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김세환 독립지사 외손, 윤고방 시인 “어머니의 기도로 이은 기억, ‘연구 없는 추모’는 공허”

유혜연 2025. 8. 9. 10:07
음성재생 설정 이동 통신망에서 음성 재생 시 데이터 요금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글자 수 10,000자 초과 시 일부만 음성으로 제공합니다.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김세환 지사의 일제강점기 당시 감시 대상 인물 카드. /국사편찬위원회 소장


노동요처럼 편물기 돌리는 소리가 방안을 가득 채우면 어린 윤고방은 어머니의 등을 봤다. 그 너머에는 예수와 외할아버지 김세환의 사진이 나란히 놓여 있었다. 고단한 삶의 무게를 기도로 버텨내던 어머니에게 액자 속 양복 차림의 외할아버지 김세환은 또 다른 기도 대상이었다.

“어머니는 단칸방에서 밤늦도록 ‘두루두루룩’ 소리를 내며 편물기를 돌리셨고, 저는 그 곁에서 잠이 들곤 했습니다. 편물기 옆 탁자에는 왼쪽에 예수님 사진, 오른쪽에 외할아버지 사진이 늘 있었죠. 어려울 때마다 어머니는 그 두 분을 향해 ‘아버님, 저를 보호하소서’라고 기도하셨습니다.”

윤고방 시인이 김세환 지사 서거 80주기를 맞아 양평군 국수리 자택 ‘고방 문학의집’에서 본지와 인터뷰를 진행하고 있다. 2025.8.7 /유혜연기자 pi@kyeongin.com


수원을 대표하는 독립운동가 김세환(1889~1945) 지사의 외손, 윤고방(78·윤창혁) 시인에게 외할아버지는 어머니의 기도를 통해 마음에 새겨진 존재다. 김세환 지사가 서거한 지 2년 뒤인 1947년 태어난 그에게 외할아버지에 대한 직접적인 기억은 없다.

하지만 대를 이어 전해진 이야기는 그의 예술 세계와 삶의 중심축이 됐다. 지난 7일 양평군 국수리에 위치한 자택 ‘고방 문학의 집’에서 만난 그는 외할아버지의 삶을 떠올리며 공공의 추모 방식에 대한 소회를 담담히 꺼내놓았다.

윤고방 시인이 들려준 어머니의 기억과 그 유산은 오늘날 지역 독립운동가를 기리는 방식이 충분한지 되짚어보게 했다.

기억은 딸의 손에서 시작돼 외손으로 이어졌다

윤고방 시인의 가족들이 외할아버지인 김세환 지사 묘소 앞에서 촬영한 가족 사진. 2025.8.7 /유혜연기자 pi@kyeongin.com

독립운동가 김세환 지사. ‘동방’이라는 호를 지닌 그는 1919년 3·1운동 당시 민족대표 48인 중 한 명으로 지역의 독립운동을 이끈 핵심 인물이었다. 그는 민족 교육에 헌신한 교육자이기도 했다. 삼일여학교(현 매향여중·고)의 기반을 닦았고, 수원상업강습소(현 수원고등학교)의 소장을 역임했다.

“일제가 삼일여학교를 폐교하고 군마 훈련을 위한 기마대 주둔지로 삼으려 하자, 직접 조선 총독을 찾아가 ‘이럴 수 있느냐’고 호통을 치며 막아섰다고 들었습니다. 결국 그런 여러 일로 얻은 화병이 깊어져 해방의 기쁨도 온전히 누리지 못하고 눈을 감으셨죠.” 윤고방 시인은 어머니에게서 전해 들은 일화를 떠올렸다.

김세환 지사는 해방 이후 1963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받았다. 이 역사의 명맥을 붙잡은 건 다름 아닌 김세환 지사의 막내딸, 윤고방 시인의 어머니 김정주(1925~2002) 여사였다. 1남 3녀 중 막내아들이었던 김주흔씨가 1980년대 미국으로 이민을 가는 등 다른 형제들이 현실적인 이유로 나서지 못하는 사이, 그 책임을 김정주 여사가 짊어졌다.

