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롭게 노닐다(逍遙遊)

'장자'를 소개하는 것에 부담감이 없지 않다. 동양고전을 좋아하는 독자의 관점에서 '장자' 내편을 다루었다. 부족해도 이해해 주셨으면 한다.
오강남 풀이 '장자'를 텍스트로 했다. 해설을 참조하면 '장자' 내용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된다. 오강남 풀이 '장자'는 장자 '내편'을 주로 다루었고, 외편과 잡편은 중요한 것을 추렸다.
이번 북세통 원고를 준비하면서 '장자' 내편을 다시 한번 꼼꼼하게 읽었다. 글쓰기는 힘들지만 눈으로 본 것을 정리할 수 있어 좋다.
'장자'에 대하여
장자(BC369-BC286)는 본명이 장주(莊周)이고, 노장사상의 대표적인 인물이다. 맹자(BC372-BC289)와 동시대를 살았다.
책 '장자'는 내편, 외편, 잡편, 총 3편이 있다. 내편은 7편, 외편은 15편, 잡편은 11편으로 각 편에는 여러 이야기가 담겨 있다. '장자'를 내편, 외편, 잡편으로 나눈 사람은 기원후 4세기 북송(北宋)의 곽상(郭象)이라는 사람이다. 내편은 대부분 장자의 저술로 여겨지며, 외편과 잡편은 장자 이후의 후학들이 쓴 것이다.
'장자'를 읽어보지 않은 사람도 '장자'에 나오는 '우물 안 개구리' 이야기를 안다. '우물 안 개구리' 이야기는 외편 제17편 추수(秋水) 편에 있다. 보잘것없는 것을 두고 싸우는 달팽이 뿔 위의 싸움을 뜻하는 '와우각상쟁(蝸牛角上爭)'은 잡편 제25편 즉양(則陽) 편에 나온다.
보잘것없는 나무가 오래간다는 '쓸모없는 나무?' 이야기는 내편 제1편에 있고, 어리석음의 대명사격으로 알고 있는 '조삼모사(朝三暮四)' 이야기는 내편 제2편에 나온다.
이처럼 우리가 익히 아는 이야기가 '장자' 책에 꽤 있다. 이는 '장자'가 어려운 동양고전으로 멀리 있는 게 아니라 우리 삶에 가까이 있다는 것을 말해준다.
우물 안 개구리
북해약(北海若)이 대답했습니다. "우물 안 개구리에게는 바다 이야기를 할 수 없지요. 한 곳에 갇혀 살기 때문이오. 여름 벌레에게 얼음 이야기를 할 수 없지요. 한 철에 매여 살기 때문이오. 마음이 굳은 선비에게 도(道)를 이야기할 수 없지요. 한 가지 가르침에 얽매여 살기 때문이오. 지금 당신이 좁은 강에서 나와 큰 바다를 보고 비로소 당신이 미비함을 알게 되었소. 이제 당신에게 큰 이(理)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게 되었구려."
외편 제17편 추수(秋水) 편에 있는 '우물 안 개구리'의 전문이다. 우물 안 개구리와 함께 등장하는 것은 여름 벌레다. 여름 한 철에 고정되어 얼음에 대해 말해 줄 수 없다. 눈여겨봐야 할 것은 우물 안 개구리와 여름 벌레를 비유로 드는 것이 '마음이 굽은 선비'를 말하기 위함이라는 것이다. 마음이 굽은 선비는 한 가지 가르침에 얽매여 그에게 도를 이야기할 수 없다.
'장자' 내편 제1편에도 '우물 안 개구리'와 비슷한 이야기가 하나 있다. 붕새가 하늘을 날아가는 것을 보고 매미와 새끼 비둘기가 한탄하는 내용이다. 맥락이 다르고 의미가 다를 수 있지만 유사한 의미로도 이해된다. "조금 아는 것으로 많이 아는 것을 헤아릴 수 없고, 짧은 삶으로 긴 삶을 헤아릴 수 없습니다."
