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아이들이 갑자기 한국말로 떼창을...고마워, 사자보이즈! [워킹맘의 생존육아]

이새봄 기자(lee.saebom@mk.co.kr) 2025. 8. 9. 19: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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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자보이즈[출처=넷플릭스]
“오늘 우리 여기 놀러 왔으니까 케이팝 데몬 헌터스 노래 들으면 안 돼요?”

미국에서 초등학교 2학년인 딸아이의 반 친구들이 집에 놀러 왔다. 간단히 스낵을 먹고 방에서 한창 신나게 놀던 아이들이 우르르 거실로 내려온다. 음악을 틀어놓고 신나게 댄스파티를 하고 싶어서다. 일전에 아이들이 놀러 왔을 때 학교에서 배우는 노래 중 신나는 리듬의 음악들과 테일러 스위프트 등 아이들이 좋아하는 가수들의 노래를 틀어주었더니 한참을 신나게 춤을 추고 놀았더랬다. 그 때의 기억이 좋았는지 또 노래를 틀고 춤을 추고 싶다는 흥 많은 소녀들이 귀여워 흔쾌히 요청을 수락하고 음악을 찾아보고 있었다. 그런데 참새같이 모여든 아이들이 하나같이 이야기하기를, 오늘은 자기들이 듣고 싶은 노래를 들어야겠단다. 바로 전 세계에서 돌풍을 일으키고 있는 애니메이션 ‘케이팝 데몬 헌터스(케데헌)’의 오리지널사운드 트랙이다. 우리가 한국인이니까, 특히 우리 집에 놀러 와서는 꼭 이 노래를 같이 듣고 싶다는 이야기에 덩달아 나도 신이 났다.

음악을 틀자마자 다섯명의 꼬마들이 집이 떠나가도록 노래를 따라 부를 때는 사실 전율이 느껴졌다. 지난 6월 공개된 이후부터 지금 까치 넷플릭스의 영화 부문 글로벌 1위 자리를 석권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뉴스를 통해 접하는 것 보다, 한국의 콘텐츠에 어린 외국 소녀들이 열광하는 모습을 직접 눈으로 보고 귀로 듣는 것은 너무나도 기분 좋은 경험이었다. 대부분의 노래 가사가 영어로 이뤄져 있으니 미국 아이들이 무리 없이 가사를 외울 수 있다고 하지만 중간중간 나오는 한국어 가사를 따라부르는 모습은 귀여우면서도 경이로웠다. ‘영원히 깨질 수 없는(Golden 가사)’,‘마시고 마셔봐도 성에 차지 않아(Soda Pop 가사)’ 같은 가사들을 어떻게 외우고 따라부르는지 신기한 노릇이다.

내친김에 댄스파티가 끝난 뒤 아이들에게 남자 주인공의 밴드 이름인 ‘사자보이즈’의 사자가 무슨 뜻인지 아냐고 물었다. 친구들은 망설임도 없이 “알아요, 사자는 Lion이잖아요!”라고 답을 했다. 딸아이가 옆에서 “엄마, 내가 이미 한참 전에 알려 줬지!”라며 눈을 흘긴다. 케데헌 덕분에 내 아이는 친구들 사이에서 꽤 인기 있는 한국어 선생님이 되었다.

사실 우리 아이들이 케데헌을 보게 된 것도 미국의 친구들 덕분이다. 아직 두 아이 모두 무서운 장면이 나오는 영상을 보기 힘들어하는 편이라 케데헌이 개봉했다는 소식을 듣고 난 후 함께 영화를 보자고 몇번을 권해도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기만 했다. 결국 아이들과 함께 감상하는 데 실패한 우리 부부는 아이들이 없을 때 둘이 케데헌을 시청했다. 그러고는 며칠이 지나서 학교에 다녀온 큰아이가 갑자기 “엄마, 나 케이팝 데몬 헌터스를 봐야겠어”라고 선언했다. 그날 반 친구 중 하나가 본인에게 와서 이 영화를 봤냐고 물어봤다는 것이다. 자기는 아직 영화를 안 봤다고 하니, 그 친구는 봇물터지 듯 “너희 나라가 계속 나오는데 정말 재미있다, 왜 영화를 보지 않았냐, 꼭 봐야한다”며 우리 아이를 설득했단다. 아직 한국에 가 본 적 없는 이 친구의 눈에는 영화속에서 나오는 한국 도시의 모습들도 신기해 보이는 모양이다. 케데헌 덕분에 서먹한 사이였던 그 친구와 딸아이는 매일같이 스티커를 교환하고 쉬는 시간 마다 수다를 떠는 가까운 사이가 되었다.

미국에 머무는 짧은 시간 동안 ‘K 컬쳐’의 위력을 느끼고 그 덕을 참 많이 보고 살았다. 한국의 본질과 정체성을 그대로 담은, ‘한국적인 것’ 자체로 세계를 끌어당기고 있는 K컬처의 매력이 글로벌 문화 트렌드를 선도하고 있다는 것을 해외에 나와서 더 피부로 느낀다. 해외 제작사와 자본이 투입되어 만들어졌기 때문에 파급력에 비해 이들이 거둬들인 이익이 결국 남의 주머니를 채운다는 이면이 존재하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금전적인 결실 이상으로 한국에 대한 호감과 관심이 높아지는 것은 분명 값진 일이다.

그나저나, 무서워서 ‘케데헌’을 보기 싫다던 우리 집의 한국 어린이들은 질리지도 않고 매일 밤 케데헌 OST 전곡 뮤직비디오를 감상하고 잠자리에 들고 있다. 우리 부부는 흐뭇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이렇게 자주 볼 줄 알았더라면 굳이 둘이서는 보지 말걸’ 하는 생각이 들 정도다. 미국 아이들도 이렇게 쉴 새 없이 음악을 들어서 한국어 가사까지 외운 거구나 싶어 피식 웃게 된다. 지겹게 들어줄게, 고맙다 사자보이즈, 고맙다 헌트릭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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