윤고방 시인의 어머니이자, 김세환 지사의 막내딸 김정주 여사가 간직해온 ‘김세환 의사 약사(略史)’. 2025.8.7 /유혜연기자 pi@kyeongin.com


그는 한국전쟁 중 남편과 사별한 뒤 어려운 형편 속에서도 직접 자료를 모아 ‘김세환 의사 약사(略史)’라는 귀중한 기록물을 간직해왔고, 1960년대에는 수원에 있던 아버지의 묘를 수습해 국립묘지에 안장하는 절차를 주도했다. 윤고방 시인은 “막내딸이 부모에 대한 정이 제일 깊었다”며 어머니의 헌신을 회고했다.

시와 그림으로 새긴 외할아버지의 역사

윤고방 시인이 2017년 중앙아시아를 방문해 고려인 강제이주 80주년를 맞아 현장에서 직접 그린 기행 화첩을 설명하고 있다. 2025.8.7 /유혜연기자 pi@kyeongin.com

모계로부터 이어진 기억은 아들에게로 계승됐다. 국어 교사로 40여 년간 재직한 뒤, 현재 시인이자 화가로 활동하고 있는 윤고방 시인은 자신의 예술 세계가 외할아버지의 삶과 깊이 연결되어 있다고 말한다.

양평군의 자택 ‘고방 문학의집’은 그의 작업실이자 역사를 사유하는 공간이다. 그가 현장에서 그린 그림을 기록한 화첩에는 백두산 천지부터, 일제강점기였던 1937년 소련에 의해 중앙아시아로 강제 이주된 고려인들의 흔적까지 민족의 아픔이 서린 풍경들이 가득했다.

“독립운동과 관련한 작품이 있는 건 아무래도 외할아버님을 마음속에 품고 사니까 그랬을 가능성이 높죠. 일제강점기 역사에 대한 남다른 문제의식이나, 일제를 향한 분노가 깊을 수밖에 없고요.”

그는 조상을 자랑스레 내세우는 것을 “푼수 취급받는 일”이라며 겸허히 경계하면서도 예술을 통해 외할아버지의 정신을 잇는다. 그에게 예술은 역사를 마주하며 자신의 정체성을 탐색하는 과정인 동시에, 침묵을 강요당했던 이들의 삶을 현재로 되살려내는 방식으로 보였다.

양평군 국수리의 ‘고방 문학의집’. 윤고방 시인의 회화 작품들이 전시돼 있다. 2025.8.7 /유혜연기자 pi@kyeongin.com

‘반쪽의 대접’ 외손이 마주한 현실의 벽

하지만 모계를 통해 이어진 헌신적인 노력에도 불구하고 외손이라는 신분 탓에 한때 장벽을 마주하기도 했다. 윤고방 시인은 이를 ‘반쪽의 대접’이라는 말로 표현한다. 특히 그는 시 ‘외손자의 반쪽 편지’를 통해 외손이라는 정체성에서 비롯한 복합적인 감정을 표현하기도 했다.

“친손자가 드렸다면 온전한 편지가 됐겠지만, 외손이기에 반쪽 편지일 수밖에 없습니다. 성도 따를 수 없으니 아무리 외가 쪽에 마음이 기울어도 온전히 쏠릴 수가 없어요.”

윤고방 시인이 김세환 지사 서거 80주기를 맞아 양평군 국수리 자택 ‘고방 문학의집’에서 본지와 인터뷰를 진행하고 있다. 2025.8.7 /유혜연기자 pi@kyeongin.com


이런 정서적 소외감은 윤고방 시인이 기억하는 현실적인 어려움으로도 이어졌다. 그는 “독립유공자 후손에게 주어지는 보훈 지원이 당시 장자였던 외삼촌에게 돌아갔지만, 1980년대에 외삼촌이 미국으로 이민 가면서 빈 상태로 남게 됐다”고 회고했다.

이어 “당시 보훈처에 알아보니 ‘연락이 안 되니 우리로서는 방법이 없다’는 말을 들었다”고 덧붙였다.

