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디칼럼] 모스크바서 바라본 러시아 의술의 흐름
지난 6월 중순, 모스크바에서 열린 러시아 대장항문학회에 초청 연사로 참석했다. 이번 초청은 지난해 중국 광저우에서 열린 국제학술대회인 GDDW(Guangzhou Digestive Disease Week)에서의 발표가 계기가 되었다. 당시 나는 복합골반장기탈출(방광 자궁 직장탈출)과 변실금·요실금이 함께 있는 이중실금을 주제로, 실제 수술 술기 비디오를 중심으로 강의를 진행했다. 현지 의사들의 반응이 좋았고 이후 유튜브에 실제 수술 장면을 편집 없이 공개한 영상은 며칠 만에 수천 명의 해외 의사들이 시청하며 많은 관심을 끌었다.
그 자리에 있던 러시아 대장항문학회 회장 Petr Tsarkov는 내 발표를 끝까지 지켜본 뒤 이후 모스크바 학회 초청장을 보내왔다. 10여 년 전 한국에서 처음 인연을 맺은 그와의 학문적 재회였다. 10년 넘게 러시아 학회를 이끌고 있는 그의 위상은 대단하며 생일을 기념하는 학술대회가 열릴 정도다. 그의 장기 리더십 아래 러시아 대장항문 분야의 질적 성장은 뚜렷하게 진행되고 있었다. 특히 해외 학자들과의 교류를 통해 러시아 의학계의 국제적 시야를 넓히려는 노력이 돋보였다.
모스크바 입국은 녹록지 않았다. 정치적으로 복잡한 시기였고 모스크바행 직항도 끊겨 상하이를 거쳐야 했다. 공항 입국장에서는 아랍계 외국인이 입국 거부됐고, 미국 테네시에서 온 가족 중 엄마의 입국이 보류되어 이산가족이 되는 장면도 지켜보았다. 내 차례 때 긴장된 마음으로 초청장을 꺼내자, 심사관은 얼굴도 보지 않고 도장을 찍었다. 1분도 안 걸렸다.
학회의 가장 큰 특징은 실전 중심 교육이었다. 핵심 세션은 대부분 ‘Live surgery’로 구성됐다. 단순 발표보다 실제 수술 장면을 생중계하고 이를 기반으로 토론이 이어지는 방식이었다. 내가 발표한 난치성 복잡치루의 성체 줄기세포 치료는 라이브가 어려워 비디오로 소개했지만 의사들의 반응은 매우 적극적이었다.
두 번째 주제였던 직장탈출증 및 골반장기탈출 수술의 다양한 접근법 발표 역시 쏟아지는 질문과 함께 높은 관심을 받았다. 회음부 접근법과 복강경 접근법을 실제 수술 전략 중심으로 소개했고, 특히 골반저 질환에 대한 관심은 예상보다 컸다. 토론은 수차례 이어졌고, 대부분의 세션이 예정 시간을 1시간 이상 초과했지만 학문적 열기는 오히려 더 깊어졌다. 학회를 실질적으로 주도하는 중견 여성 의사들의 비중도 인상적이었다. 사회주의 체제의 유산인지, 실력 기반의 자연스러운 결과인지 단정할 수는 없지만 학회 운영, 세션 진행, 기획 등 주요 흐름을 여성들이 주도하고 있었다.
학술 일정 이후에는 인적 교류와 문화 체험, 그리고 러시아식 환대가 이어졌다. 확 트인 야외의 국제 연자 바비큐 파티, 모스크바 강을 가로지르는 대형 유람선 행사, 러시아 전통 음식과 볼쇼이 가수의 공연이 어우러진 공식 만찬은 학문과 인간적 교류가 조화를 이루는 시간이었다.
러시아는 흔히 의료 후진국이라는 편견을 받는다. 그러나 이번 학회를 통해 본 러시아 의료계는 세계 각국의 의사들과 실시간으로 수술을 공유하고, 토론하며 배워가는 미래지향적 의지를 보여주고 있었다. 학문적 진지함, 실전 중심 교육, 개방적 토론, 국제 교류를 통한 성장 흐름은 분명했다. 정치와 무관하게 학문은 계속 흐르고 있었다. 러시아 학회에서 마주한 질문과 열정, 현장 중심 교육 시스템은 지금 우리에게도 유효한 화두다.
출국길은 다시 긴장이었다. 심사관은 전화를 하며 웃다가 갑자기 심각한 표정으로 내 얼굴과 여권을 번갈아 쳐다봤다. 가방에서 초청장을 만지작거리자, 아무 말도 없이 5분 이상 지나 도장을 찍어줬다. 김해공항에 도착해 전자 입국 시스템으로 몇 초 만에 통과하니 한국의 시스템이 자랑스러웠다.

모스크바를 방문한 3박 4일 동안 학문적 교류뿐만 아니라 한 사람의 손님으로서 과분한 환대와 귀빈 대접을 받았다. 러시아 의사들의 진심 어린 환대와 학문을 향한 열정에 감사하며 이번 모스크바 방문기를 마무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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