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산당 정책방향 읽는 감각 탁월, 수익 공유로 애사심 키워
[한우덕의 차이나 워치] ‘화웨이 제국’ 일군 처신의 달인 런정페이
![지난 1월 베이징 민영기업가 좌담회에서 화웨이 CEO 런정페이(왼쪽 세 번째·아래 사진)가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악수하고 있다. 화웨이는 170여개 나라에서 사업을 펼치고 있다. [신화=연합뉴스]](https://img3.daumcdn.net/thumb/R658x0.q70/?fname=https://t1.daumcdn.net/news/202508/09/joongangsunday/20250809000337808ysqg.jpg)
타격이 없었던 건 아니다. 2024년 화웨이의 비(非)중국 지역 매출액은 거의 정체 수준이었다. 그러나 중국 내 사업이 호황이었다. 빅데이터·AI(인공지능) 등 정보 혁명이 거세게 일면서 화웨이의 활동 공간은 더 넓어지고 있다. 내수 덕택에 작년 전체 매출은 오히려 전년 대비 22.4%나 늘었다. 도대체 화웨이는 어떤 기업인가? 다시 제기되는 문제다. 중국의 하이테크 굴기가 위세를 떨칠수록 궁금증은 더 커진다.
◆런정페이(任正非)는 누구?=중국은 지난 1978년 3월 베이징에서 제1회 전국과학대회를 연다. 덩샤오핑이 기획한 행사였다. 전국에서 6000여 명의 과학자가 참석했다. 이 대회 최연소 참석자가 바로 훗날 화웨이 창업자 런정페이였다(당시 33세).

런정페이를 ‘군인 출신의 공산당 당원’ 정도라고 생각했다면, 오산이다. 그는 과학적 지식이 뛰어난 기술자이자 발명가였다. 이데올로기를 강조하는 관리자라기보다는 실사구시형 행동가에 가까웠다. 화웨이가 전체 매출의 10% 이상을 연구개발(R&D)에 투자하는 건 이런 성향을 반영한다.
◆화웨이의 진짜 주인은=화웨이는 지분 구조가 ‘1+N’ 형태라고 말한다. 2024년 12월 31일 현재 런정페이가 지분 0.65%를 갖고 있고, 나머지 99.35%는 공회(工會·노동자 조직)가 갖고 있다. 공회는 지분을 다시 종업원에게 분배한다. 지난해 말 현재 약 16만 명의 직원이 주식을 나눠 갖고 있다.
![런정페이가 개발한 ‘기구(氣球) 압력 평형기’ 소개 책자. [중앙포토]](https://img2.daumcdn.net/thumb/R658x0.q70/?fname=https://t1.daumcdn.net/news/202508/09/joongangsunday/20250809000340330jheh.jpg)
화웨이는 2024 회계연도에 주당 1.41위안의 배당을 결정했다. 종업원 1인당 평균 약 48만 위안(약 9000만원)의 배당금을 챙길 수 있게 됐다. 화웨이는 이 제도가 직원의 애사심을 높이고, 안정적인 경영을 할 수 있게 해준다고 말한다. 어쨌든 화웨이 종업원은 ‘성장의 수익은 나누되 경영에는 참여할 수 없는 존재’다.
◆최고 결정권자는 누구=회사 리더십을 구성하고 있는 3개 직위를 주목해야 한다. 이사회 의장(董事長), 순환 회장, CEO(總裁) 등이 그것이다. 이사회 의장은 대외적으로 화웨이를 대표한다. 현재 량화(梁華)가 맡고 있다. 그는 회사의 경영 전략 수립 과정에서 의견은 내지만, 직접 경영 활동에 개입하지는 않는다. 상징적 성격이 짙다.

런정페이는 직제상 3번째로 등장한다. 직책은 ‘종차이(總裁)’, 우리 식으로 CEO다. 일상 경영 활동을 총괄한다. 서열 세 번째지만 그는 회사 주요 사안에 대한 사실상의 최고 결정권을 갖는다. 인수합병(M&A), 대형 투자 등 이사회의 핵심 결정 과정에서 유일하게 ‘거부권’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화웨이 경영의 사실상 최고 의사 결정권자는 런정페이인 셈이다.
◆공산당과는 어떤 관계=많은 서방 전문가들은 화웨이가 사실상 공산당의 지배하에 있다고 주장한다. 그들은 그 근거로 화웨이에 설립된 당 위원회를 지목한다.
화웨이를 오랫동안 관찰한 워싱턴포스트 기자 에바 더우는 최근 국내에 번역 출판된 책 『화웨이 쇼크』에서 “당 위원회는 2006년부터 간부의 임명을 거부하거나(거부권), 해고할 수 있는 권한(탄핵권)을 보유했다”며 “최고 경영진도 때로 당 위원회에 불려가 자아비판을 해야 했다”고 말했다. 당 위원회는 인사뿐만 아니라 주요 경영 전략 결정 과정에도 개입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회사 내 또 다른 명령 체계가 존재한다는 얘기다. 화웨이가 실질적인 국유기업이라는 주장이 제기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러나 국유기업으로 분류하기는 어렵다는 게 중론이다. 런정페이는 지난 1987년 광둥성 선전에서 5명의 투자자와 함께 회사를 설립했다. 그러나 얼마 되지 않아 이들과 경영 방침을 놓고 격하게 대립했고, 법정 다툼을 통해 결별해야 했다. 런정페이는 회사 지분을 모두 회수하는 데 10여 년이 걸렸다고 말하고 있다. 국가 자금이 들어올 틈이 없다는 얘기다.
국유 통신기업인 ZTE와의 관계도 화웨이가 민영기업임을 시사한다. 둘은 경쟁 관계를 넘어 철천지원수였다. 에바 더우는 “화웨이와 ZTE의 싸움은 사실상 전쟁이었다”라고 밝히고 있다. 서로 지식재산권을 침해했다며 세계 곳곳에서 법정 다툼을 벌이기도 했다. 화웨이가 국유기업이었다면 벌어지지 않았을 일이다.
◆정부와의 밀착 배경=중국 정부는 민영기업 화웨이를 전폭적으로 지원하고 있다. 국유 은행을 동원해 해외 진출을 돕기도 했다. 런정페이의 탁월한 정치 감각이 이를 가능하게 했다는 주장이 설득력 있게 제기된다. 군 출신인 그는 당국의 정책 방향을 정확히 읽고, 그에 맞춰 기술 및 해외 시장 전략을 내놨다.
화웨이는 후진타오(胡錦濤) 주석의 해외 진출(走出去) 정책, 시진핑(習近平) 주석의 ‘중국몽’ 실현을 위해 앞장서는 모습을 보였다. 다른 민영기업과는 달리 당 위원회의 활동도 중시했다. 그러면서도 다른 한편으론 민영기업 특유의 경영 방식으로 경쟁력을 키웠다. 경쟁자가 뚜렷이 보이지 않는 상황. 정부는 정보 인프라 구축을 위해 런정페이에 기댈 수밖에 없었다. 그는 중국의 국가 자본주의 체제에서 민영 기업가가 어떻게 처신해야 하는지를 행동으로 보여줬고, 그 결과가 오늘의 화웨이를 만들었다.

한우덕 차이나랩 선임기자
Copyright © 중앙SUNDAY.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