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은 못 밟았지만... ‘아폴로 13호’ 구한 선장 떠나다
침착하게 지구로 다시 귀환시켜
55년 전 달 착륙 직전에 발생한 산소탱크 폭발로 우주비행사 3명이 모두 숨질 위기에 빠진 아폴로 13호를 침착하게 지구로 다시 귀환시켰던 선장 짐 러벨(Lovell)이 8일 97세로 숨졌다고, 미 언론이 보도했다.
1970년 4월 13일 오후 2시7분(미 동부시간), 지구에서 약 32만 ㎞ 떨어진 우주에서 아폴로 13호는 미 텍사스주 휴스턴의 나사(미 항공우주국) 유인 우주관제센터로 무전을 보냈다. “휴스턴, 문제가 발생했다(Houston, We’ve had a problem).” 지구를 떠난 지 56시간, 달 착륙까지 5,6시간을 남긴 시점이었다.
우주 비행사들은 갑자기 폭발음을 들었고, 곧 산소ㆍ수소 탱크의 압력과 전압이 급격히 내려가는 것을 확인했다. 아폴로 13호는 우주비행사 3인이 탄 커맨드 모듈(command module)과 전력 공급 장치ㆍ산소 탱크ㆍ엔진 등이 있는 서비스 모듈, 달 착륙선인 루나 모듈로 구성돼 있었다.
나중에 밝혀졌지만, 서비스 모듈에 장착된 산소 탱크 내부의 전선이 처음부터 손상됐었다. 우주비행사들이 커맨드 모듈에 식수와 전기를 공급하려고 연료전지에 차가운 액체 산소를 주입하는 스위치를 켜자, 전선 절연체에 불이 붙어 탱크가 파열됐고 곧 우주로 떨어져 나갔다. 다른 탱크도 손상, 누출됐다.
아폴로 13호의 선장은 짐 러벨(당시 42세). 휴스턴 관제센터는 “다시 말해 달라”고 했고, 러벨은 앞서 동료 우주비행사 잭 스위거트가 한 말을 되풀이했다. 절제되고 차분한 목소리였지만, 3명의 탑승자 전원이 모두 죽을 수도 있는 ‘우주 참사’의 순간이었다.
이후 나흘 동안 전세계에서 수천만 명이 이들의 지구 귀환 노력을 초조하게 지켜봤다. 휴스턴 관제센터의 과학자들은 논의 끝에, 산소와 전기를 자체적으로 공급할 수 있는 달 착륙선(루나 모듈)으로 옮겨 타고 지구로 귀환하도록 지시했다.
그러나 이 모듈은 달에 착륙하는 2명이 최대 이틀간 사용할 수 있게 설계됐다. 또 지구 대기권 재진입시 발생하는 최대 2700도의 열(熱)을 막아주는 차폐장치도 없었다.
하지만, 다른 방도는 없었다. 3명은 커맨드 모듈의 예비용 전력과 산소공급을 끄고, 루나 모듈로 옮겨 탔다. 바로 U턴하는 것은 위험해, 달을 한 바퀴 돌면서 달의 중력을 이용해 지구로 방향을 트는 ‘중력 어시스트(gravity assist)’ 기동을 했다.
이후 3일 16시간 동안 3명은 루나 모듈에서 에너지 절약을 위해 조명과 난방을 끄고, 손을 비비며 영상 3도의 추위를 견뎠다. 또 탈수 현상을 막기 위해, 핫도그를 씹으며 수분을 보충했다.
아폴로 우주비행사들은 신형 전투기를 시험 조종하는 미 해군과 공군 베테랑들 중에서 선발된 최고 엘리트들이었고, 특히 선장 러벨은 이미 715 시간의 우주 비행 경험이 있었다.
러벨이 지구로 향하는 루나 모듈을 조종했고, 우주비행사들은 지구 대기권 진입 직전에야 ‘마지막 한 방’을 위해 그동안 스위치를 꺼 놓았던 커맨드 모듈로 옮겨 탔다. 나사(NASA)는 지구 착륙 6시간 반 전부터는 재가동할 커맨드 모듈의 각종 기능들을 분ㆍ초 단위로 순서를 정해 우주비행사들에게 알렸다.
러벨은 나중에 “처음엔 유성에 충돌해 우주선에 구멍이 났다고 생각해 곧 죽을 것으로 예상했지만, 그렇지 않다는 것을 확인한 뒤로는 집으로 돌아갈 궁리만 했다. 공포를 느낄 여유가 없었다”고 말했다.

