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복 80주년···고려인 동포들 "한국인으로 살고 싶어요"
취업·제도 배제 등 어려움 여전
생계 위기 동포 위해 긴급 모금
15일 만세 행진·홍범도 영화 관람

광복 80주년을 맞은 가운데 광주 고려인마을 동포들은 언어·취업 등 여러 어려움 속에서도 '한국인'으로서 자부심을 갖고 조상의 독립운동 정신을 이어가고 있다.
8일 오전 광산구 월곡동 고려인마을 종합지원센터. 문을 열자 갓 구운 빵 냄새와 향긋한 차향이 퍼졌다. 둥근 식탁에 둘러앉은 주민들이 웃음을 터뜨리며 대화를 이어갔다. 러시아어가 주를 이뤘지만, 중간중간 "맛있다", "고마워" 같은 짧은 한국어가 자연스럽게 섞였다.

우즈베키스탄 출신 박실바(73)씨는 마을에 정착한 지 5년째다.
한국어를 몰라 어려움을 겪던 시절, 박씨는 하루 동안 들은 단어를 모두 노트에 적어 저녁마다 외웠다. 그렇게 한국어를 독학한 박실바씨는 현재 마을 약국에서 통역사로 일하며 생계를 꾸려나가고 있다.
박실바씨는 "마을 사람들이 오랜 친구처럼 따뜻하게 맞아준 덕에 이제 이곳이 고향처럼 느껴진다. 약국 취업도 마을에서 많이 도와줬다"며 "손자들도 한국이 좋다며 평생 살겠다고 말한다. 나도 같은 마음"이라며 웃었다.
고려인마을에는 우크라이나 전쟁을 피해 온 난민 500여명도 함께 산다. 안엘레나(46)씨도 그중 한 명이다.
집이 폭격당해 맨몸으로 입국한 그는 선천적 청각장애가 있는 아들과, 당뇨와 디스크 등으로 거동이 힘든 부모를 부양하고 있다. 한국어가 서툴어 단기 일자리조차 구하기 어려웠지만, 마을의 도움으로 종합지원센터 관리자로 일하고 있다.
안엘레나씨는 "병원비와 월세, 생활비 등 고려인마을에서 큰 도움을 받았다"며 "전쟁터에서 헤어진 이웃을 마을에서 다시 만났을 때 울음이 쏟아졌다. 이제 이곳이 내 고향 같다"고 했다.
마을 주민 상당수는 이곳에 와서야 조상들의 독립운동사를 깊이 알게 됐다. 고려인마을은 3·1절과 광복절마다 기념행사를 열고, 평소에도 자연스럽게 역사 이야기를 나눈다.
박실바씨는 "조상들의 고난을 알게 될수록 마음이 아프다"며 "광복절에는 온 가족이 한복을 입고 길거리에서 만세를 부른다"고 했다. 안엘레나씨도 "조상이 겪은 고통을 알게 된 뒤로 매번 관련 행사에 참여하고 있다"고 말했다.
최근 정부가 무국적 우크라이나 고려인의 체류 자격을 완화한 데 대해서는 환영의 목소리가 이어졌다.

그러나 정규직 취업의 벽, 의료보험 사각지대, 민생회복 소비쿠폰 배제 등 이들이 겪는 어려움은 여전하다.
박실바씨는 "정규직 채용이 거의 없어 휴가·명절 복지에서 제외된다. 몇 년을 일해도 퇴직금을 주지 않는 일도 수두룩하다. 개인적으로 의료보험비를 내야 하니 금액이 부담돼 보험에 가입하지 않는 사람들도 많다"며 "이런 상황에서도 세금을 꼬박꼬박 내지만 소비쿠폰을 받을 수 없어 아쉽다"고 토로했다.
이 같은 제도적 장벽은 곧 생활의 불안정으로 이어진다.
의료비 부담으로 치료를 미루는 경우도 적지 않다. 최근 마을은 뇌출혈과 병세 악화로 생계 위기에 놓인 동포 두 명을 위해 긴급 모금을 시작하기도 했다. 현재까지 10여명의 주민이 모금에 참여했다.
신조야 고려인마을 대표는 "이웃이 아프면 함께 돕는 것이 마을의 방식"이라고 했다.

광복 80주년을 맞아 마을은 매년 이어온 거리 행진에 더해, 올해는 마을 주민 100여명을 대상으로 홍범도 장군의 이야기를 담은 다큐멘터리 영화 '독립군: 끝나지 않은 전쟁' 관람회를 준비하고 있다. 상영회는 한 한국인의 후원으로 추진됐다.
신 대표는 "광복 80주년은 의미가 깊다. 우리 할머니, 할아버지가 일본과 싸운 역사를 절대 잊어선 안 된다"며 "무국적 동포들의 체류 자격 완화 같은 긍정적 변화도 있지만, 궁극적으로 동포들이 한국 국적을 갖고 살아갈 수 있길 바란다"고 말했다.
강주비기자 rkd98@md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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