이하에서는 '장자' 내편 제1편에서 제4편 내용 중에서 "필자의 마음에 와닿는 것을 중심으로" 아주 간략하게 소개했다. 제5편은 덕이 가득함의 표시(德充符), 제6편은 큰 스승(大宗師), 제7편은 황제와 임금의 자격(應帝王)이다. 제5편, 제6편, 제7편은 여기서 다루지 않았다.
제1편 자유롭게 노닐다(逍遙遊)
'장자' 내편에서 제일 먼저 나오는 이야기는 곤이라는 북쪽 바다 물고기가 붕이라는 새로 변해 날아오른다는 내용이다. '장자' 전체의 주제가 "절대 자유와 초월하는 변화"라는 점에서 첫 번째 이야기는 황당할지 몰라도 의미 있는 설정이다. 한계를 초월해 비상하는 '새로 변한 물고기' 이야기는 '자유롭게 노닐다'는 제1편 제목 '소요유'를 떠올리게 한다.
물론 장자는 '소요유'의 전제 조건을 빠뜨리지 않았다. "괸 물이 없으면 큰 배를 띄울 힘이 없습니다. 바람이 충분하지 않으면 큰 날개를 띄울 힘이 없습니다." 붕새의 초월적 비상에는 '바람'이 필요했다. 오강남은 해설에 인상적인 문구를 적었다. "바람을 타라. 생기를 찾아라. 그리하여 활기찬 삶을 살아라."
제1편 '소요유'의 마지막 이야기는 '쓸모없는 나무?' 이야기다. "도끼에 찍힐 일도, 달리 해치는 자도 없을걸세. 쓸모없다고 괴로워하거나 슬퍼할 것이 없지 않은가?" '쓸모없음의 쓸모있음'을 장자는 말한다. ('쓸모없음의 쓸모있음'에 대해선 제4편 '장석과 사당 나무' 편과 '접여의 노래' 편에도 나온다.)
의문이 하나 생겼다. '쓸모없는 나무?' 편이 왜 제1편 '자유롭게 노닐다'(소요유) 편의 마지막에 있을까 하는 것이다. '장자' 각 편에는 여러 이야기가 있고 그중에 중심되는 내용으로 제목을 정했기에 제목과의 관련성이 적을 수도 있다. 하지만 이런 생각이 들었다. 공중으로 날아오르는 붕새의 이야기는 우리의 일상과는 동떨어진 이야기다. 오히려 보잘것없는 나무와 비슷한 것이 우리네 인생이지 않나? 장자는 보잘것없는 나무라서 오히려 자유롭게 노닐 수 있음을 말하고 싶었던 것이 아닐까?
제2편 사물을 고르게 하다(齊物論)
'나는 나를 잃어버렸다(吾喪我)', '하늘의 퉁소 소리', '나비의 꿈'은 제2편 '제물론'에 나오는 유명한 이야기다. 크게 각성하고 크게 깨어난 사람이 도달할 수 있는 경지다. "크게 깨어나면 우리의 삶이라는 것도 한바탕의 큰 꿈이라는 것을 알게 될 것이네."
제2편 '제물론'에는 우리가 잘 아는 '조삼모사(朝三暮四)' 이야기가 나온다. 원숭이들에게 도토리를 "아침에 셋, 저녁에 넷을 주겠다"고 하니 원숭이들은 모두 성을 냈다. 그러자 "아침에 넷, 저녁에 셋을 주겠다"고 하니 원숭이들이 좋아했다.
어리석음으로 이해했던 '조삼모사' 이야기는 원문을 보면 전혀 다른 의미가 있다. 명목이나 실질에서 아무런 차이가 없는데도 원숭이들은 성을 냈다가 좋아했다. 장자는 옳고 그름의 양극을 조화시키고 모든 것을 고르게 하는 '하늘의 균형(天均)'에 머문다고 했다. 먹이 주는 자가 지혜로운 해결책을 제시했다는 것이다.
