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향기]한국 경찰의 필리핀 버전 ‘수사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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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리핀 한인타운에 있는 한 부동산.
필리핀 최악의 무법지대로 꼽히는 앙헬레스에 최초로 파견됐던 저자가 2015∼2017년 그곳에서 일어난 크고 작은 사건들을 기록한 책이다.
이처럼 이 책에선 한국과는 사뭇 다른 필리핀의 법체계도 엿볼 수 있다.
경찰 활동을 보조하는 일반인들인데, 사건 발생 시 경찰이 보유한 총기를 소지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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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인-납치-도박 강력 범죄 수사
◇악은 성실하다/이지훈 지음/320쪽·1만8000원·다산책방

2022, 2023년 디즈니플러스 등에서 방영돼 인기를 모은 드라마 ‘카지노’의 한 장면이다. 드라마의 핵심 줄기인 이 사건은 2015년 9월 실제로 필리핀에서 벌어졌던 청부살인 사건에서 모티브를 얻었다. 제작진은 극 중 오 경감처럼 실제 코리안데스크로 일했던 이 책의 저자에게 자문했다. 필리핀 최악의 무법지대로 꼽히는 앙헬레스에 최초로 파견됐던 저자가 2015∼2017년 그곳에서 일어난 크고 작은 사건들을 기록한 책이다.
저자가 파견 뒤 처음 현지 경찰과 협력해 잡은 이는 한국에서 강간을 저지르고 앙헬레스로 도피한 적색수배자였다. 진짜 문제는 체포한 이후였다. 수배자로부터 “너는 내가 꼭 지옥에 보낼 거다”라는 문자가 날아왔다. 필리핀 비쿠탄수용소에선 수형자가 휴대전화를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던 탓이다.
이처럼 이 책에선 한국과는 사뭇 다른 필리핀의 법체계도 엿볼 수 있다. 일례로 필리핀엔 ‘에이전트’라는 제도가 있다. 경찰 활동을 보조하는 일반인들인데, 사건 발생 시 경찰이 보유한 총기를 소지할 수 있다. 또 검거 작전 중에는 눈과 입이 뚫린 검은색 복면을 쓴다. 얼굴을 기억한 범죄자들에 의해 보복당한 사례가 적지 않기 때문이다.
생각지도 못한 범죄들도 있다. 한 교민은 모르는 사람으로부터 “당신을 죽이란 청부살인 의뢰를 받았다”는 문자를 받았다. “돈을 많이 주면 그 의뢰를 실행하지 않겠다”는 제안도 붙어 있었다. 점심을 먹다가도 총에 맞아 죽을 수 있는 앙헬레스에서는 청부살인 시도를 위장한 피싱 범죄 탓에 잠들지 못하는 이들이 많다고 한다.
이런 환경에서 저자는 고군분투했다. 살인, 납치, 불법 도박 등을 ‘성실하게’ 자행하는 악인들을 마주하며 저자는 매일 밤 ‘무사할 수 있을지’를 고민했다. 문체는 다소 거칠지만 “범죄자들이 사라지고 싶을 때 사라지게 둬서는 안 된다”는 의지만큼은 잘 전해진다.
김태언 기자 bebor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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