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태석의 빛으로 쓴 편지] 여울에서 마주한 여름날의 고요한 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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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더운 여름날, 경기 연천 고랑포 여울을 찾았다.
인근 카페에서 차가운 커피를 마시며 더위를 식히던 중, 강물 위에서 움직이는 무언가가 눈에 들어왔다.
그 위에 낚싯대를 드리운 실루엣은 서서히 지워지며 풍경 속 한 장면처럼 스며들었다.
고랑포는 한탄강과 임진강이 만나는 곳이자 궁예의 마지막 도피처 중 한 곳을 전해지는 장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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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더운 여름날, 경기 연천 고랑포 여울을 찾았다. 인근 카페에서 차가운 커피를 마시며 더위를 식히던 중, 강물 위에서 움직이는 무언가가 눈에 들어왔다. 처음엔 물고기 사냥에 나선 새인 줄 알았으나 자세히 살펴보니 낚시꾼들이었다. 그들이 물속을 응시하는 모습은 보기만 해도 시원했고, 나도 모르게 시간을 잊은 채 바라보았다. 어느새 해는 서쪽 하늘로 기울고, 노을에 반사된 강물은 비단처럼 찬란하게 빛났다. 그 위에 낚싯대를 드리운 실루엣은 서서히 지워지며 풍경 속 한 장면처럼 스며들었다.

고랑포는 한탄강과 임진강이 만나는 곳이자 궁예의 마지막 도피처 중 한 곳을 전해지는 장소다. 자신을 미륵불이라 칭하며 후고구려를 세운 그는 이상향을 꿈꿨지만, 그가 만든 세계는 불신과 통제로 가득했다. 끝내 왕건에게 쫓겨난 그는 이 강가 어딘가에 몸을 숨긴 채 역사의 그림자로 사라졌다. 하지만 수백 년 전의 그 물길은 여전히 말없이 흐르며, 이름 없이 사라진 이들의 기억을 조용히 품고 있다.

어쩌면 우리는 모두 일상이라는 고랑포로 돌아가는 궁예일지도 모른다. 잠시 떠났던 휴가가 끝나고 다시 현실을 마주할 시간이다. 그러나 그 시간은 도피가 아니라, 더 나은 삶을 위한 숨 고르기였음을 기억해야 한다. 익숙한 자리로 돌아가는 발걸음은 무겁지만, 그 속에도 분명 의미가 있다. 우리는 다시 흘러가는 물결처럼 일상으로 나아가고, 그 속에 우리만의 흔적을 남긴다.

왕태석 선임기자 kingwang@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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