언뜻 이해하기가 쉽지 않다. 장자는 이분법적인 독선을 벗어나 내 관점에 집착하지 말고 상대방의 관점에서도 바라보라는 '관점주의적 시각(perspecivism)'을 설파한다. 고정된 사고방식의 틀을 깨고 발상의 전환을 했다는 점에서 작은 예일지 몰라도 '조삼모사'는 또 다른 의미를 부여한다. ('장자'에는 '관점주의'를 말하는 이야기가 여럿 등장한다.)
제3편 생명을 북돋는 데 중요한 일들(養生主)
'장자' 내편 제2편은 변화와 초월이 이분법적 사고를 벗어난 '오상아(吾喪我)'의 경지에 이를 때 가능하다는 것을 말한다면, 제3편은 '오상아'의 경지에 이른 사람이 어떻게 신나고 풍성한 일상생활을 살아가는지를 알려준다. 자연의 순리에 몸을 맡기고 살아간다. (오강남 풀이 참조)
제3편 '양생주' 편에서 유명한 이야기는 '포정의 소 각뜨기' 이야기다. 포정이 처음에 소를 잡을 때는 눈에 보이는 것이 온통 소였지만, 삼 년이 지나자 소가 보이지 않았다는 이야기다. 장인의 경지에 이르면 표면적인 것에 집착하지 않고 심층에 있는 것을 볼 수 있는 혜안이 열리는 법이다. 나를 잃어버린 '오상아'의 경지에 이른 사람이라면 더더욱 그렇다.
집착에 얽매인 내 모습은 처음 소를 잡을 때 포정의 모습에 가깝다. "자유롭게 노닐고" "생명을 북돋우면서" 삶을 살아가면 얼마나 좋을까! 쓸데없는 집착에서 벗어나 소박하게나마 자유롭게 노닐고 생명을 북돋우면서 살고 싶다.
제4편 사람 사는 세상(人間世)
제4편 '인간세'에서 가장 와닿는 말은 '공자의 조언'에 있다. 공자가 말하는 것으로 설정했지만 사실은 장자의 말이다. "좋은 일은 시간이 오래 걸리지만 좋지 못한 일은 절로 되어 고치지도 못하니 조심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마음이 사물의 흐름을 타고 자유롭게 노닐도록 하십시오. 부득이한 일은 그대로 맡겨두고, 중심을 기르는 데 전념하십시오. 이것이 최고입니다."
'참된 준비 – 마음 굶김(心齋)'에는 장자의 뜻이 직접 드러난다. 마음이 가난해야 함은 마음을 하나로 모으고 정성을 다해야 함을 의미한다. 도(道)는 오로지 빈(虛) 곳에 있다. 마음을 비워야 한다.
마음의 중요성은 이루 말할 수 없다. 대학 '정심수신(正心修身)' 장은 "수신은 그 마음을 바르게 하는 데 달려있다"고 했고, 맹자는 잃어버린 마음을 찾으라는 '구방심(求放心)'을 언급했다. 성경 잠언 4장 23절은 마음의 중요성을 재차 강조했다. "무릇 지킬만한 것보다 더욱 네 마음을 지켜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
나가며
'장자'에는 무수한 이야기가 있다. 하나 하나를 살펴보면 또 다른 세계가 펼쳐진다. 한번 읽어보시길 권한다. 마지막으로 언급하고 싶은 것은 '장자' 잡편 제26편 '外物'에 나오는 내용이다.
통발이라는 것은 물고기를 잡는 도구이니 물고기를 잡았으면 통발을 잊어버려야 한다.
올가미라는 것은 토끼를 잡는 도구이니 토끼를 잡았으면 올가미는 잊어버려야 한다.
말이란 것은 뜻을 전하는 도구이니 뜻을 얻었으면 말은 잊어버려야 한다.
나는 어떻게 하면 말을 잊은 사람을 만나 그와 이야기할 수 있을까.

고봉진
제주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고려대 법학과 졸업, 독일 프랑크푸르트대학 법학박사.
제주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법철학/법사회학 전공).
블로그: blog.naver.com/gojuraphi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