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가 숨통 끊으려 했던 우리말…이제 옥스퍼드 사전에도 실린다

최나실 2025. 8. 10. 19: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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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일 세계적으로 낙오된 조선 민족이 갱생할 첩로(지름길)는 문화의 향상과 보급을 급무(빨리 처리해야 할 일)로 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요.

그러나 작업 막바지이던 1942년 10월 억압 수위를 높여가던 일제는 조선어학회를 '독립운동단체'로 규정해 관계자 33명을 치안유지법 '내란죄' 혐의로 체포하고 이극로 등 16명을 기소했다.

일명 '조선어학회 사건'으로 불리는 이 일로 11명이 옥살이를 하다 2명(이윤재·한징)이 숨지는 등 사전 편찬 작업은 최대 위기를 맞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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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복 80년, K도약 리포트]
일제강점기 직후부터 시작된 '우리말 지키기'
최초 사전 '말모이' 편찬…온갖 어려움 겪어
1942년 '조선어학회 사건'으로 최대 위기
광복 후 2년 만에 '조선말 큰사전' 발행
금일 세계적으로 낙오된 조선 민족이 갱생할 첩로(지름길)는 문화의 향상과 보급을 급무(빨리 처리해야 할 일)로 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요. (중략) 문화의 기초가 되는 언어의 정리와 통일을 급속히 꾀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그를 실현할 최선의 방책은 사전 편성에 있다.
1929년 조선어사전 편찬회 취지문
최초의 우리말 사전인 '말모이' 원고. 한글학자 주시경(1876~1914)과 그의 제자 김두봉(1889~?), 이규영(1890~1920), 권덕규(1891~1950) 등이 집필에 참여했다. 말모이는 '말을 모아 만든 것'이라는 의미로 사전을 뜻하는 순우리말이다. 국가유산청 제공

"말이 오르면 나라도 오르고, 말이 내리면 나라도 내린다"라는 국어학자 주시경(1876~1914)의 말처럼, 일제강점기에 우리말은 탄압과 고초를 겪었다. 특히 1930년대 이후 민족말살정책 시기 창씨개명(1940) 등으로 한글이 절명 위기에 놓이자 국어학자들과 평범한 민중들이 나서 지켜냈다. 광복 후 80년이 흐른 오늘, 한국어가 'K컬처'의 든든한 밑바탕이 될 수 있었던 건 그들의 분투 덕분이다.


1911년 일본어를 '국어'로 바꾼 일제

일제강점기 조선어학회 사건을 모티브로 만들어진 영화 '말모이'. 한국일보 자료사진

일제는 우리말 말살 정책을 집요하게 폈다. 한반도 강점 이듬해인 1911년 조선교육령을 제정해 일본어를 '국어', 한국어를 '조선어'로 부르고 모든 교과서를 일본어로 발행했다. 또, 교육령 제5조를 통해 교육 목적을 '국민된 성격을 함양함', 즉 조선인에게 일본 문화와 정체성을 주입하는 것이라고 못 박았다. 행정·법률 관련 문서도 일본어로 작성되면서 조선말은 생활어로 전락했다.

이에 '한힌샘(크고 흰 샘)' 주시경은 1911년 제자 김두봉, 권덕규, 이규영 등과 함께 최초의 우리말 사전인 '말모이' 편찬에 뛰어든다. 그러나 1914년 주시경의 갑작스러운 사망 등으로 작업은 중단된다.

조선어학회 상임간사였던 이극로의 가족 사진. 1939년 결혼 10주년 기념으로 찍었다. 박용규 이극로연구소장 제공

사전 편찬 작업의 불씨를 되살린 사람은 독일 유학생 출신인 이극로(1893~1978)였다. 독일 대학에서 무보수로 한국어 강좌를 했던 그는 통일되지 않은 철자법에 문제의식을 느꼈다고 한다. 1929년 귀국 이후 조선어연구회(조선어학회 전신)에서 '물불'이라는 호가 붙을 정도로 적극적으로 참여했고, 그해 10월 조선어사전 편찬회가 조직된다.

사전 편찬은 민중의 도움 없이는 불가능했다. 방언 수집이 대표적이다. 편찬회는 방학 때 귀향하는 학생들에게 국어학자 최현배가 엮은 전용 수첩 '시골말 캐기 잡책(1936)' 등을 이용해 전국 각지 방언을 수집해오게 했다. 또, 1935년 기관지인 '한글'에 광고를 내 독자들로부터 우편을 통해 방언을 모으기도 했다.


함께 지켜낸 우리말, 한류 타고 훨훨

조선어학회는 1929년부터 1942년까지 13년 동안 불굴의 노력 끝에 원고지 2만6,500여 장에 달하는 사전 원고를 써낸다. 그러나 작업 막바지이던 1942년 10월 억압 수위를 높여가던 일제는 조선어학회를 '독립운동단체'로 규정해 관계자 33명을 치안유지법 '내란죄' 혐의로 체포하고 이극로 등 16명을 기소했다. 일명 '조선어학회 사건'으로 불리는 이 일로 11명이 옥살이를 하다 2명(이윤재·한징)이 숨지는 등 사전 편찬 작업은 최대 위기를 맞는다.

1945년 광복을 하고서야 옥고를 치르던 이들이 석방되고, 일제에 압수당해 행방불명이던 원고도 되찾게 된다. 이후 1947년 한글날(10월 9일)에 '조선말 큰사전' 1권이 발행된다.

이렇게 많은 이가 함께 마음을 모아 지켜낸 우리말은 전 세계로 뻗어나가고 있다. 2021년 영국 옥스퍼드 영어사전은 '먹방'(mukbang), '대박'(daebak) 등 한국어에서 비롯된 단어 20여 개를 새로 등재하며 "우리 모두가 한류의 파도에 올라타고 있다"고 밝히기도 했다. 이제는 K팝과 K드라마, K푸드 등을 통해 세계인이 한글과 한국어를 접하는 일이 드물지 않게 된 것이다.

최나실 기자 verit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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