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향만리] 동창이 밝았느냐 / 남구만
전체 맥락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본문 보기를 권장합니다.
조선 숙종 때 소론의 영수였던 남구만이 장희빈의 아들을 세자로 책봉하는 데 반대하다가 유배되었다.
유배지에서 남구만이 이 시조를 지었다는 비석이 있다.
동창이 밝았느냐는 농사가 나라의 기반이었던 시대에 근면 성실의 미덕을 강조한 시조다.
학창 시절 이 시조를 국어 교과서에서 처음 읽고 외면서 그 장면이 뇌리에 생생히 박혀 있어서 굳이 부모님이 부지런해라 근면 성실해라, 라는 말씀을 하지 않아도 게으름을 피워서는 안 될 것을 깨우치게 되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동창이 밝았느냐 / 남구만
동창이 밝았느냐 노고지리 우지진다/ 소 치는 아이는 상기 아니 일었느냐/ 재 너머 사래 긴 밭을 언제 갈려 하나니
『한국전통시 선집』 시조」(2025년, 세계전통시인협회 한국본부)
조선 숙종 때 소론의 영수였던 남구만이 장희빈의 아들을 세자로 책봉하는 데 반대하다가 유배되었다. 유배지에서 남구만이 이 시조를 지었다는 비석이 있다. 「동창이 밝았느냐」는 농사가 나라의 기반이었던 시대에 근면 성실의 미덕을 강조한 시조다. 학창 시절 이 시조를 국어 교과서에서 처음 읽고 외면서 그 장면이 뇌리에 생생히 박혀 있어서 굳이 부모님이 부지런해라 근면 성실해라, 라는 말씀을 하지 않아도 게으름을 피워서는 안 될 것을 깨우치게 되었다. 자연스러운 교훈을 담은 고시조 한 편이 가진 힘이다.
「동창이 밝았느냐」는 불과 세 개의 간결한 문장으로 할 말을 다 하고 있다. 메시지 전달이 자연스럽고, 호소력 있는 가락으로 설득력을 높인다. 무엇보다 주요 이미지들이 선명하여 장면이 생생하게 떠오른다. 초장 첫 구 동창이 밝았느냐, 가 눈길을 사로잡는다. 북창도 서창도 아닌 일출 쪽인 동창이 등장하면서 생기발랄한 분위기를 조성한다. 밝았느냐, 라고 묻는 것은 이제 일어날 때가 지났다는 말이다. 그래서 노고지리가 우짖는다고 일깨우고 있다. 하여 소 치는 아이는 상기 아니 일었느냐, 라고 다그친다. 재 너머 사래 긴 밭을 갈기 위해서는 좀 더 일찍 일어나야 하지 않겠느냐는 것이다. 동창, 노고지리, 아이, 재 너머 사래 긴 밭이 한 줄로 엮여서 그야말로「동창이 밝았느냐」는 근면성 환기와 더불어 아이를 사랑하는 부모의 마음이 정겹게 흐른다. 교훈을 담고 있지만 강요하는 태도가 아니다. 은근히 깨우치는 화법을 활용하고 있는 점이 눈길을 끈다.
문득 비슷한 내용의 시조가 생각난다.
샛별 지자 종다리 떴다 호미 메고 사립 나니/ 긴 수풀 찬 이슬에 베잠방이 다 젖는다/ 아이야 시절이 좋을손 옷이 젖다 관계하랴.
「동창이 밝았느냐」와 함께 읽으니 더 맛깔스럽다. 이 작품도 종다리 즉 노고지리가 등장하고 있다. 종다리가 떴을 때 호미를 메고 사립문을 나선다. 그 모습이 싱그럽게 느껴진다. 긴 수풀 찬 이슬에 베잠방이가 다 젖어도 크게 신경 쓰지 않는다. 일하러 가는 길이 마냥 즐겁기 때문이다. 시절이 좋은데 옷이 좀 젖는다고 그리 상관할 일이 아니었던 셈이다. 이렇듯 삶의 환희가 넘치는 시조다.
「동창이 밝았느냐」와 더불어「샛별 지자 종다리 떴다」를 여러 번 읽는 동안 행복함을 느낀다. 그 시절과는 딴판인 세상이지만, 기본적인 것은 별반 다르지 않다. 고시조 두 편에서 삶의 방향을 재점검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이정환(시조 시인)
Copyright © 대구일보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