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센 물살 헤치며 물길 따라 원시림 속으로 ‘트레킹’

조은별 기자 2025. 8. 10. 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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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위 피해 떠난 인제 ‘아침가리계곡’ 트레킹
오지 산행 즐기는 이들의 숨은 성지 ‘삼둔사가리’
아침에만 밭갈 정도로 잠시 해 비치는 ‘첩첩산중’
온몸이 젖어야 완주 가능한 6㎞ 자연속 산책로
간식 넣은 가방과 등산화·등산스틱 살뜰히 챙겨
물속길 걸을땐 작은 암석 밟으며 미끄러짐 주의
걷다 지치면 웅덩이서 ‘첨벙첨벙’ 피로가 ‘사르르’
시원한 물과 함께하다보면 어느새 ‘물’아일체
“와 얼음물 같다!” 등산객들은 시원한 물살을 반가워하면서도 등산스틱을 더듬이 삼아 조심조심 걷는다. 인제=강재훈 프리랜서 기자

햇볕 지글대는 뜨거운 나날이다. 이 뙤약볕을 피해 맑은 계곡에 발 담그면 어떨까. 뼛속까지 차가운 물살 가르며 걷는 경험, 여름에 이보다 큰 행복이 있을까? 가만히 있어도 더운 한여름, 강원 인제군 아침가리계곡으로 트레킹을 떠났다.

아침가리는 우리나라 계곡 트레킹 1번지로 꼽힌다. 이곳은 ‘삼둔사가리’라 부르는 강원도 오지 중 하나다. 오지 산행을 즐기는 이들 사이에선 오래전부터 숨은 성지로 통했다. 얼마나 깊은 산골인지 뜻도 ‘아침에 잠시 밭을 갈 정도만 해가 비치는 첩첩산중’이란다. 크고 작은 암석 사이로 맑은 물길이 6㎞ 넘게 이어지는 게 특징이다. 최근 계곡 트레킹이 새로운 레저문화로 자리 잡으면서 투명한 물빛과 무성한 원시림을 만나려는 발걸음이 끊이지 않는다.

이번 여정은 트레킹 전문 여행사 ‘승우여행사’가 기획했다. 거센 물살을 시원하게 헤쳐나가고 싶은 이에게 제격이다. 특히 무더위가 기승을 부리는 7∼9월이 아침가리 트레킹의 적기다. 예전엔 40∼60대 등산객이 주류였지만, 최근엔 20대나 70대도 이 계곡에 도전장을 내밀고 있다. 2006년부터 계곡 트레킹을 인솔한 베테랑 최재영 가이드가 선두에 섰다. 그는 참가자 20여명에게 등산 코스를 안내했다.

“인제군 기린면 방동약수터에서 조경동교까지는 산길을 걸어 올라갑니다. 그런 뒤에 아침가리계곡을 따라 쭉 내려올 겁니다. 오르막길에선 다들 험상궂은 표정을 짓지만 계곡물에 발을 담그면 금세 아기처럼 까르르 웃더라고요. 그 첫 순간을 위해 힘내서 가봅시다!”

등산화·등산스틱·가방을 살뜰히 챙겨온 참가자들이 산행을 시작했다. 특히 물속에서 중심을 잡고 수심도 확인해야 하기 때문에 등산스틱은 없어선 안된다. 가방엔 큰 비닐봉지를 먼저 넣고 그 안에 짐을 꾸리면 기본 방수가 된다. 최 가이드는 “아침가리계곡에서 꼭 챙겨야 할 건 고열량 간식”이라며 “중간에 가게도 없고 대여섯시간 산행으로 체력 소모가 크니 양갱·에너지바·사탕 같은 간식을 먹어야 한다”고 설명했다. 가벼운 여분 옷도 챙기면 하산 후 체온 유지에 도움이 된다고.

