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원에선 앞으로 매일 저걸 보며 살아야한다고? [전국 인사이드]

김연수 2025. 8. 10. 07: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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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 창원시 대상공원 꼭대기에 40m 높이로 우뚝 솟아 있는 빅트리.ⓒ창원시 제공

경남 창원(성산·의창구) 토박이에게 “창원은 산이 무척 아름다운 도시”라고 말한 적 있다. 그는 고개를 갸우뚱했지만, 사실 창원의 산등성이는 의외로 경쾌하다. 불모산, 천주산과 같은 큰 산들이 도시를 너르게 감싸고, 그보다 아담한 산들은 저마다의 개성을 드러내며 조화를 이룬다. 크고 작은 산들이 펼쳐내는 비정형적인 능선은 바둑판처럼 구획된 계획도시의 딱딱함을 누그러뜨린다.

산세가 고운 창원에 최근 이질적인 구조물이 그 모습을 드러냈다. 완공을 앞둔 초대형 전망대 ‘빅트리’가 그것이다. 빅트리는 민간사업자가 도시공원 부지에 아파트 단지를 조성하는 대신, 공공에 기부채납하기로 한 대표 시설이다. 창원 성산구 도심 녹지인 대상공원 꼭대기에 40m 높이로 우뚝 솟아 있는 이 구조물은 멀리서 보면 마치 파놉티콘 감시탑 같다. 지역 언론이 공정률 90%를 넘긴 빅트리 외관을 소개하자, 시민들은 충격에 빠졌다. ‘빅트리(Big Tree)’라는 이름이 아니었다면 나무를 형상화한 것임을 알아차리기 어려울 만큼 조형물은 어설펐다. 조감도 속 빅트리는 제법 그럴듯했다. 줄기(몸통)를 닮은 하부 구조물은 섬세한 질감을 지녔고, 꼭대기에는 풍성한 인공 나무들이 드리워져 있었다. 그러나 막상 모습을 드러낸 실제 구조물은 뚱뚱한 원통 위에 쟁반을 얹어놓은 듯한 형태였다. 알록달록한 인공 나무들이 듬성듬성 놓여 있을 뿐이다.

높이 40m 빅트리는 도시의 조망을 단숨에 장악했다. 시민들은 앞으로 매일 그 콘크리트 구조물을 바라보며 살아가야 한다. 빅트리는 산세를 끊어내며 강한 존재감을 과시한다. 보행자의 조망권이 침해된다. 이제 빅트리를 보지 않으려면, 빅트리 위에 올라가는 방법밖에 없다. 창원은 위에서 아래를 내려다볼 때 그다지 인상적인 도시가 아니다. 정사각형의 바둑판 도심과 넓게 펼쳐진 산업단지를 굳이 전망대에 올라가서 봐야 하는 이유를 모르겠다. 창원은 오히려 아래에서 위를 바라볼 때 진가를 드러낸다. 탁 트인 시야에 펼쳐진 산세는 도시의 가장 아름다운 배경이다. 그 경쾌한 시야가 이제 홀로 우뚝 솟은 빅트리를 더욱 강조하는 조연이 되어버렸다.

크고 화려한 걸 세우는 것만으로는

지방 도시에서 초대형 건축물을 짓는 행위에는 종종 일종의 ‘자격지심’이 깔려 있다. 이 도시는 낙후되지 않았고, 촌동네가 아니라는 것을 증명해 보이고 싶은 욕망. 일단 시각적으로 압도하고 보는 식의 개발 논리가 작동하는 것이다. 빅트리 또한 지자체장 처지에서는 민간사업자가 기부채납하는 방식이니 세금 부담이 없는 매력적인 선택지였을 것이다. 하지만 그 공간에서 그 지역의 시민이 어떤 경험을 하게 될지에 대해서는 놀라울 만큼 무심하다. 지방행정의 시선은 시민이 아닌 외부 방문자를 향한다. 지역민의 일상보다는 외지인의 시선을 의식한 기획, 이를 ‘관광 유발 효과’ 같은 그럴듯한 말과 숫자로 포장하곤 하지만, 실제로 그 추정치를 충족한 사례를 나는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빅트리의 어설픈 외형은 단지 조형물 하나의 실패를 넘어 ‘랜드마크’라는 개념 그 자체를 다시 묻게 한다. 이렇게 한번 생각해보자. 만약 ‘빅트리’ 외관이 수려했다면 성공적인 건축물로 남을 수 있을까? 그렇지 않을 것이라고 본다. 처음에만 반짝 관심을 끌다가 애물단지 신세가 될 가능성이 농후하다. 외형은 달라도 비슷한 경험을 할 수 있는 건축물은 전국 곳곳에 널렸기 때문이다. 결국 문제는 모양이 아니다. 무언가 크고 화려한 것을 세우는 것만으로는 도시의 매력을 만들 수 없다. 그럴듯한 외관이 도시를 아름답게 만들지 않는다. 그 도시를 살아가는 사람들이 일상 속에서 겪는 다채로운 경험, 서로 얽히고 연결되는 관계, 그로부터 생겨나는 기억과 이야기가 곧 도시의 정체성이 된다. 물론 이러한 ‘보이지 않는 맥락’을 설계하고 기획하는 일은 무척 어렵다. 하지만 해야만 하는 일이다. 인구 유출이 심각한 지방 도시 처지에서 지역에 살고 있는 사람들이라도 잘 붙잡아둬야 할 것 아닌가. 돈을 들여 웅장한 무언가를 짓는 것이 아니라, 시민의 삶을 품을 수 있는 공간을 상상하는 일. 나는 그렇게 어려운 일에 골몰하는 자치단체장을 보고 싶다. ‘랜드마크’랑은 이제 좀 작별할 때도 됐다. 이미 방치된 애물을 처리하기도 버거우니 말이다.

김연수 (<경남도민일보> 기자)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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