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싱글 크뤼 바롤로’의 선구자 비에티 [최현태 기자의 와인홀릭]
‘이탈리아 와인의 왕’ 바롤로 11개 마을에 ‘싱글 크뤼’ 특급 포도밭 MGA 181개/비에티 1961년 최초 싱글 크뤼 바롤로 ‘로케 디 카스틸리오네’ 만들어/일반 바롤로도 싱글 크뤼 47개 파셀 섞는 ‘블렌딩 미학’ 선보여



프랑스 부르고뉴에는 특정 포도밭을 뜻하는 ‘끌리마(Climat)’ 또는 ‘리외디(lieu-dit)’라는 개념이 있습니다. 클리마는 부르고뉴에만 있으며 2015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됐습니다. 리외디는 알자스 등에도 있는 개념입니다. 부르고뉴 생산자들이 1000년이 넘는 시간동안 고유한 토양, 미세기후 등을 반영해 포도밭을 구별하고 이름을 붙인 것이 바로 끌리마랍니다. 따라서 끌리마를 모르면서 부르고뉴 와인을 제대로 안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합니다. 끌리마는 쉽게 말하면 싱글 빈야드, 싱글 크뤼와 비슷합니다.




바롤로의 MGA 지정은 2010년이지만 이미 오래전부터 싱글 크뤼 와인이 생산되고 있었습니다. 최초의 싱글 크뤼 바롤로는 1961년 생산된 로케 디 카스틸리오네(Rocche di Castiglione)로 바로 비에티의 첫 싱글 크뤼 바롤로입니다. 1950년대 말 비에티에 합류한 루치아나 비에티(Luciana Vietti)의 남편이자 양조학자, 와인메이커인 알프레도 쿠라도(Alfredo Currado)의 작품입니다. 비에티는 이후에도 싱글 크뤼 포도밭을 확장해 현재 모두 7개의 싱글 크뤼를 보유하고 있습니다. 바롤로 생산자중 이렇게 많은 싱글 크뤼를 보유한 와이너리는 비에티가 유일합니다. 7개 싱글 크뤼는 라 모라 마을의 브루나테(Brunate), 바롤로 마을과 라 모라 마을에 걸쳐 있는 체레퀘오(Cerequio), 카스틸리오네 팔레토 마을의 로케 디 카스틸리오네(Rocche di Castiglione)와 빌레로(Villero), 세라룽가 달바 마을의 라자리토(Lazzarito), 노벨로 마을의 라베라(Ravera), 베르두노 마을의 몬빌리에로(Monvigliero)입니다.


비에티의 일반 바롤로와 싱글 크뤼 바롤로 모두 와인양조 방식은 동일합니다. 싱글 크뤼 몬빌리에만 줄기를 제거 하지 않은 전체 송이를 조금 쓰고 나머지는 줄기를 제거합니다. 분쇄한 포도 70%, 포도송이 30% 비율로 발효합니다. 비에티는 바롤로를 만들 때 침용 과정에서 프리 마세라시옹(Pre maceration)과 포스트 마세라시옹(Post maceration) 양조기법을 사용합니다. “발효 전과 후에 두차례 포도 껍질과 함께 두는 침용 과정을 거칩니다. 프리 마세라시옹은 발효가 막 활발하게 일어나기 전 2~3일 정도 화이트는 섭씨 10~15도, 레드는 섭씨 18도에서 침용합니다. 이때 껍질에 있는 아로마, 색상이 먼저 추출됩니다. 안토시아닌, 휘발성이 높은 아로마는 알코올보다 물에서 더 추출이 잘 되기 때문에 당분이 알코올로 바뀌는 발효가 일어나기 전에 사전 침용 과정을 거쳐 아로마를 최대한 뽑아내는 거죠.”




