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을 열면서] 인연의 소중함을 생각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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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0년 무더위가 이어지던 한여름, 포승줄에 줄줄이 엮인 한 무리의 사람들이 달빛을 의지한 채 산길을 걷고 있었다.
누군가 갈 길을 재촉하자 서둘러 발을 옮기는 소리, 겁에 질린 숨소리, 간혹 산속 짐승들이 내는 소리 외엔 그 어떤 것도 들리지 않는 밤이었다.
선(善)한 의도로 인연의 손길을 내밀어도 악(惡)으로 갚는 이들이 수두룩하다.
자신이 위험에 빠질 수도 있는 긴박한 상황에서 할아버지를 살려 주신, 그분의 마음을 생각하면 저절로 고개가 숙여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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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0년 무더위가 이어지던 한여름, 포승줄에 줄줄이 엮인 한 무리의 사람들이 달빛을 의지한 채 산길을 걷고 있었다. 누군가 갈 길을 재촉하자 서둘러 발을 옮기는 소리, 겁에 질린 숨소리, 간혹 산속 짐승들이 내는 소리 외엔 그 어떤 것도 들리지 않는 밤이었다. 달도 숨을 죽인 공포의 밤이었다.
북한군이 마을을 점령한 지 여러 날이 지나자 끌려 나간 이들이 돌아오지 못하는 일이 늘어났다. 전쟁 발발 소식을 듣자마자 피란을 떠난 사람들도 있었고 급히 남자들만 몸을 피한 집도 있었다. 무영은 어쩌다 이런 상황이 된 것인지, 어디로 끌려가는지, 앞으로 어떻게 될지 모른다는 자신의 불확실한 처지보다 집에 남겨두고 온 아내와 어린 자식들이 마음에 걸렸다.
다리에 힘이 풀린 누군가가 넘어지자 포승줄에 엮인 이들이 연이어 고꾸라졌다. 잠깐의 휴식이 주어졌다. 그때 총을 든 누군가가 다가왔다. 포승줄을 풀어주며 같이 소변을 보러 가자는 말에 무영의 눈앞이 캄캄해졌다. 이렇게 하나씩 데려가 죽이는가 싶었다. 땀이 줄줄 흐르는데도 등에 닿는 총부리의 느낌이 선득했다. 고개도 못 들고 걷고 있는데 뒤에서 빠르고 조용한 속삭임이 들려왔다. “소변 누는 척하고 돌아가면 줄 맨 뒤로 가서 느슨하게 묶어 줄 테니 따라가다 눈치껏 풀고 도망가소. 나는 스승님의 아들을 내 손으로 죽일 수 없소.” 그제야 무영은 고개를 돌려 목소리의 주인공을 봤다. 익히 아는 얼굴이었다. 무리로 되돌아온 두 사람은 아무 말을 나누지 않았다. 무영은 무사히 탈출에 성공해 집으로 돌아왔고 바로 피란길에 올랐다.
위의 사건은 6·25전쟁 당시 할아버지가 직접 겪은 일이다. 고조·증조할아버지는 나라 잃은 백성들에게 배움이 더 필요하다며 재산을 털어 마을에 학교를 세웠다. 거기에서 두 분께 글을 배우고 학문을 닦은 이들이 많았단다. 증조할아버지는 백범 김구 선생이 암살당했다는 소식에 상경해 국민장 기간 내내 애도하다 귀가하셨고 그 길로 곡기를 끊은 채 계속 슬퍼하다 같은 해에 돌아가셨다. 증조할아버지께서 돌아가셨을 때 제자들을 위시해 애도하는 이들이 올린 만장 깃발이 수백이 넘었다고 한다. 할아버지께서 살 수 있었던 이유는 고조·증조할아버지께서 세상에 뿌려놓은 선한 인연의 씨앗 덕분이었다. 그 씨앗이 전쟁의 야만성을 뚫고 싹을 틔워 할아버지를 살렸다. 그뿐만이 아니다. 처참한 전쟁 속에서도 가장을 잃지 않은 덕에 집안의 여러 생명이 살 수 있었고 지금의 나도 존재하게 됐다고 생각한다.
인연(因緣)은 어떤 일이 생긴 근본(因)과 그 일이 일어나게 된 조건(緣)을 합친 말이다. 이유와 상황이 서로 잘 맞아떨어져야 맺어지는 것이니 절대 쉽게 이어지는 게 아니다. 선(善)한 의도로 인연의 손길을 내밀어도 악(惡)으로 갚는 이들이 수두룩하다. 자신이 위험에 빠질 수도 있는 긴박한 상황에서 할아버지를 살려 주신, 그분의 마음을 생각하면 저절로 고개가 숙여진다. 윗대 어르신이 보여주신, 인연을 대하는 자세를 본받아 만나는 이들 모두를 소중하게 대하지 않을 수 없다. 경기일보와 독자들과의 인연 또한 소중하다. 진심을 쏟은 만큼 언제 어디서 만나게 되든 서로 웃으며 볼 수 있기를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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