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선희 기자의 따끈따끈한 책장]신랄한 혹평을 견디고 명작이 된 고전작품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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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능 빼고는 모든 것이 엿보이는 작품."
어떤 책이 이런 리뷰를 받았을까.
같은 책에 대해 스코틀랜드 한 잡지는 "이 책을 읽고 위안 삼을 수 있는 유일한 점은 이 책이 절대로 대중적으로 읽히지 않을 것이란 사실이다"라고 평하기도 했다.
그것이 이제 책장에 쌓인 먼지만큼의 영향력도 없다는 사실을 상기하는 건 삶에 위로가 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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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단의 혹평에도 명작으로 남아

어떤 책이 이런 리뷰를 받았을까. 문학비평가 도미니크 보나의 표현을 빌리자면 사실상 ‘책의 살해를 시도한다’고 봐도 될, 이 가혹한 리뷰는 프랑스의 ‘르 뷜탱 드 파리’가 공쿠르상 수상작이자 전후 프랑스에서 가장 많이 팔린 책 중 하나인 로맹 가리 ‘하늘의 뿌리’에 대해 썼던 평이다. 여기 합세해 ‘프랑스 디망슈’도 이렇게 거든다. “끝까지 읽으려면 똑같은 생각, 매우 단순한 똑같은 주제의 집요한 반복이 주는 피곤함을 이겨낼 수 있어야 한다.”
책과 리뷰는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다. 사물과 그림자처럼, 책이 있으면 으레 비평이 따라온다. 책장에 꽂힌 책엔 저마다 다른 ‘리뷰라는 그림자’가 있는 셈이다. 재밌는 건 어떤 비평은 그 창의적인 신랄함, 너무하다 싶은 융단폭격으로 가늘지만 긴 생명력을 갖는다는 점이다.
비평가들의 십자포화를 받은 것으로 치면 ‘도리언 그레이의 초상’을 쓴 오스카 와일드를 빼놓을 수 없다. 그는 “평론가란 예술을 죽이고 살아남는 좀비들”이라고 말한 적이 있다. 그에게 쏟아졌던 조롱과 비난(“왜 오스카 와일드는 쓰레기 더미를 뒤지는가?” “저속한 프랑스 데카당트를 재잘거리는 학자”)을 보다 보면, 좀비란 표현도 점잖게 느껴진다.
“이런 걸 열두 챕터 이상 쓰고 자살하지 않았다는 게 놀랍다”처럼 끔찍한 혹평도 있다. 에밀리 브론테 ‘폭풍의 언덕’에 대해 당시 미국 여성 월간지가 실었던 비평이다. 같은 책에 대해 스코틀랜드 한 잡지는 “이 책을 읽고 위안 삼을 수 있는 유일한 점은 이 책이 절대로 대중적으로 읽히지 않을 것이란 사실이다”라고 평하기도 했다. 이쯤 되면 창작자에게 가장 필요한 건 예술혼이 아니라 강철 같은 멘털이 아닌가 싶어진다.
어떤 비평은 마치 누가 더 기발한 표현으로 창작자의 의욕을 꺾고, 그들을 더 깊은 비탄과 수렁 속에 빠뜨릴 것인가 내기하는 것만 같다. 20세기 영문학 걸작으로 꼽히는 스콧 피츠제럴드의 ‘위대한 개츠비’에 대해 댈러스 모닝 뉴스는 “로켓처럼 몇 개의 찬란한 불꽃을 터뜨리고는 이제 연기와 불꽃 잔해만 남긴 채 꺼져버렸다”며 작가와 작품을 일타쌍피로 보내버린다. “쓰레기 더미 중에서도 최악”(제임스 조이스 ‘율리시스’), “미친 영어 때문에 망가진 책”(허먼 멜빌 ‘모비딕’) 같은 비평에도 작품에 대한 진지한 적의가 잘 드러난다.
그런데 역설적인 건 이런 혹평이 오랜 생명력을 갖고 여전히 인용되는 이유가 혹평의 재치나 신랄함을 무색하게 하는 비평 대상의 눈부신 성공 때문이다. 이처럼 벼르고 벼른 촌철살인이 책을 가루로 만들기 위해 날아간 곳에는 아무것도 없다. 이 작품들은 당대 평단의 공격과 무관하게 고전의 반열에 올라갔다.
명작에 쏟아졌던 역사적 조롱을 찾아보는 게 재밌는 건 이런 이유 때문이다. 기발한 혹평은 그 자체로도 인상적이지만, 궁극적으로 ‘무엇이 승리하는가’에 대한 인사이트를 준다. 오해나 억측, 비난에 마음이 심란할 때면 책장 앞에 한 번 서 보기를 권한다. 불멸의 옷을 입은 수많은 명작이 받았던 현란한 비난과 조롱. 그것이 이제 책장에 쌓인 먼지만큼의 영향력도 없다는 사실을 상기하는 건 삶에 위로가 되지 않을까. 우리 모두의 인생은 다 고유한 명작이니까 말이다.
박선희 기자 teller@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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