짬뽕 먹기의 달인이면 오라… ‘고수의 맛’을 보여줄테니 [웃기는 짬뽕]
성남 고수짬뽕
수타 면과 냉장 숙성을 거친 ‘쫄깃함’
굵기가 제각각인 면발 발견하는 재미
그릇의 온도마저 신경쓴 디테일 고수
한 숟가락에 건더기와 짬뽕을 복기한다


사람의 손이 닿는다는 것. 수제 기술은 아직 우리 사회에서 대우를 받는 편이다. 기계가 아니기에 오히려 오차 가능성은 더 열려 있음에도 수제품에는 더 큰 가치를 부여한다. 과정에 담긴 정성과 노력을 인정하는 것이다.
인공지능(AI)이 침범할 수 없는 대표적인 영역이 음식이다. 어느 정도까지 흉내는 낼 수 있겠지만 사람의 손맛을 따라가는 건 무리다. 손맛에 담긴 정성은 기술로 대체할 수 없다. 빠르고 간편한 인스턴트 음식이 판을 치는 시대지만 인간은 본능적으로 손맛의 정성이 깃든 음식을 그리워하고 또 찾는다. 이 바쁜 세상에 손맛 따질 새가 어딨냐며 오늘도 라면으로 대충 끼니를 때우는 이들에게 이렇게 고한다. “웃기는 짬뽕이오.”


■오늘도 때린다 ‘손맛의 힘’
성남시 중원구의 ‘고수짬뽕’. 요즘 짬뽕 종류가 워낙 다양해진 탓에 처음 가게 이름만 보고 미나리과 한해살이풀 고수가 들어간 짬뽕이 등장한 건가 싶기도 했다. 하지만 이 집 상호명의 고수는 ‘무림의 고수(高手)’와 같은 맥락이다. 짬뽕과 고수라는 두 단어의 분위기가 잘 맞아떨어진다. 짬뽕명장이나 짬뽕장인보다는 짬뽕고수가 더 강렬하다.
이 집의 핵심은 수타 방식을 활용해 손으로 직접 면을 만든다는 점이다. 반죽 과정을 거쳐 24시간 냉장 숙성으로 마무리, 극강의 쫄깃함을 만들어 낸다. 요즘은 손칼국수라는 이름으로 칼국수집에서나 종종 경험할 뿐 중식당에서는 좀처럼 수타면을 찾아보기 어렵다. 밀가루 반죽을 수차례 치대고 때리고 또 늘이고 접는 일을 반복하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유명 셰프들이 TV에서 단 15분 만에 요리를 뚝딱 만들어내는 시대다. 빨리빨리 문화가 더 심해진 요즘 세상에 면을 만드는 데만 오랜 시간을 할애하는 것도 모자라 상당한 노동력까지 들인다는 건 굉장히 효율성이 떨어지는 일이다.

그러나 다행히도 아직 우리 사회는 손맛에 대한 기본적인 믿음이 있다. 울퉁불퉁한 면발을 보면 주방장이 반죽을 치대며 흘린 땀방울을 떠올리게 되고, 그 면발을 맛보면 왜 굳이 불편하고 고된 일을 자처했는지 이해하게 된다. 수타면의 장점이 쫄깃함이라지만, 사실 요즘 반죽 기계는 수타의 효과까지도 기술적으로 구현할 수 있다. 결국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게 하는 건 실제 면발의 탄력성보단 눈에 보이지 않는 주방장의 정성인 셈이다.

■디테일의 차이…고수는 고수
이 집 짬뽕은 사실상 면이 다 했다. 굵고 얇고 굵기가 제각각인 면발을 발견하는 재미도 쏠쏠하거니와 입 안에 들어간 온갖 면발이 한데 어우러져 동시에 다양한 식감을 내는 것도 먹는 즐거움을 높이는 요인이다. 쫄깃함은 말할 필요도 없다. 불향이 그득 배인 국물에 탱탱함이 살아 있는 면발이 잘 어우러지는 자체로 이미 짬뽕의 기본은 갖췄다.
인기 메뉴는 차돌짬뽕. 홍합을 사이드로 밀어내고 떡 하니 중앙 자리를 차지한 차돌박이가 수북이 쌓인 채 위용을 뽐낸다. 고기 양도 제법 많은 데다 특유의 고소함이 매콤한 국물과 절묘한 조화를 이룬다. 개인적으로 차돌박이와 짬뽕의 조합은 참치와 김밥 못지 않은 세기의 만남이라고 생각한다. 차돌짬뽕 아이디어를 최초로 낸 사람은 누구일지 궁금하다.
짬뽕 그릇을 만져보니 따뜻한 온기가 느껴진다. 알고 보니 이 집에서는 그릇이 식으면 맛이 떨어진다는 이유로 그릇을 50℃ 정도의 뜨거운 물에 미리 담아 놓는다고 한다. 주인장의 세심한 배려 덕에 먹는 동안 음식의 온도를 유지할 수 있다. 역시 디테일에서 갈린다. 고수는 고수다.

면을 어느 정도 먹고 난 뒤 유독 짬뽕 국물 빛이 영롱해 보일 때가 있다. 밥을 말아야 한다고 뇌에서 보내는 신호다. 면과 건더기를 싹 비우고 국물만 남은 상태로 밥을 말면 하수다. 볶음류 요리를 먹고 난 뒤 밥을 볶을 때도 고기 등의 메인 건더기 하나 없이 양념소스와 김가루에만 의존하면 살짝 심심해진다.
그래서 고수는 면과 건더기를 어느 정도 남겨 둔 상태에서 밥을 만다. 밥알을 비롯해 끊어진 면발과 아껴둔 홍합, 바닥에 깔려 있던 고기와 양파 등을 한 숟가락에 담고 찬찬히 오늘의 짬뽕을 복기한다. 자연스레 입가에 미소가 번진다.

/황성규 기자 homerun@kyeongin.com
Copyright © 경인일보 All rights reserved.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