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일논단] 실패 없는 삶의 허상

2025. 8. 11. 0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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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영득 충남대학교 정치외교학과 교수

식사를 하거나 볼 영화를 고르거나 여행을 갈 때 우리는 타인의 경험들을 집요하게 검색하여 절대 '실패' 없는 경험을 계획한다. 맛집 앱의 별점과 리뷰, 영화 평점 사이트를 샅샅이 훑어 '안전한' 선택을 하려는 모습은 흔한 모습이다. 이러한 강박은 표면적으로는 합리적인 선택처럼 보이지만, 그 이면에서는 우리 삶의 가장 중요한 것들을 갉아먹는다. 바로 '우연한 발견(Serendipity)'이 주는 예측 불가능한 기쁨이다. 정해진 경로를 이탈했을 때 비로소 마주하는 동네의 숨은 맛집, 큰 기대 없이 관람했다가 인생 영화로 남게 되는 낯선 감독의 작품, 길을 잃었기에 발견할 수 있었던 여행지의 고즈넉한 골목. 이 모든 것은 '실패'라는 리스크를 감수했을 때만 주어지는 값진 선물이다. 실패 가능성이 최소화된 삶은 안전할지언정 단조롭다. 결국 우리는 세상이 정해준 '모범 답안'의 복제품이 될 뿐, 스스로의 고유한 취향과 세계를 탐험하며 진정한 '나'를 알아갈 기회를 영원히 상실하게 된다.

이러한 실패 기피증은 소비 습관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더 큰 문제는, 우리 사회가 다음 세대를 바로 이 '안전지대' 안에서만 길러내고 있다는 점이다. 교육 현장부터 가정에 이르기까지, 아이들의 모든 경험은 부모와 사회의 '관리가능한 영역' 안에 갇힌다. 실패의 가능성이 철저히 통제된 경험만을 쌓은 아이들은, 역설적으로 실패를 마주하고 스스로 일어서는 법을 배우지 못한 채 반쪽짜리 어른이 된다. 이는 스스로의 삶을 주체적으로 꾸려갈 능력이 거세된 '영원한 아이'를 양산하며, 이들이 짊어져야 할 사회적 비용은 상상하기도 힘들 정도로 크다. 대학생의 성적에 대한, 직장의 인사고과에 대한 항의를 부모가 하더라는, 심지어는 본인들의 이혼 소송에도 부모를 대동하고 온다는 몸만 큰 아기들의 이야기는 여전히 믿기 어렵지만 엄연히 사실이기도 하다.

이렇게 안전지대에서 길러진 '영원한 아이들'이 사회의 주류가 될 때, 우리는 어떤 미래를 맞이하게 될까? 그 사회는 성장을 멈춘 사회, 뒤처지는 국가라는 비극적 운명을 피할 수 없다. 특히 대한민국처럼 이미 선진국 반열에 올라선 국가에게 이는 치명적이다. 과거 고도성장기에는 선진국을 빠르게 따라가는 '추격자(Fast Follower)' 전략이 유효했지만, 이제는 세상에 없는 길을 스스로 만들어내는 '선도자(First Mover)'가 돼야만 생존할 수 있다. 이러한 선도적 위치는 강도 높은 도전과 혁신을 통해서만 얻을 수 있으며, 도전과 혁신의 과정은 본질적으로 수많은 실패를 동반한다. 그러나 사회 구성원 모두가 실패를 병적으로 두려워하고 회피한다면, 그 사회의 혁신의 불꽃은 꺼져버릴 수밖에 없다. 한 명의 개인이 안정적인 길을 택하는 것은 지극히 합리적인 판단이다. 하지만 모든 개인이 그 '합리적 결정'만을 내릴 때, 아무도 위험을 감수하지 않는 사회, 즉 도전과 혁신이 실종된 사회라는 결과가 초래된다.

그렇다면 이 거대한 '안전 추구'의 흐름을 어떻게 되돌릴 수 있을까? 해답은 개인의 용기를 탓하기보다, 우리가 왜 이토록 실패를 두려워하게 됐는지 그 구조를 들여다보는 데에 있다. 우리 사회는 두 번째 기회에 지독히 인색하다. 한 번의 대학입시가, 첫 직장이 남은 인생의 경로를 결정짓는 사회에서 '실패'는 단순한 경험이 아닌 평생의 '낙인'이 되기 때문이다. 바로 여기에 우리 사회의 가장 큰 모순이 존재한다. 사람은 평생에 걸쳐 배우고 성장하는 존재이며 마땅히 평생 동안 배우고 정진하며 성장해야 함에도, 우리 시스템은 특정 시점의 성취만으로 평생의 보상을 재단하려 한다. 이러한 구조적 경직성이야말로 모든 구성원을 실패가 없는 안전한 길로만 내모는 보이지 않는 손이다. 진정한 변화는 교육 현장에서부터 시작돼야 한다. 아이들에게 '실패하지 않는 법'을 가르칠 것이 아니라, '실패해도 괜찮은 이유'를 알려주어야 한다. 넘어져도 다시 일어설 수 있다는 믿음, 잠시 다른 길로 들어서도 괜찮다는 사회적 용인, 그리고 언제든 새로운 도전을 환영하는 재도전의 시스템을 마련해야 한다. 우리 모두의 미래는 바로 그곳에 달려 있다. 박영득 충남대학교 정치외교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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