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어대(釣魚臺)의 북핵 협상 추억 [남성욱의 동북아 포커스]
2030년 영국도 앞설 전망의 북한 핵무력
미사여구 속 북한 '시간 끌기'만 있던 만남
상대 선의에만 기대는 바람에 실패한 협상

지난달 10년 만에 중국 베이징의 국빈 영빈관 댜오위타이(조어대·釣魚臺)를 방문했다. 21세기한중교류협회와 중국인민외교학회 공동주최로 한중관계 발전 포럼 행사가 열렸다. 10년 만에 방문한 조어대는 새롭게 단장됐다. 황제가 낚시를 했다고 해서 ‘조어대’로 불린다. 규모가 10만여 평에 달해 서울 근교에 이런 영빈관이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중국 공산당은 신정부를 설립한 지 11년 만인 1959년 이곳에 국빈관을 건설하고, 외국 국가원수 등 고위급 인사를 맞이했다. 1992년 한중 수교를 비롯하여 중국 현대사의 중요한 국제적 만남이 이뤄졌다. 한국의 대통령들뿐만 아니라 김일성과 김정일, 김정은 등 북한의 3대 지도자들도 베이징을 방문할 때 마다 이곳에 묵었다.
20여개의 건물 중에서 17호는 북핵 6자회담이 열렸던 곳이다. 숲속에 가려진 4층 규모의 건물은 과거 회담이 열릴 때 마다 한중일 및 서방 기자들의 집중 취재 대상이었다. 가장 인기가 있던 대표단은 회담 내용을 자세히 소개한 러시아였다. 러시아는 회담장에서는 별로 발언을 하지 않지만 밖에서는 기자들에게 회담 내용을 소상히 소개해서 ‘확성기(laud speaker)’라는 별명이 붙었다.
2003년부터 2007년까지 4년 간 6차례 회담이 있었고, 단계별 회담까지 포함하면 총 10차례의 6자 회담이 개최됐다. 회담에 참석한 한국 대표단장들은 현직에서 퇴직한 후에 회고록에서 당시의 논의와 북한을 압박했던 무용담을 자세히 소개했다. 횟수를 거듭할수록 6개국이 회담장을 자국의 선전장으로 활용했다. 회의는 미디어의 스포트라이트를 받았으나 진전은 없었다. 비핵화에 대해 5대1 구조였으나 북한은 항상 '갑'이었다. 공정한 중개자로 자처했으나 중국은 회담장 제공 이상의 건설적 역할을 하지 않았고 은연중 북한을 두둔하고 미국의 양보를 요구했다. 크리스토퍼 힐 미국 수석대표와 김계관 북한 수석대표는 칼과 방패의 논쟁을 벌였다.
북한 대표단의 발언과 단어 하나하나에 일비일희하던 일도 이제는 역사가 되었다. 2005년 4차 회담에서 남한은 북한에 200만㎾전력을 제공하고 북한은 국제원자력기구(IAEA)에 복귀한다는 ‘9.19 공동성명’이 발표됐으나 이듬해인 2006년 1차 북핵 실험이 이뤄졌다. 간신히 2007년 ‘10·3 합의’로 핵문제 해결에 마지막 희망을 걸었으나 문서상 합의에 그쳤다.
영변 핵시설은 IAEA 사찰 후 단계적으로 폐기하고 북한을 테러지원국에서 해제하며 북한의 금융자산 동결 해제의 로드맵이었다. 다음해 8월 냉각탑을 폭파하는 등 비핵화의 그림을 그렸으나 그해 겨울을 기점으로 4년에 걸친 6자회담은 막을 내렸다.
이후 2009년 2차 핵실험을 시작으로 2017년까지 총 6차례 핵실험이 감행됐다. 북한은 더 이상 6자회담에 나올 필요가 없었다. 핵능력이 완성되었고 북한은 현재 50여기의 핵무기를 보유했다. 최근 국방연구원(KIDA)은 5년 후에는 북한이 영국을 제치고 세계 5위 핵무기 보유국으로 부상할 것이라고 예측했다. 김정은이 지난해 추석 무렵 평양 외곽에 위치한 강선 우라늄 농축시설을 방문하고 기하급수적인 핵무기 생산을 지시한 것이 사진과 함께 최초로 공개됐다.
성하의 계절에 방문한 조어대는 조용했다. 베이징 숲속에서 진행됐던 6자회담은 북한의 핵개발을 위한 ‘시간 끌기’ 침대 축구 전략이었다. 그럴듯한 미사여구와 주고받기 목록으로 언론을 화려하게 장식했으나 평양이 핵개발 시간을 버는 버티기 회담에 불과했다. 클린턴 행정부 시절인 1994년 검토됐던 영변 폭격 시나리오는 한계가 있어 외교협상으로 바꾸었으나 성과는 없었다. 협상보다는 이란 핵시설을 폭격한 지난 봄 이스라엘의 정책을 비판만 하기도 어렵다.
17호 건물은 의구한데 비핵화의 동상이몽을 꿈꾸었던 인걸들은 없다. 상대의 선의를 기대했던 협상은 항상 실패하기 마련이라는 외교 격언이 떠올랐던 조어대 체류 시간이었다. 북한이 보상을 하면 비핵화에 나설 것이라는 가정은 훗날 ‘핵은 돈으로 해결될 문제가 아니라 주권의 문제’라는 김정은의 발언에 의해 오류로 드러났다. 요컨대, 6자 회담은 실패한 다자외교의 전형이었다.
남성욱 숙명여대 석좌교수, 전 민주평통 사무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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