기억을 지키는 역할이 가족에게 있지만, 실질적인 인정과 지원은 오랜 기간 ‘부계 혈통’이라는 틀에 막혀 닿지 않았던 현실을 보여준다. 2008년 호주제 폐지 이전까지는 독립운동가 후손에 대한 사회·제도적 인식이 ‘친손 중심’으로 기울어 있던 것도 사실이다.

김세환을 기린다는 말… “연구가 빠지면 공허하다”

윤고방 시인이 김세환 지사 서거 80주기를 맞아 양평군 국수리 자택 ‘고방 문학의집’에서 본지와 인터뷰를 진행하고 있다. 2025.8.7 /유혜연기자 pi@kyeongin.com

한 가족의 힘으로 간신히 이어온 기억은 공공에서 이뤄지는 추모 사업 앞에서 또 다른 벽에 부딪혔다. 지역사를 계승하는 일은 지자체의 중요한 책무지만 여전히 많은 사업이 기념일 중심의 일회성 행사로 기획된다.

수원시는 올해 광복·김세환 지사 서거 80주기를 맞아 그의 삶을 조명하는 특별기획전 ‘다시 만난 민족대표 김세환’을 오는 15일부터 연다. 같은 시기, 김세환 지사를 본격적으로 다룬 첫 평전도 출간된다.

지금까지 김세환 지사를 다룬 학술 논문은 단 한 편도 없었고 체계적인 연구 역시 전무했다. 그만큼 평전은 의미 있는 시도였지만, 기획 단계에서 공공 기념사업과 연구가 별개로 진행되면서 두 작업은 연결되지 못했다.

양평군 국수리의 ‘고방 문학의집’. 윤고방 시인의 시, 회화 작품들과 수상 당시 사진 등이 전시돼 있다. 2025.8.7 /유혜연기자 pi@kyeongin.com


윤고방 시인은 “추모 행사는 연구를 통해 입증된 객관적 업적 위에서 이뤄져야 한다”고 운을 뗐다. 이어 “그런 점에서 평전은 행사의 ‘동력이자 원천’이 될 수 있었는데, 두 노력이 서로를 비추지 못한 점이 안타깝다”고 덧붙였다.

‘동방 김세환 평전’을 집필한 박환 수원대 사학과 명예교수의 소회도 맥을 같이한다. 박환 교수는 “한 강연을 준비하다 김세환 지사에 대한 연구가 전무하다는 사실을 알고 역사가로서 책무감을 느꼈다”며 “학술 서적, 특히 지역 인물에 대한 연구는 시장 논리에서 밀려나 출판이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상업성을 떠나 반드시 기록되어야 할 역사라고 생각해 자비를 들여 집필에 임했다. 공공의 관심과 지원이 필요한 분야”라고 전했다.

윤고방 시인이 시집 ‘노래하는 벽’에 실린 ‘외손자의 반쪽 편지’를 설명하고 있다. 외할아버지 김세환 지사를 떠올리며 쓴 시다. 2025.8.7 /유혜연기자 pi@kyeongin.com


광복 80주년을 맞아 전국적으로 기념행사가 이어지는 가운데, 정작 지역 독립운동가들의 삶을 깊이 들여다보는 연구는 드물다. 공공의 관심이 미처 닿지 못한 틈에서, 그 정신을 계승하는 노력은 민간에 의해 가까스로 이어지고 있었다.

수원시는 김세환 지사를 비롯한 지역 독립운동사에 대한 정리와 연구 지원 필요성에 공감하며 관련 방안을 검토 중이다. 수원시 측은 “그동안 수원시는 수원학연구센터를 통해 지역 독립운동사 복원에 힘써 왔으며, 앞으로도 유족·연구자 등과의 소통을 통해 관련 연구와 기념 사업이 보다 유기적으로 이어질 수 있도록 정책적 방안을 고민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윤고방 시인이 화첩을 보여주며 작품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2025.8.7 /유혜연기자 pi@kyeongin.com


/유혜연 기자 pi@kyeongin.com

Copyright © 경인일보 All rights reserved.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