산을 오르는 길엔 짙은 녹음이 하늘을 가렸다. 이런 게 나무 터널일까 싶었다. 그래도 땀은 주르륵 흐르고 목구멍에선 단내가 올라온다. 여름은 여름이구나. 서울에서 온 이명희씨(66)는 “평소 등산은 자주 하는데 계곡 트레킹은 처음”이라며 “지인이 여름마다 간다길래 나도 궁금해져서 왔다”고 땀을 닦으며 말했다. 두어시간 걷자 다들 볼이 빨갛게 달아올랐다. 그때 반가운 물소리가 들려왔다. 조경동교다! 날아갈 듯이 발걸음이 빨라졌다.

“물이 참 맑고 투명하죠? 잘 보면 버들치 같은 민물고기도 헤엄친답니다. 이제 물속 길을 걸을 건데 물결 때문에 바닥을 분간하기 어려워요. 스틱을 더듬이 삼아 걷고, 큰 돌보단 작은 돌을 밟으며 이동하세요. 어두운 빛깔의 돌은 이끼가 껴 미끄러우니 조심하시고요.”

“와 얼음물 같다!” “이게 진짜 오아시스네!” 달아오른 발에 닿은 차가운 물은 그야말로 천연 냉찜질. 피로가 사르르 녹아내렸다. 친구 김순옥씨(61)와 함께 온 황순임씨(61)는 “아픈 무릎에 물이 마사지를 해준다”며 즐거워했다. 잊지 못할 짜릿한 첫 만남이다. 이제 물을 헤치며 아래로 내려갈 차례. 물살에 휩쓸려 제대로 걷기 힘들 때면 먼저 간 이가 길을 봐준다. 가파른 바윗길에선 최 가이드가 한쪽 발을 돌벽에 붙이고 “제 신발을 지지대 삼아 디디고 내려가면 된다”며 등산객들을 도왔다.

제법 깊은 웅덩이를 만나면 너도나도 풍덩 뛰어들어 물놀이를 즐긴다.
수심이 깊은 구간에선 가방이 젖지 않게 들고 이동한다. 이때 이끼가 낀 큰 바위는 밟지 않도록 주의한다.

물 만난 물고기가 이런 기분이었을까? 제법 깊은 웅덩이가 나오자 한 참가자가 ‘풍덩’ 뛰어들었다. 반짝이는 물보라가 일었다. 두 친구 김씨와 황씨는 서로 물을 뿌리며 장난을 치기 시작했다. 기분 좋은 시원함에 아이처럼 웃는 이도 많았다. 휴대전화가 젖을까 망설이던 기자도 못 참고 웅덩이로 향했다. 점점 차오르는 물에 솔직히 겁도 났다. 그때 천진난만한 웃음소리가 들렸고 ‘에라, 모르겠다’ 하고 몸을 담갔다. 뼛속까지 시원해 영원히 간직하고 싶은 ‘물’아일체의 순간이었다.

물속을 걷다 지치면 옆 돌길로 빠져 가다보니 어느새 코스의 끝이다. 세차던 물줄기는 폭이 넓어지고 물비늘도 곱게 일었다. 젖은 옷은 햇살에 뽀송하게 말랐다. 콧노래도 절로 나왔다. 이씨는 “이제야 알게 된 건데 나는 계곡 체질”이라며 “다음엔 가족과 함께 오고 싶다”고 소감을 전했다. 다른 참가자가 “큰일 났다”며 “이제 계곡에 맛 들였으니 매년 와야겠다”고 다짐하자 좌중에 폭소가 터졌다.

돌아가는 길에 묵묵히 걷던 최 가이드의 말이 귀에 꽂힌다. 그는 “등산은 정상이란 목적을 갖고 가지만 계곡 트레킹은 다르다”며 “물처럼 낮은 곳으로 내려가며 거친 여울부터 일렁이는 잔물결까지 다 돼보는 것”이라 얘기했다.

이번 여름휴가엔 자유로운 물이 돼 쏟아져 내리거나 느긋하게 흘러가보는 건 어떨까. 높은 정상을 향해 바쁘게 오르던 당신에게 새로운 쉼이 되어줄 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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