활활 타지 않아도, 닿으면 뜨거운 숯처럼

황지윤 기자 2025. 8. 11. 0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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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번째 시집 ‘잉걸 설탕’ 낸 송희지
문지문학상·극작가 데뷔 등 활약

시인은 대개 첫 시집에 혼을 갈아 넣는다. 시집 한 권에 정수(精髓)가 모이고, 세계가 만들어진다. 이는 때로 자신이 넘어야 할 부담스러운 벽. 그러나 최근 두 번째 시집 ‘잉걸 설탕’(문학과지성사)을 펴낸 시인 송희지(23)는 오히려 반대다.

두 번째 시집 '잉걸 설탕'을 펴낸 송희지 시인을 최근 서울 광화문에서 만났다. /장련성 기자

문단의 시인과 평론가들이 “첫 시집에 비해 기량이 부쩍 올랐다”며 그를 주목하고 있다. 지난해 말 시 ‘루주’ 외 네 편으로 문지문학상을 받은 것이 신호탄이었다. 올 초엔 조선일보 신춘문예 희곡 부문에 당선돼 극작가로 데뷔했다. 시와 희곡, 전방위로 활약하는 그를 얼마 전 서울 광화문에서 만났다.

‘잉걸’은 불이 이글이글하게 핀 숯덩이를 가리킨다. 송희지는 “이 시집이 가진 이글거림이 너무 활활 타오르진 않되, 숯불에 남은 불처럼 손을 대면 ‘앗, 뜨거’ 하는 열기를 갖길 바랐다”고 했다. 단정하고 깔끔한 문장을 구사하지만, 어딘가 깨진 틈으로 서정과 정념이 끈적하게 흐른다.

설탕을 졸이는 냄비처럼 달콤하면서도 불안하다. ‘콩포트. 향긋한. 콩포트. 냄비 속 끓는. 콩포트. (…) 포효하는. 콩포트. 하나 결코 밖으로 넘치진 않는.’ (연작시 ‘그해, 후쯔에서’). 강동호 문학 평론가는 “서정시의 새로운 혁신적 징후를 예감하게 한다”며 “동시대 한국 시의 새로운 미래를 예감케 하는 잊을 수 없는 이름 하나와 만났다”고 추켜세웠다.

송희지는 "시인으로만 남고 싶지는 않고 이것저것 다 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며 "시도 쓰고, 소설도 쓰고, 희곡도 쓰고, 그 사이를 자유롭게 횡단하는 문학도 써보고 싶다"고 했다. /장련성 기자

벌써 7년 차 시인. 고양예고 문예창작과를 다니다 원하는 글을 쓰고 싶어 자퇴했다. 열일곱에 시 전문지 ‘시인동네’로 데뷔했다. 검정고시를 쳐 또래보다 한 해 일찍 동국대 국어국문·문예창작학부에 들어갔고, 올해 동 대학원에 입학했다. 스물한 살에 첫 시집 ‘싱크로나이즈드 스위밍’(파란)을 펴냈다. 그는 “첫 시집을 내기 전엔 한평생 책을 낼 수 없을 것 같은 압박이 있었다”면서 “이번엔 부담을 덜고, 힘을 빼고 썼다”고 했다.

시에 소년미가 묻어난다. “가수 트로이 시반의 곡 ‘러시’ 뮤직비디오를 보고 꽂혀 쓴 시”도 있다. ‘파도처럼 몰아칠 때. 소년이 소년을 사랑하고 세계가 깨져. 산란하는 성질의 광물 발밑에 쌓여. 피냐콜라다. 피냐콜라다….’ (‘그해, 후쯔에서’) 그는 자신을 “퀴어 문학을 하는 사람. 그중에서도 게이 시를 쓰는 사람”이라고 소개한다. 시인의 말에선 ‘나의 게이는 나를 어디까지 던질 수 있을까?’ 물었다. 시인은 “게이라는 정체성이 대단히 중요한 시집”이라고 했다.

그 에너지가 마냥 청량한 것은 아니다. ‘이상하지./ 형아,/ 그런데도 허구가./ 우리가./ 시가 되다니./ 노래가 되다니.’ (연작시 ‘금정포’) 송희지가 시에서 연인으로 호명하는 ‘형아’가 불러일으키는 묘한 그리움의 정서가 아릿하다. 이 아림이 무엇인지 더듬어보는 것. ‘잉걸 설탕’을 읽는 한 방법일 수 있다.

강동호 평론가가 해설을 쓰며 붙인 '퀴어 노스탤지어'라는 표현에 대해 송희지는 "지나가버린 시절은 과거일 뿐 아니라 희미한 오늘이기도 하고, 우리에게 아직 오지 않은 미래인 것도 같다"며 "있었는데 없었던, 묘한 감각의 시간대를 쓰기 좋아한다"고 했다. 그가 생각하는 "퀴어의 시간"이다. /장련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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