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의 애피타이저 전주곡만 모아봤어요
바흐 등 전주곡 음반 내고 독주회

메인 요리 대신에 전채(前菜)만으로 상을 차리고, 본문 대신에 서문만으로도 책을 쓸 수 있을까. 캐나다 출신의 피아니스트 얀 리시에츠키(30)는 이런 기발한 발상으로 음악적 실험을 벌였다.
‘음악의 아버지’ 바흐부터 쇼팽·라흐마니노프, 메시앙의 현대음악까지 작곡가들의 전주곡(Prelude)만 모아서 음반을 펴내고 지난 9일 예술의전당에서 독주회를 연 것이다. 바흐에 이어서 쇼팽 전주곡을 연주하고, 라흐마니노프 이후에 메시앙의 전주곡으로 넘어가는 방식. ‘세상의 모든 전주곡들’을 한 무대에서 펼쳐 보인 셈이다.
전주곡은 오페라나 모음곡의 도입부 역할을 하는 곡이다. 그는 다음 날인 10일 인터뷰에서 “전주곡만 모아서 연주하면 자연스럽게 하나의 곡이 다음 곡을 소개하면서 연주회가 이어질 것이라는 아이디어가 떠올랐다”고 했다.
이 때문에 이날 독주회에서 그는 전반과 후반 모두 곡과 곡 사이에 휴식이나 중간 박수도 없이 연주를 계속 이어갔다. 리시에츠키는 “한 곡을 마칠 때마다 멈추면 연주자는 물론, 관객들도 긴장을 잃고 마음이 풀어지기 쉽다. 그런 긴장과 집중력을 유지하고 싶었다”고 했다.
캐나다 캘거리 출신의 리시에츠키는 다섯 살 때부터 피아노를 배우고 9세에 지역 오케스트라에 데뷔한 ‘음악 영재’ 출신이다. 그는 “지역 콩쿠르에서 통과한 뒤 부상으로 아마추어 악단과 모차르트 협주곡을 연주한 것이 인생 첫 협연”이라며 웃었다. 15세에는 명문 음반사 도이치그라모폰(DG)과 계약해서 화제를 모았다. DG는 조성진(31)의 소속 음반사이기도 하다.
한 살 차이인 이들은 십대 시절인 2009년 일본 하마마쓰 피아노 아카데미에 함께 참여해 공부하고 연주한 인연이 있다. 2015년 조성진이 쇼팽 콩쿠르에서 우승했을 때 리시에츠키는 2009년 함께 촬영했던 사진을 X(옛 트위터)에 올린 뒤 “시간이 빠르다(Time flies)”며 축하를 보냈다. 그는 “조성진과 어릴 적부터 알고 지냈다. 한국은 단지 ‘뛰어난(good) 음악인들’이 아니라 ‘음악적인(musical) 음악인들’이 많은 나라”라고 했다.
리시에츠키는 올해 연주회만 이달까지 71회에 이른다. 나라와 도시를 옮겨 다니며 연주하기 때문에 자신을 “피아니스트이자 여행자”라고 소개한다. “고향 캘거리로 돌아가면 아버지와 캠핑을 떠나거나 집에서 정원을 가꾸고 빵과 피자를 굽는다”고 했다. 요즘 말로 ‘취미 부자’인 셈이다. 그는 “음악과 일상 사이에서 균형을 찾기 위한 방법”이라고 했다.
그의 다음 음악적 화두는 ‘춤곡(Dance)’. 쇼팽과 브람스, 버르토크의 춤곡들을 모아서 연주할 예정이다. 리시에츠키는 “단순한 프로그램에 머물기보다는 음악을 통해 하나의 이야기를 만들고 싶다”고 했다. 그의 말을 들으니 우리 시대의 피아니스트는 연주자일 뿐만이 아니라 뛰어난 기획자이기도 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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