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칼럼)전투중인데 지휘관이 적군 후방지휘부와 딜

국민의힘 전당대회를 앞두고 '찬탄파'와 '반탄파' 사이의 당권투쟁이 점입가경이다. 정권을 뺏긴 책임을 놓고 치열한 네탓 공방을 펼치더니 급기야 대구경북 합동연설회에선 지지자들끼리 고성을 주고 받았다. 남은 경선 기간 동안 제살 깎아먹는 집안 싸움을 얼마나 더 세게 벌일지 가늠하기 어렵다. 전당대회가 끝나더라도 심각한 후유증을 남길 수 밖에 없다. 정가에선 이 상태로 가다간 내년 6월 지방선거 전에 당이 쪼개질 것이란 전망도 내놓는다.
사실 이 시점에서 당의 정체성을 둘러싼 격돌은 일정 부분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 한바탕 굿판을 벌이지 않으면 정리되기 어려운 상황이 있었기 때문이다. 윤석열 정부가 출범한지 3년만에 정권을 내주는 과정에서 비상계엄 선포, 그리고 이어진 탄핵 정국 때 친윤과 비윤이 격렬한 찬반논쟁을 벌였다. 조기 대선을 치르면서 후보교체 파동도 겪었다. 갈등이 극에 달했는데, 아무런 푸닥거리없이 그냥 넘어갈 수는 없다.
여러 진통을 겪은 후 새 지도부가 들어서면 당이 정돈되고, 대여투쟁에 힘을 합칠 것으로 믿는다. 명색이 정통 보수의 맥을 잇는 정당이고 산전수전 다 겪은 107명의 현역 의원이 모인 곳인데 허무하게 무너질 리가 없다. 오랜 수난사에서 축적된 회복력을 발휘해 비온 뒤 땅이 굳듯 지방선거 국면에서 더 단단해질 수 있다. 지금의 당권투쟁이 지나가는 과정의 하나일 뿐이란 의미다.
그런데 도저히 일과성으로 치부할 수 없는 일이 최근 발생했다. 보수 정당의 진짜 민낯을 고스란히 까발렸다. 국민의힘 비대위원장을 겸하는 송언석 원내대표가 국회 본회의장에서 강훈식 대통령 비서실장과 주고받은 텔레그램 대화 내용이다. 송 원내대표는 광복절 특사에 포함되기를 희망하는 야당 정치인 명단을 보내면서 눈웃음을 짓는 이모티콘도 달았다. 강 실장은 '이게 다예요?'라고 묻는 등 고압적인 느낌을 풍겼다.
물론 과거 정부에서도 대통령 고유권한인 특별사면을 실시할 때 야당의 요구를 묻는 절차를 거쳤다. 정치인 사면은 국민통합 차원에서 이뤄지므로 여야가 비슷한 비율로 들어가야 하는 까닭이다. 그러나 이번 사면 거래 파동은 국민의힘 설명처럼 관행에 따른 것이라며 그냥 지나칠 수 없을 정도의 심각성이 있다.
첫째, 이재명 정부 출범 후 민주당 지도부는 위헌정당 해산 심판을 통해 국민의힘을 공중분해시키겠다고 위협하고 있다. 정청래 신임 대표는 아예 국민의힘을 야당으로 인정하지 못하겠다고 한다. 내란(비상계엄)에 대한 반성이 없으면 악수조차 않겠다고 하는 지경이다. 실제로 국회에선 윤석열 정부 때 거부권 행사된 법안들이 야당을 패싱한 채 속속 처리되는 중이다. 여권이 발족시킨 3개 특검의 경우 야당 국회의원에 대한 수사를 확대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당 대표격인 비대위원장이 대통령 비서실장과 막후 사면거래를 했다. 정권이 야당을 인정하지 않는 현 상황의 심각성을 제대로 느끼고 있는가.
둘째, 이번 일은 송 원내대표가 국회 본회의장에서 휴대폰을 통해 강 실장과 대화를 나누는 장면이 언론 카메라에 포착되면서 들통났다. 그런데 그날 본회의장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가. 민주당이 야당을 무시하고 방송법을 통과시키려하자 국민의힘이 합법적 의사진행 방해 수단인 필리버스트에 들어간 날이다. 원내대표가 소속 의원들을 독려해서 여당의 일방적인 법안처리 부당성을 국민에게 알리는 데 앞장서야 할 시간이었다. 전선에서 전투가 한창 벌어지고 있는데 아군 지휘관이 적군 후방 지휘부와 모종의 거래를 한 셈이다.
국민의힘 구성원이나 지지자들이 진짜 예의주시해야 할 장면은 합동연설회에서의 이전투구가 아니라 본회의장에서의 사면 거래다. 당권투쟁은 언제든 발생할 수 있는 일과성이고 그 후유증은 잘 봉합하면 된다. 그러나 당의 존립이 위태로운 상태에서도 가해를 하려는 상대방과 희희낙락하며 별 의미도 없는 거래를 했다는 건 본질의 문제다. 이런 정신상태를 뜯어 고치지 못할 바에야 차라리 해산하는 게 낫다.
송국건 정치평론가/송국건TV대표, 언론인
Copyright © 대구일보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