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퇴사 후 지병 악화해 사망해도 산재”···사망 2년 만에 산재 인정받은 20대 노동자

직장 내 괴롭힘 등으로 지병이 악화해 사망에 이른 노동자에 대해 근로복지공단이 ‘산재’를 인정했다. 피해자가 퇴사하고 6개월 뒤 사망했지만 근로복지공단은 이례적으로 인과관계를 인정했다.
10일 경향신문 취재를 종합하면 근로복지공단은 2020~2022년 2년간 한국세라믹기술원(기술원)에서 근무했던 김모씨의 사망(2023년 6월)을 업무상 재해(산재)로 인정해 지난 5일 유족에게 통지했다.
김씨는 중학교 2학년 때부터 자가면역질환인 ‘전신 홍반성 루푸스(루푸스)’를 앓았다. 루프스는 인체를 방어하는 면역계가 알 수 없는 이유로 인체를 공격하는 병이다. 10대 시절을 거의 병상에서 보낸 김씨는 20대에 신장투석을 시작하면서 병세가 호전됐다. 신장을 공격하던 루프스가 비활성기에 들어갔고 평범한 일상을 살 수 있게 됐다. 검정고시로 대학에도 입학했다.
신장 장애로 장애등급을 받은 김씨는 장애인 채용을 통해 2020년 12월부터 기술원에서 인턴생활을 시작했다. 부서장 A씨의 직장 내 괴롭힘과 성희롱은 이듬해인 2021년 12월 시작됐다. A씨는 김씨에게 “예뻤는데 지금은 왜 이렇게 살쪘냐. 이런 걸 성희롱으로 신고하지는 않겠지?”라고 말했고 “장애인이라 정규직 못 시켜준다. 몸이 아픈데 머리까지 나쁘면 어떡하냐, 멍청하다” 등의 발언을 하기도 했다. A씨의 이런 행위는 2022년 10월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 국정감사에서 공론화됐다.
A씨의 괴롭힘 등으로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던 김씨는 우울·불면 등 증세로 병원에서 적응장애를 진단받아 치료를 받았다. 2022년 5월 기록원에 고충을 토로했고 같은 해 10월 노동청에 진정을 냈지만 바로 해결이 되지 않았다. 김씨는 2022년 12월 계약 만료로 퇴사한 뒤 호전됐던 루푸스 증세가 악화했다. 김씨는 입원 치료중에도 피해사실 진술을 위해 회사를 오가며 A씨에 대한 민사소송을 준비했다.

2023년 3월 기술원은 A씨에게 직장 내 괴롭힘과 성희롱 등 사유를 들어 ‘3개월 감봉’ 처분을 내렸다. 이후 김씨는 중증 루푸스 발작으로 뇌사에 빠졌고 2023년 6월 사망했다. 기술원은 2023년 국회 국정감사에서 이 문제를 다시 지적받고 나서야 A씨를 징계 해고했다. A씨는 징계 무효소송을 거쳐 기술원에 복직한 것으로 전해졌다.
근로복지공단은 김씨가 사망한 지 2년여가 지난 이달 초 김씨의 사망을 산재로 판단해 유족에게 통지했다. 통상 지병 악화로 인한 산재는 업무관련성 판단이 까다롭다. 퇴사 후 일정 기간이 지나 발생한 상병의 경우 인과관계를 입증하기도 어렵다.
김씨 사건을 맡았던 유화영 인사노무 승앤파트너스 노무사는 “(산재 여부를 판단하는) 질병판정위원회 위원 간 의견이 매우 분분해 최종 판단도 다수결로 가까스로 승인됐다”며 “사회초년생·비정규직 등 약자에 대한 직장 내 갑질이 사실상 사회적 살인 행위가 될 수 있음을 국가가 이례적으로 인정한 사례”라고 말했다.
김씨의 어머니는 10일 기자와 통화에서 “산재 결정으로 책임이 드러났지만 (가해자는)반성은커녕 복직했다”며 “국감까지 불려간 가해자의 복직은 말이 안 되며, 다른 피해자를 막기 위해서라도 제대로 처분을 받아야 한다”고 말했다.
김태욱 기자 wook@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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