4월 17일 오후 1시7분, 아폴로 13호의 커맨드 모듈은 태평양의 미국령 사모아에서 동남쪽 981㎞ 떨어진 바다에 착륙했다. 지구를 떠난 지 6일, 사고 발생 3일 16시간만이었다.
대기권에 재진입 시 우주선은 초속 7~8㎞로 대기와 마찰하면서 표면 온도가 수천 도로 올라가고 이로 인해 고온의 플라즈마 층을 형성한다. 이 플라즈마는 전파를 흡수ㆍ차단해 지상과 우주선 간 통신이 4분 가량 끊어진다.
그런데 ‘블랙아웃’이 아폴로 13호는 6분 12초나 됐다. 그래서 TV로 이들의 귀환을 지켜보던 수천만 명은 “오케이, 휴스턴, 우리는 집으로 가는 중이에요”라는 우주비행사 스위거트의 말이 들리기까지 이들이 죽었다고 생각했다.
당시 베트남 전쟁으로 국론이 분열됐던 미국 사회에 이들의 무사 귀환은 큰 희망이 됐다. 리처드 닉슨 대통령은 하와이로 날아가 대통령 자유훈장을 수여했다.

아폴로 13호의 무사 귀환은 1995년 톰 행크스가 러벨 선장을 맡은 같은 이름의 영화로도 제작 개봉됐다. 영화에선 긴박감을 더하기 위해, “Houston, we have a problem”이라는 현재형 시제를 썼다. “휴스턴, 우리 문제가 생겼어”란 표현은 당시 직장에서든 친구들 사이에서 유행어가 됐다고, 뉴욕타임스는 전했다.
러벨에게 아폴로 13호 탑승은 1968년 아폴로 8호에 이어 두번째였다. 아폴로 8호는 인류가 지구 저궤도를 넘어 달의 중력권에 들어간 최초의 우주선이었다.
아폴로 8호의 우주비행사들은 달 궤도를 열 번 돌면서 처음으로 달의 뒷면을 육안으로 봤고, 12월24일 네번째 달의 뒷면을 날 때에 멀리 지구가 떠오르자(Earthrise) 항법사였던 러벨은 동료 우주비행사 빌 앤더스에게 “빨리 카메라로 찍으라”고 말했다. 달에서 푸른 빛 지구가 떠오르는 모습이 처음으로 기록되는 순간이었다.

러벨은 “하나님이 빛을 낮이라 부르시고 어둠을 밤이라 부르시니라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 이는 첫째날이니라”라는 성경 창세기 1장 5절을 읽었다.
우주선이 달의 앞면으로 돌아왔을 때, 러벨은 무전으로 “알려드립니다. 산타클로스가 있습니다”라고 농담했다.
지구돋이(Earthrise) 사진이 전송되고 잠시 후, 달에서 38만4000㎞ 떨어진 휴스턴의 러벨 집 앞에 수십 명의 취재진을 뚫고 파란색 롤스로이스가 멈췄다. 차에서 내린 남성은 러벨의 아내 매릴린 거라치에게 별무늬로 포장된 선물 박스를 전달했다. 안에는 밍크 코트와 함께 “메리 크리스마스, 달에 있는 남자가 사랑을 담아”라고 쓰여 있었다. 나사(NASA)가 연출한 행사였다.
아내 매릴린은 고교 시절부터 러벨과 연인이었다. 아폴로 13호 사고 당시를 회상하며, 매릴린은 “그 4일 동안 나는 내가 아내인지, 과부인지 알 수 없었다”고 말했다. 매릴린은 2023년 숨졌다.
1995년 영화 ‘아폴로 13호’에 러벨은 지구로 귀환한 러벨(톰 행크스)을 맞는 이오지마 항모의 제독으로 카메오(cameo) 출연했다. 제작진은 영화의 멋을 더하기 위해 러벨에게 ‘제독’ 복장을 입으라고 했지만, 그는 “나는 해군 대령(captain)으로 퇴역했고, 앞으로도 대령일 것”이라며 자신의 해군 대령 제복을 입고 촬영했다.

그는 달에 두 번 갔고 지구돋이를 최초로 목격한 우주인이 됐지만, 끝내 달을 밟지 못했다. 아폴로 13호 사건 35년 뒤에 한 언론 인터뷰에서 “달에 착륙하지 못해 아쉬었지만, 전혀 다른 방향에서의 승리였다. 분명한 재앙으로부터 사람들을 안전하게 귀환시켰으니까”라고 말했다. BBC 방송은 “아폴로 13호는 나사 최대의 실패였지만, 최고의 순간이었다”고 평했다.
나사는 그의 죽음을 애도하며 “그가 보여준 낙관과 용기가 앞으로도 우주 탐사와 인류의 미래에 영감을 줄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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