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현철 칼럼] ‘사이다’만으론 안되는 경제

강현철 2025. 8. 10. 17: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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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현철 논설실장


경남 저도에서 휴가를 보내던 이재명 대통령은 지난 6일 포스코이앤씨에 대해 건설면허 취소, 공공입찰 금지 등 법률상 가능한 제재 방안을 모두 찾아 보고할 것을 지시했다. 산업안전을 그토록 강조했건만 인명사고가 재발하자 최고 수위의 징계를 언급한 것이다. 이 대통령의 발언에 대해선 “사이다처럼 시원하다”는 반응이 적지 않았다.

만약 이 대통령 지시대로 포스코이앤씨가 면허취소돼 문을 닫게 되면 어떻게 될까? 시공능력 국내 7위인 이 회사는 수주잔액이 39조6230억원으로, 수도권 등 전국 103곳에 주택 건설·개발 사업장을 갖고 있다. 이미 모든 현장에서 공사를 전면 중단했다. 여기에 관계되는 국민들은 혹시라도 면허취소가 현실화될지 노심초사다. 직원수는 6000여명으로, 도급·파견·용역 등 간접 고용 1만7000여명을 합치면 2만3000명이 넘는다. 가족에 하청업체까지 더해 대략 5만여명의 생계가 위험할 수 있다. 포스코이앤씨는 또 현대건설, 대우건설과 컨소시엄을 구성해 가덕도 신공항 건설에 참여했는데 공항 건설에도 차질이 빚어지게 된다. 포스코이앤씨가 문을 닫게 되면 고구마 줄기처럼 뒤따를 일들이다.

최근 대형 건설업체인 대림DL에도 현장에서 사망사고가 발생했다. 그럼 대림DL도 문을 닫게 해야 할까. 산업재해가 발생하는 이유는 복합적이다. 회사측이 안전관리에 소홀한 점이 있을 수 있지만, 근로자 개인의 안전의식에도 문제가 있을 수 있다. 산업현장에서 중대재해가 발생하면 최고경영자(CEO)까지 처벌할 수 있는 중대재해처벌법이 시행된 이후에도 재해 발생이 오히려 늘어난 것은 이런 이유 때문이다. 한 조직내 발생하는 모든 사고의 책임을 CEO가 져야 할까? 이는 극단적으로 얘기하면 이태원 참사처럼 사회적 참사가 발생할 경우 대통령이 책임지고 사임해야 한다는 말과 마찬가지다. 국정과 경제는 명령과 지시만으로는 되지 않는다. 이게 사이다식 발언이나 정책만으로 모든 문제를 풀 수 없는 이유이다.

최근 이재명 정부의 지지율이 지난 대선 득표율(49.42%)을 넘어 60%대를 이어가고 있는 것은 국민의 가려운 곳을 속 시원히 긁어주는 이 대통령의 사이다 같은 발언 덕분이었다. 명쾌하면서도 빠른 일처리가 “대통령이 일은 잘한다”는 이미지를 심어줬다. 하지만 일시적으론 이런 평가를 받을 수 있겠지만 지속가능하지 않다.

모든 정책적 선택에는 대가가 따른다. 13조원 규모로 뿌렸던 소비쿠폰 지급에 대한 청구서가 당장 돌아오고 있다. 빚내서 국민 1인당 15만~55만원을 물쓰듯 주려니 재정이 펑크나 세수를 늘릴 구멍은 어디 없나를 찾고 있다. 법인세율과 증권거래세율 인상, 주식 양도세 부과 대주주 기준 확대, 금융권 교육세 인상 등이 그것이다. 증시 세금 인상은 개미 투자자들의 거센 반발에 부딪혀 정부와 여당이 곤욕을 치르는 중이다.

이재명 정부의 경제 비전은 무엇인가. 아직도 ‘잘사니즘’인가 아니면 아님 노동자 농민의 천국 만들기인가. 이도 저도 아니면 주가부양인가. 이 대통령이 대선때 부르짖던 ‘잘사니즘’은 두달여만에 흔적없이 사라졌다. 기업들을 옥죄고 기업가정신을 꺾는 노란봉투법이나 상법 개정, 그리고 농산물 생산과 유통을 왜곡시킬 양곡법과 농안법 개정 등을 보노라면 국민주권정부에 국민은 노동자와 농민뿐인 듯 하다.

새 정부 출범과 함께 주가가 급등한건 이 대통령에겐 ‘천운’이었다. 증시가 오른 건 이재명 정부가 잘해서가 아니라 비상계엄에 따른 정치적 불안정이 해소되면서 내외국인 투자자들의 기대심리가 커지고, 그에 따라 못올랐던 증시가 오버슈팅된 측면이 적지 않다. 주가의 밑바탕인 우리 경제의 펀더멘털(기초체력)이 좋아져서가 결코 아닌 것이다. 기업의 실적은 트럼프 미국 정부의 무지막지한 관세 부과와 중국의 한국 산업 추월, 정부의 반기업정책으로 인해 오히려 뒷걸음질 칠 가능성이 높다. 주식양도세 부과 대주주 기준 확대는 증시의 운이 다해 ‘코스피 5000’이라는 구호가 이제 악재로 작용하는 신호탄이 될 수 있다.

‘딥시크’로 전세계에 AI 충격을 가한 중국은 얼마전 국무원에서 ‘AI+ 이니셔티브’ 정책을 공식 통과시켰다. AI를 제조, 소비, 의료, 금융 등 산업 전반에 적용해 대규모 응용단계로 확장하는 것이 목표다. 이재명 대통령도 ‘AI 글로벌 3대 강국’을 내걸고 100조원 투자를 약속했지만 중국과 견줘 겨우 걸음마 단계다. 그마저도 무엇을 어떻게 할지 밑그림(액션플랜)조차 나오지 않았다. 인터넷 시대를 선도했던 역동적인 과거 대한민국과 180도 다른 양상이다.

이재명 정부에 가졌던 국민들의 기대는 점차 실망으로 바뀌고 있다. ‘잡탕’과 불공정으로 대표되는 초기 내각과 대통령실 인사, 윤미향 전 의원과 조국 전 조국혁신당 대표가 포함된다는 광복절 특사, 3대 특검, 무더기 반시장 입법 등에서 보듯 국정 우선순위에서 경제는 뒷전으로 밀려났다. 진짜 먹고사는 문제와 일자리는 대통령의 관심 밖이라는 소리가 나올 정도다. 이 대통령이 민생과 함께 국정 양대 우선 순위로 내세웠던 국민통합도 물건너갔다.

화웨이 등 중국 주요 기업들엔 ‘996 근무제’(오전 9시 출근, 밤 9시 퇴근, 주 6일 근무)가 일상화돼 있다고 한다. 그런데 우리는 오후 6시면 기업 연구소들의 불이 꺼지고, 주 4.5일 근무제 도입이 논의되고 있다. 국민주권정부는 성공할 수 있을 것인가. 경제는 ‘사이다’만으론 되지 않는다. 새 정부 허니문이 끝나가는 지금 이재명 정부의 진짜 실력이 시험대 위에 오르고 있다.

논설실장 hckang@d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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