전반적으로 비에티는 강건하고 파워풀한 바롤로를 만드는 생산자는 아니고 떼루아를 제대로 표현하려고 노력하는 와이너리입니다. 비에티 싱글 크뤼의 캐릭터에서 잘 드러납니다.
바롤로 서쪽에 있는 싱글 크뤼 브루나테(Brunate)와 체레퀴오(Cerequio)는 불과 500m 떨어져 있으며 토양도 이회토로 거의 비슷합니다. 수확시기도 같고 양조 방법도 같은 데 두 와인은 산도, 탄닌만 비슷할 뿐 아로마 캐리터는 큰 차이를 보입니다. 포도밭 페이스가 다르기 때문입니다. 브루나테는 남향, 체레퀴오는 남동향이며 모래 토양이 조금 더 많은 체레퀴오가 더 서늘한 기후를 띱니다. 주로 라 모라 마을에 있는 브루나테는 붉은 과실향이 주를 이루고 풍성하게 감싸주는 느낌과 균형감이 좋고, 바롤로와 라 모라에 걸쳐있는 체레퀴오는 무거운 검은 과일향이 더 지배적입니다. 부르고뉴 빌라주 와인과 비교한다면 부르나테는 화려하고 섬세한 여성 같은 샹볼 뮈지니, 체레퀴오는 근육질의 강인한 남성 같은 뉘생 조르주와 비슷합니다.


체레퀴오는 잘 익은 딸기, 플럼, 체리의 과일향, 말린 라즈베리와 크랜베리, 장미꽃향, 민트의 허브향, 시나몬의 스파이시한 노트가 잘 어우러집니다. 타르, 흙향 같은 숙성향도 잘 올라옵니다. 실크처럼 부드러운 질감이 매력적이고 잘 짜인 구조감이 돋보입니다. 체레퀴오는 바롤로에서도 유명하고 역사가 깊은 싱글 크뤼로 비에티는 0.8ha를 소유하고 있습니다.



브루나토, 체레퀴오에서 4km 정도 떨어진 바롤로 동쪽 싱글 크뤼 로케 디 카스틸리오네와 라자리토는 산맥으로 분리됩니다. 비에티 와이너리가 있는 카스틸리오네 팔레토 마을의 로케 디 카스틸리오네(Rocche di Castiglione)는 깎아지른 듯한 절벽 위에 공연장 객석처럼 굉장히 가파른 경사면에 포도밭이 있습니다. 로케는 바위란 뜻입니다. 토양은 모래 성분이 약 35% 섞인 이회토로 비에티의 싱글 크뤼중 가장 섬세한 스타일입니다. 포도밭이 남동향이기 때문입니다. 아침에 해가 떴을 때는 충분한 일조량을 확보하고 해가 금세 서쪽으로 이동하면서 따뜻한 온기는 있지만 절대로 과도하게 더워져 과숙되는 일은 없습니다. 딱 과일이 적당하게 익을 정도만 따뜻하고 또 알프스에서 서늘한 바람도 불어서 섬세한 풍미가 완성됩니다. 평균 수령 50년 이상 포도만 사용합니다. 잘 익은 검은 야생체리, 자두, 제비꽃 감초의 향신료와 타르도 느껴집니다.





노벨로 마을의 라베라는 바롤로 남쪽이라 가장 덥고 수확도 더 일찍 할 것 같지만 사실 비에티 다른 싱글 크뤼보다 3~4주 수확을 늦게 할 정도로 서늘한 지역입니다. 해발고도 450m로 비에티 싱글 크뤼에서 가장 높기 때문입니다. 고도가 높아 일년내내 알프스에서 시원한 바람이 불어옵니다. 과숙되지 않았는데도 농축된 과실 풍미와 부드러운 탄닌감을 지니고 밸런스가 굉장히 좋습니다. 비에티는 라베라 포도밭을 2ha 소유하고 있고 가장 오래된 수령은 약 90년에 달합니다.
“비에티가 1999년 라베라 포도밭을 살 때 주위에서 왜 하필 포도가 잘 익지도 않는 서늘하고 추운 지역에 투자하느냐 의아했어요. 하지만 요즘 글로벌 워밍 영향을 보면 당시 판단이 맞았죠. 라베라는 포도가 과숙되지 않는 서늘하고 신선한 기후로 이런 곳에서는 포도가 천천히 익으면서 복합미가 풍성해진답니다. 라베라는 풍미가 복합적이고 다층적입니다. 항상 오렌지 껍질 느낌 나고 말린 허브, 말린 장미향이 많이 납니다. 비에티 바롤로는 전반적으로 우아한데 라베라는 항상 계속 울림이 있어요. 여운이 계속 돌고 돌도 또 도는 느낌이죠.”




