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선 지중화' 빠져 반쪽짜리··· "나무 말고 숲을 봐야"

'반구천의 암각화' 일대의 전봇대와 전선이 세계유산의 품격을 떨어뜨린다는 본지 보도(2025년 8월 6일자 1면)에 대해 문화예술계는 물론 시민단체들의 공감이 이어지고 있다. 문제는 여론의 공감에도 불구하고 해결책은 요원한 실정이라는 사실이다. 현재 울산시에서 종합정비용역이 진행 중이나, 전선 지중화 등 핵심 경관 개선이 빠져 '반쪽짜리'에 그칠 우려가 제기된다.
# 타 지자체 지중화 적극적···울산만 미온적?
9일 울산시에 따르면 지난해부터 5월부터 진행 중인 '반구천의 암각화' 종합정비계획 수립 용역에 전선 지중화 사업에 관한 내용은 없는 것으로 확인됐다.
타지자체들이 세계 유산의 가치를 지키고, 관광객들을 맞이하기 위해 적극적인 행보에 나선 것에 반해 울산시는 미온적인 태도를 보이며 실질적인 추진 계획을 내놓지 못하는 상황이다.
2015년 세계유산에 등재된 백제역사유적지구는 순차적으로 전선 지중화 사업을 완료했거나 진행 중이다. 지중화 사업이 유적지의 가치를 높이고 관광객들에게 더욱 매력적인 공간을 만들어 준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지난 2021년 순천만습지가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으로 등재됐는데, 순천시는 그 전부터 원시성 회복을 준비했다.
매년 순천만을 찾는 천연기념물 제228호 흑두루미와 철새들이 전깃줄에 다치거나 폐사하는 사고가 잇따르자 순천시는 2008년 일대 전봇대 282개와 전선 1만2,000m를 철거했다.
이후 흑두루미 개체 수가 167마리에서 7,000여마리로 늘었고, 이제는 연간 400만명이 찾는 생태관광지로 자리 잡았다.
같은 맥락에서 세계적인 보물이 된 반구천의 암각화 일대 주변 경관에 대한 정비 가운데 전봇대와 전선이 우선돼야 한다는 지적이 이어지고 있다.
# 반구천 암각화 경관 정비 '제자리'
전문가도 일대 난립한 수백개의 전봇대와 얽힌 전선들이 그 가치를 훼손하고 있다고 우려를 표하며, 세계유산의 경우 주변 환경과 원지형까지 함께 보존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유네스코로 '반구천의 암각화' 세계유산 등재 권고를 최종 보고한 이코모스(ICOMOS)의 한국위원회 최재헌 위원장도 실사 당시를 떠올리며 "세계유산은 주변환경의 원지형까지 잘 보존한다는 걸 보여줄 필요가 있다"며 "인위적인 시설물인 전봇대와 전선 등이 눈살을 찌푸리게 만들고 있는데 자연환경을 해치는 것들에 대한 정리가 필요하다"고 했다.
그러면서 "주변 지형과 과거 하천의 흐름 등 환경적 요소 전반을 면밀히 살펴보고, 이를 종합적으로 고려한 정비 용역을 통해 현실적인 해법을 도출해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하지만 지난해부터 울산시에서 진행 중인 종합정비계획 용역에는 전봇대 및 전선 지중화에 대한 내용이 포함되지 않은 것으로 확인돼 이에 대한 필요성이 강조된다.
지자체는 신중한 입장을 보이며 부담을 느끼는 분위기다.
울산시와 울주군은 2015년 한국전력공사에 전선 지중화 사업을 요청했지만, 한전의 회신이 없어 사업이 중단됐다.
당시 실태조사에 따르면 일대 7.5㎞ 구간에 286개의 전신주가 설치돼 있었고, 철거 및 지중화에 약 17억 원의 사업비가 들 것으로 추산됐다.
그러나 15년이 지난 지금은 공사비가 크게 상승해, 현재 1㎞ 구간만 지중화하는 데도 약 50억원이 소요될 것으로 추정된다.
지자체와 한전이 비용을 절반씩 부담하는 구조여서, 암각화박물관에서 공중화장실 구간만 정비하더라도 최소 25억원을 지자체가 부담해야 한다.
울주군 관계자는 "추정치이긴 하지만 금액이 커서, 필요성에는 충분히 공감하면서도 실제 시행 시점은 좀 더 검토가 필요하다"라며 "시에서 진행 중인 종합정비계획에 추가할 수 있는지 공사 시기, 구간, 범위 등 구체적인 사항에 대해 관련 부서와 면밀히 살펴보겠다"라고 말했다.
최재헌 위원장은 "문화유산은 종합병원처럼 한 부분만이 아니라 전체적으로 살펴보고 진단해야 한다"라며 "일대의 경관 보존을 위해 전봇대나 전선은 결국 정리돼야 하며, 지중화든 다른 방식이든 전체적인 용역을 통해 가장 적절한 방안을 찾아야 제대로 된 보존이 가능하기 때문에 처음부터 일괄적으로 접근해야 한다"라고 조언했다.
신섬미 기자 01195419023@iusm.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