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 이제 이만총총! [양희은의 어떤 날]

한겨레 2025. 8. 10. 18: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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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십대 청년이 먼저 읽고 그리다. 김예원

양희은 | 가수

그렇구나. 매미…너희로구나. 아침 일찍 현관문 열고 나가 조간 들고 오면 매미들의 합창이 뜨겁다. 드디어 시작이네. 이들의 떼창이 사라지면 어느 곁엔가 풀벌레들 노랫소리로 바뀌겠지? 올여름 유난히 길—다. 이제 8월 중순인데 6월, 7월의 무더위, 열대야, 폭우, 수해 재난이 기록적이었다. 8월에도 더위와 폭우 가능성이 예측되었으니 아직도 견뎌야 할 찐득찐득한 나날이 남아있겠지. 어린 날부터 변치 않는 버릇 하나, 무슨 일을 앞두면 상관없는 물건을 온통 뒤집고 정리한다는 사실. 참 어쩔 수 없다. 벽장을 열고 모아둔 에코백을 차곡차곡 접어 투명가방 안에 넣고, 크고 작은 크기별 가방과 쌕 등은 종이로 속을 채워 가지런히 넣었다.

땀이 비 오듯 해서 목욕탕으로 향했다. 주차자리를 찾느라 지하와 지상을 오르내린 끝에 겨우 주차를 했다. 탕 안에서 여자들마다 들고 온 온갖 목욕 가방 안을 슬쩍 들여다본다. 그 안에는 본인을 위해 마련한 모든 사치품들이 담겨 있다. 작고 빛나는 것이 아니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매일 쓰는 향기 좋은 큼직한 통들이 가득 담겨 있다. 목욕탕용 바구니를 함부로 대하는 이는 없다. 끝나고는 가지런히 정리하고 타올로 물기를 닦으며 곱게 다룬다. 여자가 자기를 위해 딱히 뭐 하고픈 게 없어도 이 가방은 다르다. 명품백 따위와는 비교가 안된다. 내가 사드린 꽃무늬 화려한 가방을 엄마는 목욕 가방으로 쓰셨다. 그 안에는 올록볼록한 스티로폼 깔판 하나, 비눗갑과 비누, 이태리타올, 비누거품 내는 타올, 레몬+소주+글리세린으로 손수 제조한 미용수 한병이 전부지만 애장품 중 최고였다. 나는 착한 공정무역 취급하는 데서 산 주스라벨로 엮은 백 안에 스킨, 로션, 거품타올, 비누와 비눗갑, 샴푸—그게 전부다. 무거운 게 싫어 뭐든 작은 병에 옮겨 담는다. 가끔 기분 좋은 향기를 풍기며 지나가는 이에게 무슨 냄새가 이렇게 좋냐고 물어도 본다. 목욕 후엔 로컬푸드에 들러 과일 몇가지를 사왔다. 수박은 다른 곳에서 4만원 하는 걸 우리 동네선 2만9천원 할 정도로 싱싱하고 좋다. 올여름엔 수박 먹기를 포기한 수포자로 지냈지만 대신 복숭아와 자두를 자주 샀다.

여름방학 시작과 동시에 바다 건너오는 손주들 해먹일 생각에 아쿠아반 할머니들은 바쁘면서 기쁘면서 여기저기 아프단다. 우유 날짜 지난 게 아까워 마시고 2주 동안 탈이 나버린 지인 얘기에 제발 청승 좀 떨지 마시고 아낌없이 버리시라고 충고를 해댄다. 나와 갑장인 친구가 서둘러 가기에 무슨 바쁜 일 있냐 물었더니 초등 5학년짜리 손녀 봐주러 간단다. 제 방에서 컴퓨터랑 놀아도 누가 있어야 해서 애 보러 간단다. 7말 8초 어김없는 휴가철!! 가까운 지인들은 애들 때문에 어디든 간다면서 일본의 북단과 최남단으로 두사람이 휴가를 다녀왔다. 캄차카 반도의 강진 영향으로 하루는 바닷물 입수 금지였지만 날씨도 좋았고 부모가 계획한 것보다는 그냥 지나가며 들른 고양이카페가 제일 재밌었다 하더란다.

휴가 대신 나는 요즘 부여에 자주 간다. 희경이네 아이들 봐주면서 시작된 엄마의 작품들 그림과 바느질이 섞이고 퀼트, 크레이지 퀼트, 포크아트, 유화 등등이 모여 꽤 많다. 슬슬 갤러리 카페에 교대교대로 전시할 예정이다. (1931년에 지어진 옛 규암면 우체국 건물이 왠지 좋아 보였고, 엄마의 주민등록 앞자리와 같아서 반가웠다.) 돌아가시고 완성된 엄마의 공간이 내 가슴엔 한으로 남아있는데, 이곳에서 엄마가 그리운 분들과 삶의 무게 앞에 당당한 분들을 많이 뵈면서 공감과 소통을 배우며 나이 들어가고도 싶다. 7월 초에 애당초 처음부터 거기 자리해온 듯 천연덕스럽게 열었고 소방서, 면사무소, 우체국, 농협까지 한바퀴씩 인사드렸다. 날 더워 쉴까 봐 떡은 생략하고 선선한 바람이 불 때쯤 신고식을 할까 싶다. 그리고 여기 오는 이들이 외갓집에 온 듯 쉬어가길 바란다. 가까운 이들과 혹은 아이들과 함께하며 울엄마 솜씨를 감상하시길 바란다. 무얼 모으기 좋아하셨던 할머니의 장식장도 보통수준은 넘는 재미난 컬렉션으로 가득 차 있다. 나중에 방송 일이 힘에 부치면 쉬어가길 원하는 이들과 얘기동무 하면서 나이 들어 가겠다. 엄마가 쓰시던 물감과 이젤, 작품들, 붓 빠는 통 등등 못버리고 남겨둔 끝에 이렇게 일을 벌이고 나니 모든 게 들어 맞아 희한한 기분이다. 규암면 자온로 59에 자리잡은 ‘이만총총 31’ 갤러리 카페의 이름은 전유성 선배가 지어주셨다. 라디오에서 편지 배달하는 게 나의 일인지라 옛날식 편지 끝맺음 말로 인사를 대신하겠다.

여름!! 이제 이만총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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