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썰물밀물] 수도국산 달동네박물관의 20년 성과

이문일 논설위원 2025. 8. 10. 16: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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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문일 논설위원

수도국산 달동네는 지금은 사라지고 없지만, 인천인들에게는 '정겨운 고향'과도 같은 곳이다. 수도국산(水道局山)은 동구 송현동과 송림동에 걸쳐 있는 산을 일컫는다. 나지막한 이 산의 본디 이름은 송림산(松林山). 송림산은 산 언덕에 소나무가 많아 붙여진 이름이다. 송현(松峴, 소나무 고개), 송림(松林, 소나무 숲) 등 산 주변 지역 지명도 여기서 나왔다.

이런 송림산이 수도국산으로 이름을 바꾼 데에는 근대 개항기 인천의 역사와 관련이 깊다. 1908년 이 산 정상에 서울 노량진과 송현동을 잇는 송현배수지를 완공하면서 수도국산으로 변했다. 바다를 끼고 있는 인천에는 우물이 적을 뿐만 아니라 수질도 나빠 개항 이후 증가한 인구와 선박 등으로 괜찮은 물 확보를 큰 고민거리로 삼을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일제는 1906년 탁지부에 수도국을 신설하고 인천과 노량진을 연결하는 상수도 공사에 착수했다. 수도국산의 '수도국'은 과거 상수도를 관리하던 곳을 뜻한다.

송림산 정상에는 수도시설이 남아 있다. '송현배수지'로 명명된 수도국산은 인천 최초의 상수도시설이자 도시계획시설로, 2003년 10월 인천시 문화재 자료 제23호로 지정됐다. 수도를 끌어들이면서 이 주변에는 많은 공장이 지어지고,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자그마한 언덕에 있던 소나무를 베고 정착하기 시작한 이들이다. 달동네 역사는 특히 6·25전쟁 이후 찾은 피란민들의 보금자리로 인식되면서 비롯됐다.

동구는 '송현지구 주거환경개선사업'으로 기억 속에만 남은 수도국산 달동네의 삶을 되살리고자 송현동에 박물관을 건립했다. 역사 속에 실존했던 달동네 서민의 평범한 생활을 박물관의 주제로 삼은 점은 국내 박물관 역사에서도 이례적인 일이다. 지난 2005년 10월25일 개관했으니, 올해로 20주년을 맞은 셈이다.

수도국산달동네박물관이 개관 20주년을 기념해 소장품 전문 도록 '수도국산달동네박물관'을 펴내 눈길을 끈다. 2005년 박물관 개관부터 지금까지 수집해온 결과물을 일반인에게 처음으로 선보인다. 1980년대 선풍적 인기였던 자동차 포니를 비롯해 국내에서 최초 생산한 텔레비전 모델 금성 등의 사진이 실렸다. 이밖에 대표 소장품들을 고화질 이미지로 볼 수 있다. 도록은 발전의 초석 개항과 일제 강점기, 격동의 시대 광복에서 재건까지, 고속 성장기 1960~1980년대, 일상의 편리 가전제품, 수도국산 달동네 등 5부로 구성됐다.

수도국산달동네박물관은 인천은 물론 동구의 근현대사를 이해하는 창구다. 중요한 자료로도 남을 박물관의 소장품 관리를 잘해서 많은 이들이 활용하도록 힘을 쏟았으면 한다.

/이문일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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