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서지고 조각난 뼈…고통으로 피워낸 생명의 꽃
![X-선 필름을 오려 붙여 치유와 생명의 꽃을 피운 한기창의 ‘뢴트겐의 정원’. [사진 오매갤러리]](https://img2.daumcdn.net/thumb/R658x0.q70/?fname=https://t1.daumcdn.net/news/202508/09/joongangsunday/20250809003820130wfqp.jpg)
전시명에 쓰인 ‘뢴트겐’은 우리가 X-선이라 부르는 바로 그 의료 광선을 말한다. 독일의 물리학자 빌헬름 콘라트 뢴트겐은 1895년 파장이 짧은 전자기파를 발견했고, 그 업적으로 1901년 노벨물리학상을 받았다. 실험과정에서 뢴트겐은 원인을 규명할 수 없다는 뜻에서 임시로 X-선이라는 이름을 붙였고, 훗날 사람들은 이 새로운 광선을 ‘뢴트겐 광선’ 또는 ‘X-선’이라 부르게 됐다.
현재 추계예술대학교 미술창작학부 교수로 재직 중인 한기창 작가는 ‘X선 아티스트’로 알려져 있다. 그의 캔버스와 붓이 바로 X-선 필름이기 때문이다. 캔버스마다 유려하게 피어난 꽃과 식물들을 가까이서 자세히 들여다보면 손가락, 척추, 바스라진 뼈 사진들임을 발견할 수 있다. 모두 작가가 병원에서 구한 X-선 필름을 오리고 붙여 꽃과 봉오리, 줄기와 잎을 만든 것이다.
그가 X-선 필름이라는 독특한 재료를 이용해 자연을 형상화하게 된 것은 1993년 불의의 교통사고로 생사를 넘나든 경험을 했기 때문이다. 눈길을 운전하다 충돌사고를 당한 그는 전신을 깁스한 채 1년 넘게 중환자실에서 지내면서 7번의 대수술을 받았다. 온몸이 절단 난 자신의 X-선 필름을 받아 든 순간 그는 극심한 절망감을 느꼈지만, 병원의 다른 환자들이 X-선을 찍으며 삶과 생명의 염원을 버리지 않는 모습을 보면서 절망과 희망이 공존하는 이 특별한 필름에 주목하게 됐다고 한다.
이후 그는 상처와 죽음을 떠올리게 하는 X-선 필름을 이용해 치유와 생명의 꽃을 피우는 정원을 형상화하기 시작했고 한국화 장르의 새로운 화조화(花鳥畵)를 창조했다. “검은색 필름에 나타나는 명암의 단계적 변화가 한국화에서 사용하는 먹의 농담과 비슷하게 느껴졌다”는 게 작가의 말이다.
특히 이번 개인전에서는 X-선 필름의 새로운 파트너로 전통 재료인 자개를 활용한 것이 눈에 띈다. 이번 전시를 기획한 김윤섭 미술평론가는 “그동안 한기창 작가가 애용해 온 X-선 필름이 차가운 음영으로 작가적 내면의 언어를 대변했다면, 이번에 채색 물감 대신 자개를 사용하면서 상처 너머의 삶이 지향해온 환희와 기쁨을 시각화한 듯하다”고 평했다. 관람은 무료.
서정민 기자 meantre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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