와인 레이블에 ‘바롤로’만 적혀있으면 보통 바롤로 전역의 포도를 섞어서 씁니다. 하지만 비에티는 싱글 크뤼가 아닌 일반 바롤로 카스틸리오네에도 싱글 크뤼 포도만 사용합니다. 특히 한 개의 싱글 크뤼도 구획별로 나눠서 양조합니다. 2020 빈티지 경우 27개 싱글 크뤼를 또 다시 47개 구획으로 쪼개서 발효한 뒤 블렌딩했을 정도입니다. “바롤로 카스틸리오네는 클래식 뮤직으로 따지면 심포니이고 싱글 크뤼 바롤로는 바이올린, 첼로의 솔로이스트 같은 느낌이에요. 바롤로 카스틸리오네는 비에티가 추구하는 클래식 바롤로, 정통성 있는 바롤로의 블렌딩 미학을 잘 보여줍니다. 포도밭을 47개 작은 파셀로 쪼개 블렌딩한다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에요. 양조팀들이 한 달에 한두번 블라인드로 테이스팅해서 최종 블렌딩을 결정합니다. 싱글 크뤼는 캐릭터가 잘 드러나는 카리스마 있고 바롤로 카스틸리오네는 복합미를 느끼는 매력이 있답니다.”

비에티 바르베라 다스티 라 크레나(Barbera d'Asti La Crena)는 비에티의 유일한 크뤼급 와인으로 니짜(Nizza) 아그리아노 테르메의 작은 마을 라 크레나의 바르베라 품종 100% 만듭니다. 잘 익은 라즈베리와 농축된 붉은 체리가 도드라지고 약간의 바닐리와 스파이시한 노트, 미네랄이 풍성합니다. 12주 동안 발효와 젖산발효를 거쳐 18개월 동안 프렌치 오크배럴과 대형 오크통에서 숙성(뉴오크 15%)합니다. 구조감과 숙성 잠재력이 뛰어납니다. 1932년 식재돼 90년이 넘은 올드 바인으로 만들어 깊이감도 남다릅니다. 토양은 이회토이며 표토층 30cm는 진흙과 라임스톤이 섞여있어 부싯돌 느낌의 미네랄이 도드라집니다. 산도가 너무 높지 않고 탄닌이 부드러우며 과일향 풍부합니다. 니짜 DOCG를 표기하지 않고 등급을 일부러 낮췄는데 소비자들에게 더 쉽고 친근하게 알려 주려고 그냥 바르베라 다스티로 표기했습니다.


19세기 말 카를로 비에티(Carlo Vietti)가 피에몬테의 중세 마을 카스틸리오네 팔레토(Castiglione Falletto) 언덕에 와이너리를 설립하면서 비엘티 역사가 시작됩니다. 기록에 따르면 비에티 가문은 이보다 훨씬 이전인 1600년대부터 카스틸리오네 팔레토에 정착해 거주했고 농작물을 재배하면서 와인을 조금씩 생산한 것으로 보입니다. 실제 셀러를 뒤져보면 1830년대 병입된 와인들이 발견됩니다. 1800년대에는 유리가 매우 비쌌을 텐데 병입까지 한 점으로 미뤄 아마 그때부터 조금씩 와인을 만들었을 것으로 짐작됩니다.
카를로의 아들 마리오 비에티(Mario Vietti)는 작은 농장으로 가족들이 먹고 살기 어렵다고 판단, 미국으로 이주해 매사추세츠 공과대학교(MIT)에서 엔지니어링 학위를 받고 사업가로 성공합니다. 고향인 카스틸리아노 팔레토 인근 유명한 바롤로 마을인 세라룽가 달바(Serralunga d’Alba) 출신 아내도 미국에서 만납니다. 마리오는 고향에 남아있는 동생이 1차 세계대전에 참전했다 전사하고 필록세라로 포도밭이 황폐화되자 미국 생활을 접고 1917년 고향으로 돌아와 다시 와이너리를 재건하기 시작합니다.


최현태 기자 htchoi@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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