설팅 계약을 반복한다. '우수사례(BP)' 발굴 경쟁이 과열되면서 점수용 보여주기식 사업이 늘고 기관 본연의 업무와 무관한 활동도 늘고 있다.
정부도 문제를 인식하고 있다. 감사원은 "경영평가가 공공기관에 과중한 부담을 주고 평가 과정·결과의 공정성에 대한 의문이 지속 제기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국정기획위원회는 경영평가 방식 개선 등을 포함한 '공공기관 경영혁신 방안'을 논의 중이다. 기재부 관계자는 "평가 부담이 크다는 의견을 수렴하고 있다"며 "최대한 평가 부담을 줄이는 방향을 검토하겠다"고 말했다.

도입된 지 40년이 넘은 공공기관 경영평가에는 '제도 피로감'과 '실효성 부족'이 꼬리표처럼 따라붙는다. 경영 효율성을 높이겠다며 시작했지만, 지표 위주의 관리체계가 오히려 혁신을 막는다는 지적이다.
전문가들은 경영평가를 '채점표 채우기'가 아닌 공공기관 혁신 유도 장치로 재설계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구체적 방안으로 △평가주기 다변화 △세부 지표 통합·간소화 △중장기 혁신사업 배점 강화 △절대평가 방식 전환 △기관별 맞춤형 지표 도입 등을 제시한다.
한국조세재정연구원이 전·현직 경영평가 담당자 32명을 대상으로 한 선행연구에서도 응답자들은 기관 특성을 무시한 획일적 평가지표체계를 문제로 꼽았다. 성격과 목적이 다른 기관을 동일 기준으로 평가해 효율성이 떨어진다는 것이다.
과도한 지표를 줄일 필요가 있다는 의견도 많았다. 성시경 단국대 공공정책학과 교수(전 경영평가단 평가위원)는 "정부 정책 이행 지표가 과도하게 촘촘하다"며 "항목을 줄이면 부담이 완화돼 혁신 여력이 생긴다"고 말했다. 이어 "기관에 자율성을 주고 핵심 전략에 집중하도록 하는 게 중요하다"며 "일부 항목에는 점수 부여 방식 대신 기준을 주고 '패스/논패스(Pass/Non-pass) 제도를 도입하는 것도 제안한다"고 덧붙였다.
정권 교체 때마다 세부 지표가 바뀌는 점도 문제다. 박재환 중앙대 경영학부 교수(공기업 경영평가위원)는 "정부가 바뀌면 지표 지향점도 달라진다"며 "공공기관도 중장기 목표를 세우고 단계적으로 혁신을 추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1년 주기 평가가 단기 성과에 매몰되는 구조라는 지적도 있다. 성 교수는 "중장기 목표 지표에 배점을 높이고, 지표에 따라 평가 주기를 다양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박 교수도 "기관장이 재임 중 성과 극대화를 위해 단기 목표에 치우치는 경향이 있다"고 지적했다.
중장기 혁신을 유도하려면 배점 구조 개편이 필요하다는 의견도 나온다. 성 교수는 "기관들이 도전적·미래지향적 지표 대신 쉽게 달성할 목표를 세운다"며 "미래 성장과 혁신사업 비중을 높이는 방향으로 개편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상장 공기업의 경우 별도 평가 체계를 만들어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박 교수는 "한전은 유가 상승으로 원가가 올랐지만 전기 가격에 반영을 못해 적자가 많이 났다"며 "공기업으로서 국민적 부담을 완화하려 했지만 상장회사 측면에선 수익성이 악화한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상법 개정으로 이사의 충실 의무가 신설되면 상장기업을 같은 방식으로 평가하는 건 무리가 있다"며 "상장 공기업은 카테고리를 따로 분류해 평가하는 방식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한편 전문가들은 공기업·준정부기관 평가를 소관 부처에서 담당하는 것과 관련해선 장기적인 제도 설계가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성 교수는 "기재부가 경영관리 평가뿐 아니라 주요 사업까지 평가로 통제하는 것은 과도하다는 생각"이라면서도 "기관간 유착 우려나 충분한 평가 인력 배정 등 현실적인 문제가 있다"고 말했다. 이어 "당장 평가 주체를 바꾸기보다는 장기적으로 잘 설계해야 할 부분"이라고 덧붙였다.
세종=박광범 기자 socool@mt.co.kr 세종=최민경 기자 eyes00@mt.co.kr 김주현 기자 naro@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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